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엄리 철무짓개(포구)
위치 ; 애월읍 구엄리 608-1번지의 북쪽 바닷가
유형 ; 어로유적(포구)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구엄리의 포구인데 철무지의 뜻은 알 수 없다. 탐라순력도 등 옛 문서에는 엄장포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엄쟁이의 이두식 표기이다.
동쪽은 상코지가 있어 동풍을 막아주고, 서쪽은 쇠빌레코지가 있어 서풍을 막아주는 그 사이 후미진 곳에 포구가 자리잡았다.
출입구가 거의 북향을 하고 있어서 북풍의 피해를 막을 수 없는 구조였으나, 지금은 동쪽 방파제에 이어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긴 방파제를 연결하여 서쪽 끝이 약간 남서쪽으로 구부러지게 설치하였으므로 서쪽 방파제를 감싸 안는 모양이 되었다.
포구의 안쪽은 조간대의 상층에 해당되어 썰물에는 배를 움직일 수 없었고 따라서 썰물 때에 배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밧개로 옮겨 매어 두어야 했지만 지금은 그런 불편이 없어졌다.
포구 동쪽에는 도대불(옛등대)가 복원되어 있고, 〈어항의 유래〉라는 표석에는 다음과 같은 해설이 있다.
〈철무지라 불려왔던 이 어항은 상코지 줄기 암반을 의지하여 왕석을 하나 둘씩 쌓아 성을 이뤄 서북풍을 막고 포구를 만든 조상의 얼이 깃든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선착장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믿음으로 제주도의회 제5대 의원인 고승종 의원의 발의로 뜻을 이뤄 1993년 3월 10일 방파제 공사를 시작하여 준설공사를 끝으로 2008년 7월 준공을 보게 되어 이 비를 세우노라. 2009년 12월 직전어촌계장 조두헌 어촌계장 이노공〉
《작성 15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