(불교순례길 탐방) 생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깨달음도 그때그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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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순례길 탐방) 생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깨달음도 그때그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 고현준
  • 승인 2022.11.28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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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삼광사-보덕사 코스..오래된 폭낭과 계단이 아름다운 지혜의 길

 

 

 

춘풍은 막힘이 없으니

붉고 흰 꽃이 각처에 피어난다

이 이치를 누가 알 것인가

만약에 이 도리를 안다면 도가 밝아지리라

-고불총림 대한불교 조계종 초대종정 만암스님의 시(삼광사 시비에서)

 

계절이 바뀌면서, 이제 열심히 걸어보고자 하는 꿈은 늘 무너진다.

일이 생기고 날씨가 나쁘거나, 행사가 만들어지거나 한다. 그렇게 생겨나는 여러 가지 일들로 걷고자 하는 계획은 종종 나중으로 밀려버린다.

지난 19일은 그래서 거의 한 달여 만에 걷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절로 가는 길이라는 이름의 불교순례길은 제주 곳곳에 산재한 절을 찾아 보는 여정인데..

이제 마지막 코스인 지혜의 길을 걷는 막바지의 첫 번째 날이었다.

이 길은 161km에 이르는 너무나 길고 긴 장거리 코스다.

성산 동암사에서 시작해 서귀포 선광사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길이를 가진 길이라는 점에서 조금 의아하긴 하다.

몇 번에 나눠 걷도록 했어도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단 가까운 제주시에서 먼저 시작하기로 했다. 걷는 첫날은 가장 중간지점에 있는 월평동에 있는 삼광사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삼광사는 입구부터 범상치가 않은 절이었다.

4백년이 넘은 폭낭이 절 입구에 서 있었고, 절 안에도 280년된 팽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 몇 그루로 인해 길에 쌓인 노란 낙엽이 가을정취를 물씬 풍겼다.

그러나 웬걸..

절 입구에 다다르자, ‘사진을 함부로 찍지 말라’는 문구가 절문 앞에 서 있었다.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절 입구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일단 입구 사진만 찍고 안으로 들어섰다.

함께 간 고광언 선생이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온 후 주지 현명 스님을 만나보자고 했다.

주지스님방으로 들어서니 달라이라마와 얼굴이 흡사한 현명스님이 벽에 걸린 달라이라마 사진과 겹쳐져 탁자에 앉아 계셨다.

 

달라이라마와 닮은 현명스님(유리에 비친 모습이다)

 

 

내가 뵙자 마자 얼른 말했다.

“스님의 얼굴이 달라이라마와 아주 비슷하게 생기셨습니다. 제가 20년 전에 인도로 가서 직접 뵙고 왔습니다”라며 "사진을 한번 찍고 싶다"고 했더니 쑥스러우신 듯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손을 내 저으셨다.

좋은 말씀을 청하니 “차나 한잔 하고 가라”며 스님이 연신 차를 따라 주시면서도 사진을 절대로 안 찍으시겠다고 했다.

하지만, 세상 사는 이야기와 삶에 대한 지혜 등 오랜 만에 훌륭한 스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현명 스님은 “예전에는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왜 이 절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님은 “쓸데 없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써놓았는데, 하지만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마음껏 찍게 허락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대한적십자사제주도지사 오홍식 회장과의 돈독한 관계, 덕희봉사회(회장 임경숙)의 봉사활동 역사 등 그동안 진행해 온 많은 사회봉사 활등에 대해 설명하셨다.

스님은 말을 안 하실 듯 하시다가도 뭐 하나를 물으면 열심히 설명해 주시면서 “평소에는 얘기를 잘 안하려고 하는데 오늘은 이상한 사람을 만나 자꾸 얘기를 하게 된다”며 우리에게 즐겁고 흔쾌한 시간을 많이 할애해 주셨다.

아마 전 제주불교문화대학 총동문회장인 고광언 선생이 있어 마음이 놓여서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주지스님방을 나와 절을 더 살펴보기로 했다.

 

 

삼광사는 남자신도와 여성봉사단인 덕희봉사회 등 남녀 구분된 방을 갖추고 있을 정도로 사회활동이 활발한 절이었다.

메주를 담는 장독과 콩밭이 따로 있고, 크고 작은 숨쉬는 항아리들이 장독대에 즐비했다.

우리를 안내했던 여성봉사회 강화수 부회장은 “가운데 큰 항아리에는 씨장이 들어 있어 매년 간장 된장을 만들고 있다”고 얘기해 줬다.

이날도 덕희봉사회 임경숙 회장을 비롯 회원들 몇몇이 나와 열심히 뭔가를 준비중이었다.

메주를 삶는 그릇과 큰 무쇠솥을 보여주는데 그 크기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콩을 한꺼번에 많이 삶기 위해 특별히 주문한 것이라고 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장작을 땠지만 지금은 가스불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

그것만 빼고는 예전 방식 그대로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사업을 해도 될 정도로 창고와 작업실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삼광사 된장과 김치가 맛있다는 소문이 나서 이들 여성봉사단은 앞으로 봉사만이 아니라 사회적기업으로 만들어져 된장과 김치를 담아 내년부터 판매까지 한다고 했다.

봉사회의 규모가 그만큼 체계화 되고 훨씬 더 커졌기 때문이리라..

임경숙 회장과 강화수 부회장은 입을 모아  “주지스님이 봉사단을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신다”고 귀띔했다.

