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장모님의 사랑과 배려? ..'사위질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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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장모님의 사랑과 배려? ..'사위질빵'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23.01.09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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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인성의 세상이 또다시 찾아오리라 기대하며..

 

장모님의 사랑과 배려? 사위질빵

사위질빵 열매송이에 쌓인 하얀 눈꽃 송이

 

겨울은 왠지 스산하고 쓸쓸해 보이기만 합니다. 하늘을 가리던 그 울창한 숲속의 잎새들,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어 산천을 붉고 노랗게 채색질하더니만 금세 다 어디로 갔는지? 앙상한 나무줄기 몸통만 늘어선 숲길에 들어서서 하늘을 보면 숭숭 구멍이 뚫린 듯 빈 하늘만 덩그러니 남습니다.

빈 하늘 사이로 드러난 앙상한 잔가지는 가시처럼 눈에 밟힙니다. 바람은 살을 에듯 날카롭게 피부를 파고들어 겨울은 참으로 황량하고 스산하여 삭막하기조차 합니다. 상큼한 숲 바람에 푸른 잔가지 너불대고 아기자기 예쁜 꽃들이 나름대로 자라서 반가이 맞이해 주던 숲길이 이리도 거칠게 변할 수 있을까?

같아 보인 듯함에도 정반대로 변하는 자연 세상의 한겨울이지만 또다시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반전의 봄날이 반드시 오는 것이 자연입니다. 따라서 혹독한 상심(喪心) 대신에 기다리는 그리움으로 삭막한 겨울 속에서 위안감을 찾아 들로 숲으로 길을 나섭니다.

삭막한 겨울 세상이지만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이면 거친 세상천지도 평온하고 푸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차가운 눈이 오히려 마음을 따뜻하고 푸근하게 녹이니 아마도 눈의 마력(魔力)인가 봅니다.

울퉁불퉁 파이고 헤쳐진 거친 숲길을 하얗게 덮어 평탄하게 하고 꺾이고 부러진 가지와 갈 곳 잃어 바람에 뒹구는 낙엽들을 차분히 덮어 잠재웁니다. 스산한 찬 바람에 시달리던 가지 끝 마른 잎새와 열매 꼬투리 등에도 살포시 눈이 덮여 푸근하고 평온해 보입니다.

숲길 가장자리에 목화송이처럼 몽실몽실한 하얀 눈송이가 눈길을 끕니다. 마치 하얀 꽃송이가 송이송이 피어 있는 것 같습니다.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까만 열매송이가 겹겹이 매달려 있는 사위질빵 열매송이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모습입니다.

잘 익은 사위질빵 열매의 까만 씨앗 끝에는 민들레 씨앗 갓털처럼 연한 털이 달려 털북숭이처럼 보입니다. 털 달린 씨앗은 넝쿨 끝에 매달려 한겨울에 바짝 마르고 겨울이 끝날 때쯤이면 세찬 바람을 타고 새 삶의 터를 찾아 멀리 흩어집니다. 눈이 내리면 씨앗에 달린 갓털에 눈이 쌓여 풍성하고 소담스러운 눈꽃 송이로 변신합니다.

차가운 눈이 내리쌓였는데도 오히려 하얀 목화 열매 솜처럼 풍성하고 따뜻해 보이는 사위질빵 눈꽃 송이가 한겨울 시린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사위질빵에 얽힌 장모의 사위 사랑과 배려가 더욱 따스하게 전해 올 듯합니다.

가느다란 줄기에 매달린 사위질빵꽃과 사위질빵 열매에 소복이 쌓인 눈

 

사위질빵은 우리나라 각처의 산기슭 덤불 속에 나는 낙엽 덩굴나무입니다. 잎은 마주나고 3장 또는 2회 3장의 작은잎이 나온 겹잎이며 잎자루가 깁니다. 작은잎은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깊이 패어 들어간 모양의 톱니가 있습니다.

꽃은 7∼8월에 흰색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에 취산꽃차례로 달립니다. 열매는 얇은 막에 싸여있는 수과(瘦果)로서 5∼6개씩 모여 달리고, 익으면 긴 암술대에 흰색 또는 연한 갈색 털이 달려 한겨울에 바람 타고 흩어져 날아갑니다.

우리 주변에 흔하게 있는 덩굴식물로서 칡덩굴처럼 질기지도 않으며 환삼덩굴이나 가시박처럼 지나치게 무성하여 주변 식물을 휘감고 뒤덮어 죽게 하는 식물도 아닙니다. 주변 식물과 함께 공존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얌전한 덩굴식물입니다. 이러한 특성 덕인지 사람들로부터 미움도 받지 않고 오히려 사위질빵이라는 다정다감한 이름도 얻었나봅니다.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해오는 여러 이야기 가운데 공통된 내용은 사위질빵은 줄기가 연하고 잘 끊어져서 무거운 물건을 매어 옮길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인즉, 가을 수확 철이 되면 사위가 처가에 와서 가을걷이를 도와주는 풍습이 있던 옛 시절로 돌아갑니다.

농사일을 도우러 온 사위를 고생시키지 않으려는 장모가 연약하여 잘 끊어지는 이 덩굴나무의 줄기로 사위의 짐을 지게 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다른 인부의 끈은 질기고 튼튼한 칡덩굴이나 짚으로 만든 것인데 사위는 약한 사위질빵 넝쿨로 만든 데서 장모의 사위 사랑과 배려를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질빵은 짐 따위를 질 수 있도록 어떤 물건을 연결한 끈을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멜빵과 유사한 말이지만 멜빵은 군대에서 소총에 매단 끈처럼 주로 어깨에 메고 옮기는 줄을 뜻하며 질빵은 등에 지고 옮기도록 연결한 줄입니다.

아무튼 함께 일하는 다른 일꾼들은 질기고 단단한 칡덩굴이나 짚으로 만든 끈을 이용해 짐을 지는 데 비해 사위에게는 연약한 덩굴로 끈을 만들어 짐을 지도록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살갑게 들립니다. 생활 주변에 널브러진 사소한 식물의 특성까지 살펴 우리의 삶과 일상사에 연결한 옛 분들의 자연에 관한 자상하고 섬세한 관찰력도 함께 엿볼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찾기 힘든 자연 세계의 섬세한 관찰과 활용, 따스함과 인자함과 은근한 배려는 어디로 가고 각박하고 살벌한 배반과 어그러짐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을까?

특히 정치판의 국민에 대한 배려(配慮), 도와주고 보살펴 주려는 마음 쓰임새는 사라지고 대신하여 배려(背戾), 배반되고 어그러짐만 횡행하는 작금의 세상 판에 일반 국민마저 휩쓸려 가는 것 같아 야속하기만 합니다.

장모님의 사위 사랑과 배려가 깃든 사위질빵 같은 마음 쓰임새가 언제나 돌아올까? 어머니 젖 대신에 소젖 먹고 자란 세대라서 인성을 잃어가는 탓이런가? 답답함 속에서도 한겨울 지나면 따스한 봄이 오는 자연의 순리가 있기에 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인성의 세상이 또다시 찾아오리라 기대하며 혹독한 이 겨울을 참고 새해를 맞이합니다.

(2023. 새해를 맞아)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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