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근대교육 시작, 번창한다는 창흥사숙..북촌리 북촌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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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근대교육 시작, 번창한다는 창흥사숙..북촌리 북촌초등학교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1.22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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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흥사숙을 마치면 구좌중앙이나 조천으로 진학하였다.

북촌리 북촌초등학교

 

위치 ; 조천읍 북촌리 1212번지(일주동로1481)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교육기관(초등학교)

북촌리_북촌공립국민학교(1940년대후반)
북촌리_북촌초등학교

 

북촌리에 근대적인 교육이 시작된 것은 1918년 3월 1일 中동네 문태화씨 자택에서 개설된 창흥사숙으로부터이다. 昌興은 날로 번창한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북촌리 청년회에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당시 이장 이선익씨가 구좌읍 월정리에서 장윤삼씨를 스승으로 초빙하였으며 운영은 홍순아씨가 맡았다.

수학연한은 4년제였으며, 한문교육에 수학, 문학 등 신학문을 병행하였다. 창흥사숙을 마치면 구좌중앙이나 조천으로 진학하였다. 교사는 장윤삼(월정), 홍의숙(구좌), 한양준(김녕), 김규영(제주시), 한행석(함덕), 채평옥(북촌) 등이었다.

1942년 북촌리 출신 고경찬 조천면장이 북촌리에 학교를 설립할 목적으로 기금 마련 운동을 벌였다. 이에 동조하여 원산에 거주하는 북촌리 출신 한지홍씨가 200원, 일본에 거주하던 김태규씨가 100원을 보내 오면서 학교설립기금 조성의 기반을 이루었다.

북촌리에서는 호당 1명씩의 해녀들이 동원되어 미역을 공동작업하여 1,000원 넘게 모았으며, 호당 30원씩을 할당하여 모금운동을 전개하였다.

학교설립을 위한 기금이 상당한 액수에 달하면서 1942년 5월에는 전라남도 광주교육청 학무국에 학교 설립인가 신청서를 제출하였으며, 1943년 6월 10일 조천동공립국민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았고, 1944년 4월 1일 개교하였다.

학급 수는 2학급이었다. 이로써 창흥사숙은 자연히 폐숙되었다. 목조기와 3개 교실과 부속건물이 지어졌으며 연차적으로 교실증축이 이루어졌다. 1945년 9월 1일에는 북촌공립국민학교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렇게 마을 자력으로 세운 학교가 1949년초에는 6년제에 6개 교실, 250명의 학생이 재학하였다. 당시 북촌공립국민학교에는 양두혁 교장을 비롯하여 문덕순, 정추종, 김성택, 이송림, 이재인, 김정희, 이항석 교사, 강남수 소사가 근무하였다.

정문은 일주도로면 가운데에 있었고 울타리는 현무암 겹답으로 높게 쌓았고 울타리 안에는 멀구슬나무가 즐비하였었다.

이렇게 발전해 가고 있었는데 4·3사건의 와중에서 온마을이 전소되고 수백명이 학살되는 비운을 겪으면서 1949년 2월 10일 폐교되었다. 첫 졸업생 배출을 2달 정도 남겨둔 때였다. 폐교를 당하자 학교 건물은 이웃 마을 청년단원들에 의해 허물어졌으며 건축자재도 어디론가 모두 실려가 버렸다.

그러는 동안 졸업예정자와 재학생들은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 학업을 중단하여 가사에 종사하거나 일부 학생들만이 인근학교에 다녔다.

다음해인 1950년 7월 4일 함덕국민학교 북촌분교장으로 다시 개교하여 끊어진 교육의 맥을 겨우 이었으며, 1953년 4월1일 3학급 6년제로 인가를 받아 1953년 4월 9일(제주교육사에는 3월1일로 되어 있음) 북촌국민학교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학생을 수용할 시설은 전혀 없는 상태였으므로 학생들은 현 어촌계사무실인 신성회관, 신창원씨 댁(윤철정씨 사택)에서 공부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1954년 3월15일 신성회관에서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이어서 다음해까지 이곳에서 제2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54년 11월에 교실신축공사를 시작하여 1955년 8월28일 3개 교실 준공기념잔치를 열었다. 공사비의 반액은 북제주군교육청의 지원과 E.C.A의 원조(전축자재 및 지방부담금)를 받았으며, 나머지 반액은 마을 주민이 부담하였다.

주민들은 미역공동작업에 의한 기금 외에, 호당 흙 5가마, 네모나게 다듬은 돌 50덩이, 자갈 2상자(약 2톤)를 할당하였다. 그 외 기초공사에서부터 콘크리트, 기초 다지기, 석축 등은 주민들의 노력봉사였다.

건축 양식은 석조기와집이었으며, 교실 서쪽 토관을 임시 교무실로 이용하였다. 현재의 학교 터로 옮겨온 것은 1955년 9월 이후이며 학년은 6개 학년인데 교실이 3개뿐이었으므로 2개 학년씩 복식수업으로 운영하였다. 제3회 졸업식은 이곳에서 하였다.

1957년이 넘어서야 7개 교실로 증축되었다. 1970년대초에 기와를 걷어내고 스레트로 지붕을 바꾸었으며, 1984년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고, 1990년 12월에 2층 양옥으로 개축하였다. 1996년 3월1일 북촌초등학교로 개칭하였다.

1989년부터 북촌초등학교총동창회가 중심이 되어 초창기 학교를 다녔지만 졸업장을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 명예졸업장을 주자는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4·3사건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라 당장 실행하지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2000년에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하여 2001년 2월15일 제48회 졸업식에 이어 명예졸업식을 거행하여 총 215명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였다.(학교가 펴낸 우리 고장 이야기)
《작성 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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