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당파정쟁 연루, 제주에 적거..성읍2리 여산송씨입도조(송신량,송신양)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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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당파정쟁 연루, 제주에 적거..성읍2리 여산송씨입도조(송신량,송신양)묘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12.2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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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의 동남쪽에 영주산, 서북서 방향에 개오름, 남쪽에는 천미천이 흐른다.

성읍2리 여산송씨입도조(송신량,송신양)묘

위치 ; 표선면 성읍리 1959번지.
시대 ; 조선
유형 ; 묘

 

성읍1리_여산송신량묘

 

여산(廬山)송씨 송신양(宋愼良)은 시조 송유익(宋惟翊)의 17세손이며 송서(宋瑞)의 12세손이다.

송신양(宋愼良)은 전라북도 익산군 여산에서 출생, 성장하였으며 통정대부(정3품 당상관 품계)로 옥구호장(沃溝戶長)을 역임했다.

영조41년(1765)에 벼슬에서 물러난 후 제주목에 입도 정착했다.(금강일보 130201) 묘비에 의하면 弘文館校理를 역임하였으며, 당파정쟁에 연루되어 이곳 제주에 적거(謫居)하게 되었다고 한다.

묘가 있는 곳은 주변보다 현저히 높은 지대이며, 묘의 동남쪽에 영주산이 있고 서북서 방향에 개오름이 있으며, 남쪽에는 천미천이 흐른다.

정면 앞에 대형 저수지가 공사중에 있어 큰 호수를 받아 앉은 형국이 될 것이다.

묘는 정부인밀양박씨와 부부쌍묘이며 간좌곤향(艮坐坤向)이다. 쌍묘의 가운데 앞에 묘비와 상석이 설치되었으며 좌우 앞에 문인석과 석등이 배치되었다.

산담은 앞뒤로 길게 직사각형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쌓았으며 산담 밖으로 흙을 돋우어 곡장을 만들었다. 앞 쪽에는 진입로가 있다.
《작성 1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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