이들 봉사회원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임 회장님과 강 부회장님께 기념사진을 한 장 찍어두자고 제안했다.

고광언 선생과 함께 찍은 임경숙 회장(가운데)과 강화수 부회장

 

 

 

좋은 절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와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보덕사를 향했다.

골목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상운선원 천화사라는 제목의 작은 절이 보여 벨을 눌렀으나 반응이 없어 그냥 지나쳤다.

선방 구경을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어쩌랴.

내려오다 영평초등학교 앞을 지나는데 작은 비닐하우스를 손질 하고 있는 이가 있어 물어보니 작은 선인장 다육이가 가득 했다.

겨울에는 죽어버려서 비닐을 씌워놓아야 한다고 했다.

이곳을 지나는데..감귤밭에 감귤이 흐드러지게 열린 모습이 참 탐스럽다.

 

 

그렇게 걸어 내려가다 우리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걸어보고자 일부러 작은 골목안으로 들어섰다.

당연히 어디론가 뚫린 길이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하지만 막상 걸어 들어가니 막다른 길이 나왔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막다른 길은 귤밭이었는데 그 뒤 언덕 아래로 계곡이 보였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또 다른 길이 나올 것이라 믿고 내려가 보자고 했다.

하지만 높은 언덕이라 내려가는 길조차 만만치가 않았다.

겨우 작은 길을 만들며 계곡 아래로 조심히 들어섰다.

마침내 계곡으로 내려가 잠시 쉬면서 보니..

탁 트인 계곡은 걷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언제 이런 아름다운 계곡을 마음껏 걸어보는 호사를 누릴 것인가.

아예 기분 좋게 계곡을 따라 걸어 내려가 보기로 했다.

이 계곡은 생각보다는 걷기에 너무 편안했다.

울퉁불퉁한 돌도 있지만 가끔은 포근한 모래도 있어 편안히 걸을 수 있었다.

문제는 올라가는 길이었다. 아무리 게곡을 걸어내려가도 얼마나 옹벽을 높이 쌓았는지 오를 수 있는 틈새조차 나오지 않았다.

계곡은 계곡으로만..사람은 이 계곡에 들어올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라는 뜻일까..?

 

 

무슨 사고가 나도 이 계곡에는 헬리콥터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한참을 걸어 내려와 계곡을 보는 즐거움과 함께 작은 다리 아래 앉아 다음 코스를 생각하는데..

계곡 아래쪽으로는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난감한 상황과 마주치고 말았다.

우리가 앉아 있었던 곳이 낭떠러지 바로 위였기 때문이다.

고광언 선생이 한번 주변을 샅샅이 살피더니 ..

내려갈 곳이 없다는 암울한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나서, 다리 옆 밀림속 가파른 동산을 홀로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른 곳으로는 올라갈 공간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 올라간 후 쓰레기가 많다며 조심히 올라와 보라고 했다.

위험천만인 가파른 동산을 겨우 올라 아래를 보니 정말 절벽같이 서 있는 위험한 낭떠러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결정을 잘못했다면 정말 위험천만한 상황에 처할 뻔 했다.

다시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이 지역은 빌라단지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편의시설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제주 시골길에 들어선 빌라단지..

제주도가 마치 서울 외곽의 시골길과 훕사해져 가는 거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걷다 보니 계속 이어지는 큰 공사판도 보였다. 모두가 빌라단지였다.

이제 길은 해양경찰단이 있는 대로변으로 이어진다.

 

 

그나마 이곳 대로변은 중앙차선을 만들며 없애버린 아름드리 나무들이 주변으로 남아 운치를 더하긴 했다.

이제 도남동으로 접어드는 길이다. 이 길을 따라 골목길로 들어서서 보덕사를 향해 걸었다.

아파트단지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자 우리 앞에 나타난 보덕사..

보덕사는 비구니들이 사는 절로 70년대에 자주 찾았던 절이지만..

지금은 그 때의 기억조차 더듬을 수가 없었다.

주위가 온통 다 변해 버려 기억을 되살릴 흔적조차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억나는 것은 뱀이 많았다는 것..

이곳 동산을 찾았다가 여기저기 놓여있는 뱀을 보고 기겁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독사천이라 불리웠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따라 들어선 보덕사 경내는 아주 조용했다.

부처님 동상이 밖에 서 있고..

아담한 대웅전이 조용히 우리를 맞이한다.

보덕사의 특징은, 입구로 들어서는 낮은 계단이 아주 예쁘다는 것이다.

아주 예전에 만들었을 계단 두 개가 나란히 만들어져 있는 그 모습이 너무 정겨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계단을 올랐을까..

처음에는 오래된 폭낭과 만났는데..

이날 마지막 볼거리는 단연 정감 있는 이 두 개의 오래된 계단이었다.

 

 

 

생의 계단

-헤르만헤세

 

모든 꽃이 시들 듯이

청춘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생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깨달음도

그때그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영원하진 않으리.

삶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은

슬퍼하지 않고 새로운 문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이별과 재출발의 각오를 해야만 한다.

무릇 모든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그것이 우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공간들을 하나씩 지나가야 한다.

어느 장소에서도 고향에서와 같은 잡착을 가져선 안된다.

우주의 정신은 우리를 붙잡아 두거나 구속하지 않고

우리를 한 단계씩 높이며 넓히려고 한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그러면 임종의 순간에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향해

즐겁게 출발하리라.

우리를 부르는 생의 외침은 결코

그치는 일이 없으리라.

그러면 좋아,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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