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목축의 풍요와 해산물의 번식..북촌리 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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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목축의 풍요와 해산물의 번식..북촌리 포제단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1.23 0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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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난사고 방지를 기원하는 마을 공동의 제의, 1780년 전후하여 시작되었다.

북촌리 포제단

 

위치 ; 북촌리 740-1번지. 이 번지는 공유지여서 그런지 경계선이 매우 복잡하게 되어 있다. 북촌리 189번지의 바로 서쪽이다. 마을에서 약 300m 남쪽, 북촌동교차로에서 서쪽 약 160m 지점.
시대 ; 조선시대 후기
유형 ; 민속신앙(포제단)

북촌리_포제단 상단
북촌리_포제단

 

북촌리 포제는 농업과 목축의 풍요와 해산물의 번식, 해난사고 방지를 기원하는 마을 공동의 제의로서 1780년을 전후하여 시작되었다.

1948년 4·3사건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마을 문서들이 불타 없어졌기 때문에 이전 기록이 명확하지 않고, 포제도 잠시 중단되었었다. 다시 시작한 1950년부터의 기록(포제물종축홀기, 포제의식절차)은 남아 있다.

포제단에는 북향례를 행하도록 병풍 모양으로 석축이 둘러져 있었다. 그 안에 제단이 있고, 제단 주변에는 노송이 우거져 있어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예전에는 제청은 이장집으로 하고, 제관들이 각자의 집에서 음식을 준비해 가서 7일 정성을 했었다. 현재는 경노당을 제청으로 쓰고 잠수회에서 제관들 음식을 제공한다. 1980년도에는 제단의 북쪽 입구에 슬라브 건물(8평)을 지어 제사준비 및 대기소로 활용하고 있다.

제에 드는 비용은 북촌리 경계 부근의 영외낭알의 해조류 수입으로 충당했었다. 1965년에는 각동별로 3년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비용을 마련하였다.

지금은 이사무소 재정과 희사금으로 충당하며 마을 자생단체들도 협력하고 있는데 잠수회에서는 제수로 쓸 전복과 제관들이 먹을 식사의 반찬을 제공한다.

포제일은 입춘 후 정일(丁日) 또는 해일(亥日)이며, 상단제와 하단제로 나누어 봉행한다. 상단제는 마을수호신인 포신지위를 모시는데 상단제의 제물은 돼지 1마리, 쌀 1되, 생선 1마리, 쇠고기, 미나리, 생감주 2홉, 소주 2홉, 과일 7종, 속지 1권, 초 4개와 향을 마련한다. 인터넷 자료(네이버 블로그 사랑해)에는 시루떡, 청묵, 미역채, 전복 등 토속적인 제물을 올린다고도 한다.

하단제는 제신지위라고 하여 원혼을 모시는데 하단 제물로는 쌀, 생선 구운 것 1마리, 돼지 내장 삶은 것, 과일 7종, 소주 1병을 올린다. 돼지 대신으로는 생닭 1마리를 올린다. 하단제의 축문은 원한 멪힌 모든 혼령이 와서 배부르게 먹고 마신 후에 사람이나 가축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제관 선정은 마을총회에서 결정했다. 결혼한 남자로서 부정하지 않고 상주가 아닌 사람을 선출한다. 제관들은 전날 오후6시를 전후하여 초헌관의 지시에 다라 대축 이하 소제관이 제물을 준비하여 구지ᄆᆞ르 본향당과 당팥동산에 간다.

당에 가서 마을제 시작을 당신에게 아뢰고 배례한다. 7시가 되면 제관들은 제물을 들고 포제단으로 이동한다. 이동할 때는 향물을 뿌린다. 포제단에 도착하면 제물을 진설하고 12시에는 제를 봉행한다.

하단제가 끝나면 포제단 대기실에서 음복을 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음식물을 제관에 따라 차등분배했었으나 요즘은 균등분배한다. 이 때 간단히 포제결산보고를 한다.

포제를 마친 후 새벽에는 이사무소에서 도청지신위를 모시고 도청제를 한다. 포제 제관 종헌관이 도청제의 초헌관이 되며, 예차가 아헌관, 집례가 종헌관을 맡는다.

인터넷 자료(네이버 블로그 사랑해)에는 상단제의 종헌이 혼자 헌관이 되어 단작으로 제를 지낸다고 되어있는 것을 보면 어느 시기엔가 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도청제는 1948년까지 심방이 도청굿(거리굿의 일종)을 하던 것인데 포제와 함께 유교식으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도청제까지 끝나면 아침에 경로당에서 마을 주민들 모두 모여 잔치를 벌인다.(학교가 펴낸 우리 고장 이야기)

현재는 제단을 보호하고 행제시에 눈비를 막기 위해 기둥을 4개 세워 정자 모양의 기와집도 지었다. 제단 보호각이라고 할 수 있다.

위 글에서 서술한 병풍 모양의 석축 등 옛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상단의 상석(床石)은 기계로 깎은 현무암 3개를 좌우로 길게 잇대어 놓았으며 가운데에 지방 붙이는 시설을 설치하였다.

하단은 제단 보호각도 상단보다 작고 상석(床石)도 현무암 1개로만 되어 있다. 포제단 입구 오른쪽에 2008년에 세워진 제단개수기(祭壇改修記)가 있다.
《작성 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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