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김만일의 딸 경주김씨를 배필로..가시리 경주이씨국당공파입도조(이인제)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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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김만일의 딸 경주김씨를 배필로..가시리 경주이씨국당공파입도조(이인제)묘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12.28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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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 옛 갑마장 지경에 부인 연주현씨묘와 쌍묘로 조성되었다

가시리 경주이씨국당공파입도조(이인제)묘

 

위치 ; 표선면 가시리 산38번지. 조랑말체험공원의 500여m 남쪽이며 블라제펜션의 900여m 서쪽에 해당한다.
시대 ; 조선
유형 ; 묘

 

가시리_이인제묘 옛비석

 

가시리_이인제묘


간옹 이익은 첫 부인이 자식 없이 사망하고, 아들 인실과 딸을 낳은 둘째 부인도 상소문 사건이 나던 해(1615) 세상을 떠나 혼자였다.

유배 온 이듬해 김만일의 딸 경주김씨를 배필로 삼은 그는 차남을 낳고 인제(仁濟)라 이름을 지었다.

일부 관리나 유배객이 제주 여인과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으면 이름에 제주를 뜻하는 '제(濟)'나 '영(瀛)', '탐(耽)'자를 쓴 것처럼 인제의 이름에도 제주를 기억하는 '제'를 넣었던 것이다.

인제는 훗날 훈련원(무예 연습 따위를 맡아보던 관아) 판관(종4품)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경주이씨 국당공파(菊堂公派) 제주입도조가 된다.

8년 후 유배가 풀려 귀향한 이익은 제주목의 처자는 그대로 두고 홀로 떠났지만 제주에서 장가들어 얻은 자식의 존재를 친지들에게 당당히 밝혔다.

영의정 최석정이 지은 이익 묘비명 중 "세 번째 장가들어 훈련원 판관 인제를 낳았는데 이는 유배 때 출생했다"는 글과 이익 손자가 작성한 가장(조상의 행적에 관한 기록)에 "헌마공신 만일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 하나 인제를 낳았는데 제주적거 때 출생했다"는 내용이 그러한 사실을 입증한다.

유배가 풀리면 현지에서 만난 여인과 자식까지 버린 상당수 유배인과 달리 그는 아들을 호적에 올렸으며, 이후 김진구와 김춘택 등 제주에 유배 온 지식인들은 그의 후손과 제자들을 찾아가 사제지간을 맺어 이익이 형성한 학맥을 이어갔다.


제주도에 형성된 이익의 가계는 지금의 제주시 오라동을 중심으로 제주도 문교 발전에 남다른 공헌을 하였는데 손자 이윤은 훈련원 판관을 역임했으며, 증손인 이중발과 현손인 이수근은 정시에 급제하였으며, 구한말의 이기온과 그의 아들 이응호는 당대 제주 유림을 대표하는 강골들이었다.

특히 이기온은 척사위정의 거두였던 최익현이 제주도에 유배를 오자 그와 사제의 인연을 맺었으며, 이응호는 또 다른 척사위정의 거물 기정진과 인연을 맺고 집의계를 결성하는 등 가계로부터 계승된 지식인의 비판주의적 태도를 올곧게 보여준다.

이인제의 묘는 가시리 옛 갑마장 지경에 부인 연주현씨묘와 쌍묘로 조성되었다.

좌향은 건좌손향(乾坐巽向)이며, 〈訓練院判官慶州李公仁濟 配恭人延州玄氏 之墓〉라는 비석이 정면을 향하여 세워져 있고, 남쪽 산담 안에는 옛비석(訓練院判官李公仁濟墓, 判官李仁濟配令人玄氏之墓) 2기가 세워져 있다.

직사각형으로 산담을 둘렀고, 동자석과 망주석 등은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작성 1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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