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김상헌의 남사록(南槎錄), ‘원나라 때 세운 절.. 함덕리 강림사(멸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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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김상헌의 남사록(南槎錄), ‘원나라 때 세운 절.. 함덕리 강림사(멸실) 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12.17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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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명월만호를 지낸 황만평씨가 살전 집이기도 하며 현재 그 증손이 살고 있다.

함덕리 강림사(멸실) 터
 

위치 ; 함덕리 1290번지(함덕14길14호) 일대 덕림사의 남쪽에 강림사가 있었다.
시대 ; 미상(고려시대 추정)
유형 ; 사찰 터

함덕리_강림사지 석재
함덕리_강림사지

 


강림사는 고려시대 사찰이라고 전하며, 조선시대인 1530년에 만들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주목(濟州牧) 불우(佛宇)조에는 제주도의 사찰 15곳 한라산 서령의 존자암, 옹포의 동남쪽에 월계사, 도근천 서안에 수정사, 제주 서쪽 25리에 묘련사,

제주 서남쪽 27리에 문수암, 제주읍성 건입포 동안에 만수사, 제주읍성 서쪽 대독포에 해륜사, 제주 동쪽 함덕포구에 강림사, 거문이오름 북쪽에 보문사, 조공천에 서천암,

제주 동남쪽 10리에 소림사, 조천관포에 관음사, 정의현 영천천 동안에 영천사, 대정현 동쪽 45리에 법화사, 정의현 성불악에 성불암
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강림사는 제주 동쪽 함덕포구에 있다(江臨寺州東咸德浦口)고 되어 있다.

그 후 선조34년(1601) 김상헌의 남사록(南槎錄)에는 ‘원나라 때 세운 절인데 절 앞에 화표(華表=무덤 앞 양쪽에 세우는, 여덟 모로 깎은 한 쌍의 돌기둥)가 있고…’라는 기록이 있다.

기록에 나타난 함덕포구는 속칭 고냉이선창이라 불리는 포구를 말하는 듯하다. 1653년에 만들어진 이원진의 탐라지에도 강림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존속되었던 절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이곳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어 그 원형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곳 주택에는 상당한 양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고, 주택 주위에도 기단석들이 흩어져 있는 것이 확인된다. 기와편과 자기편(도질토기,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의 조각)을 비롯하여 다수의 기단석 등도 함께 발견되었다.

강림사지에서 발견된 기단석들은 모두 다공질 현무암으로 세 면이 세밀다듬으로 되어 있으며, 나머지 한 면은 아주 거친다듬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기단석 외에도 한 면만 세밀다듬으로 되어 있는 석물들이 대량 발견되었다. 또한 고냉이선창 주변 경작지에도 많은 기와편과 도기편들이 흩어져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정밀조사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

강림사 터로 추정되는 1290번지 주택 뒤편으로는 넓은 공터에 옛 계단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강림사를 둘러쌌던 담장으로 추정되는 곳도 있다. 이 집은 1891년 명월만호를 지낸 황만평씨가 살전 집이기도 하며 현재 그 증손이 살고 있다.

또한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에 따르면 절터 담장이라 추정되는 곳은 제주 4·3사건 때 무장대를 막기 위한 성담을 쌓았던 곳으로, 당시의 사격용 총구대(총안)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의 현장답사에서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작성 1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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