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실존인물을 모시는 당..함덕리 산신당
상태바
[향토문화] 실존인물을 모시는 당..함덕리 산신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12.16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山)에 있는 신령(神靈)이 아니라 살아 있던 사람(生人)이 신(神)이 되었다는 뜻

함덕리 산신당

 

소재 ; 함덕리 2972-1번지. 함덕리 서쪽 입구에서 남쪽으로 아스팔트길(함대로)을 따라 100m 지점에서 오른쪽(함덕순복음교회 서쪽)으로 난 농로(포장되지 않은 소로)로 40m 정도 들어간 곳에 있다. 함덕우회도로(일주동로)에서는 함덕입구교차로(표지판에는 사장교차로라고 되어 있음)에서 북쪽으로 400m 지점이다.
유형 ; 민속신앙
시대 ; 일제강점기

함덕리_산신당

 

함덕리_산신당 제단

 

자그마한 동백나무 앞에 제단과 제장을 마련하고 그 주위를 자연석으로 둥그렇게 에워쌌다. 동백나무는 빨간 겹꽃이 피는 나무이며, 제단은 자연석을 어른 무릎 높이 정도로 쌓고 시멘트로 평평하게 하였다. 입구는 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정도로 좁다.


산신신앙은 보통 산신·산령 그리고 산신령(山神靈)에 바치는 믿음이라고 볼 수 있다. 산악신앙은 천지 및 천체신앙과 함께 자연신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하순애의 『제주의 신당 이야기』를 보면 이 당은 일반적인 산신(山神)을 모시는 당이 아니라 실존인물을 모시는 당이다. 이 당에 모셔진 신은 연주현씨(延州玄氏) 제주입도 9세 현○○씨(1837~1913)이다.

그 분은 동백 열매로 기름을 짜 팔기 위해 선흘리 동백나무숲에서 동백 열매를 따려고 나무에 올랐다가 떨어져 돌아가셨다고 한다. 자손들은 동백나무에 선조의 영혼이 머문다고 생각하고 선흘까지 오가며 정성을 드리다가 너무 멀어서 불편하니까 집에서 가까운 곳에 동백나무를 심어서 할아버지를 모셨다고 한다.

그리고 사나흘에 한 번씩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고 한다. 그 분의 손자는 자신이 어렸을 때 일제강점기에도 자주 이 당에 다녔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며칠 간격으로 다니는 것이 여의치 않아 아예 1년에 한 번 심방을 청하여 크게 제를 지낸다고 한다.

또한 현씨 집안에서는 집안 걱정거리가 있을 때나 손자들이 아플 때에도 조상님께 제물을 바치고 빌면 효험이 확실히 나타난다고 한다.


조상의 한(恨)이 서려 있는 나무를 찾아가 정성을 드린다는 것은 조상에 대한 숭배의식과 무속적 인식이 혼합되어 드러나는 모습이다. 생시에 자손들을 돌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은 후에도 후손들을 돌보아준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씨 집안의 조상신이 효험이 있다고 알려지자 다른 집안 사람들도 이곳을 찾아 비념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시기부터 산신당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현씨 집안의 수호신이 마을 수호신으로 영역을 넓히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당이 설치된 유래를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산신당이라는 명칭이 자연신앙으로서의 산(山)에 있는 신령(神靈)이 아니라 살아 있던 사람(生人)이 신(神)이 되었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일 수도 있다.


아래 사진은 제단이 풀에 잔뜩 덮여 있던 것을 필자가 걷어내고 며칠 후 마른 뒤에 찍은 것이다.
《작성 150407》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