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빠져 나간 비둘기, 용맥의 정기.. 신촌리 동수동 강초관물(용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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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빠져 나간 비둘기, 용맥의 정기.. 신촌리 동수동 강초관물(용천수)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1.0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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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물이 없고 그저 돌무더기의 벌판이었다고 전해지는 곳

신촌리 동수동 강초관물(용천수)

 

위치 ; 신촌리 2853-1번지.
유형 ; 수리시설/전설유적
시대 ; 미상(조선시대 초기 추정)

 

신촌리_동수동강초관물

 

신촌리 진드르교차로에서 서쪽 400m 지점에서 남쪽으로 문서천 옆으로 난 길 동수동 방향으로 들어서서 800m 정도(중간에 애조로를 지나고 LOEX 건물 직전)에서 서쪽으로 난 농로로 들어가서 300m 가면 서쪽에 비포장 농로가 나오는데 약 100m 지점에 강초관물이 있다. 동수동 마을에 속한다.

예전에는 물이 없고 그저 돌무더기의 벌판이었다고 전해지는 이곳에서 약 600년 전에 갑자기 땅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라 한다. 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약 600년 전 신촌리에서 어느 분이 상을 당하게 되자 지관으로 유명한 강초관(姜哨官)이라는 분을 데려다가 좋은 묘자리를 찾도록 하였다고 한다.

며칠 동안이나 들판을 누비며 다니던 지관은 결국 혈(穴)자리 하나를 찾게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샘물이 있는 곳이었다. 지관은 땅을 팔 때 돌이 막혀 있어도 그 돌을 파내지 말고 얕게 묻어야 된다고 당부하였다.

영장날(장삿날) 일꾼들이 땅을 파다보니 큰 돌로 막혀 있었는데, 상제는 다른 일을 살피느라 땅 파는 것을 지켜볼 수가 없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일꾼들은 막힌 돌을 파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꾼들이 돌을 파 올리는 순간, 그 자리에서 비둘기가 두 마리 날아가더니 뒤이어 그 자리에서 맑은 샘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빠져 나간 비둘기는 용맥의 정기였다고 한다. 결국 용맥이 빠져 나가 버린 이곳에 장사 지내는 일을 중단하고 다른 곳을 다시 찾아 묘를 썼다.

그 때부터 이곳에서는 계속 샘물이 솟아 나왔다. 그 때 이 혈을 찾은 사람이 강초관이었으므로,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샘물 이름을 「강초관물」이라 부르게 되었다.

필자가 선친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강초관이라는 지관이라고 들었는데, 강초관은 이름이 초관인지, 강씨 초관인지, 초관이 지관(풍수사)을 뜻하는 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사전에서 초관(哨官)은 약 100명에 달하는 1초를 책임지는 하급지휘관이라고 나와 있다. 일부 자료에서는 상제의 이름이 강초관이라고도 한다.

현재 강초관물에는 스레트로 덮개를 하여 돌로 눌러 놓았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샘물의 폭이 1m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벽은 자연석으로 되어 있고 1.5m 정도 깊이에 물이 보인다.

덮개 바로 아래에 선반처럼 만든 위에 쌀을 담은 병과 어떤 액체가 담겨 있는 병이 나란히 놓여 있다. 마을 주민의 말로는 여기 와서 치성 드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그에 쓰이는 물건인 것 같다.

제주도에서는 예로부터 물을 매우 귀하게 여겼으며 물이 나오는 곳에 주로 마을이 이루어지고, 샘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해안에서 거리가 먼 마을(중산간마을)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 심하였다. 여기서도 전설에서 명당이었던 곳에 만들어진 샘이라고 하여, 샘이 솟는 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민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작성 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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