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경승지 찾아 시 1수..토평동(영천동) 한라산정상 임관주마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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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경승지 찾아 시 1수..토평동(영천동) 한라산정상 임관주마애명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3.1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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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과 선인이 기다리는데 오늘에야 정상에 올랐네.'

토평동(영천동) 한라산정상 임관주마애명
 

위치 ; 서귀포시 토평동 산15-1번지. 한라산 정상 북동쪽 암벽
시대 : 조선(1767년)
유형 : 마애명

백록담_마애_임관주

 

임관주(任觀周)는 풍천임씨로서 아버지는 임섬(任暹)이며, 어머니는 송필훈(宋必勳)의 딸이다. 조선시대 영조32년(1756) 정시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영조43년(1767) 6월 9일 정6품 정언(正言)으로 재임중 언론의 중요성, 영조가 지은 어제유곤록(御製裕昆錄=난역(亂逆)의 원인을 설명한 책)의 불합리한 서술(난역의 근본이 斯文에 있고, 그 폐해가 홍수·맹수보다 심하다고 한 결론), 재상의 잦은 교체, 도상(圖像)을 가져온 삼사신(三使臣) 파직, 제술(製述) 시험 때 성균관 유생을 모독한 도승지 송영중(宋瑩中)의 파직, 서울과 지방 관원들의 비리 적발, 무장들의 권위 존중 등 10여 가지에 달하는 조목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삼상(三相=영의정, 좌의정, 우의정)논책상소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저 나라에 있어서 언로(신하로써 임금에게 말을 올릴 수 있는 길)는 사람에게 이목이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진실로 귀로 하여금 그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고, 눈으로 그 밝음을 보지 못하게 한다면 그를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오호라, 전하의 뜻이 한결같이 좌우하여 따라 붙은 것이 불어오는 바람 앞의 풀과 같은데 빼어나게 송백이 될 자가 몇 사람이겠습니까?

말을 하게 하여서 상을 주어도 오히려 기피하는데 하물며 그렇지 못함에랴? 전후하여 말을 하였다가 죄를 얻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아울러 상소를 용서받는다면 조야(朝野)가 서로 기뻐할 것이고, 풍채가 갑자기 변할 것입니다. …

이명운이 제주목사로 있을 때 수탈만 일삼고 7천 명의 기민(饑民)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신은 이명운을 영원히 금고시키고 그 전형의 관원에게 빨리 파직의 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


이 상소로 임금이 몹시 노하였으며, 마음 씀씀이가 교묘하고 은밀하다 하여 영조43년(1767) 7월 대정현(안덕면 창천리)에 가극안치로 유배되었다.


그는 영암에서 배를 타고 보길도에 이르자 풍랑으로 후풍하게 되었다. 이때 사공이 78년 전 제주목에 유배가던 우암 송시열의 후풍시가 이곳 백도 암벽에 새겨져 있다 하여 올라가서 글을 써 화답하고 음각하였다.

별도포에 도착한 그는 창천촌에 적거를 정해 독서에만 열중하였는데 집 주위에는 가시덤불이 둘러져 있었다. 그는 마을 주민들을 모아 한문을 가르쳤는데, 20년 전까지만 해도 창천에 한시를 짓는 풍토가 있었던 것은 바로 임관주의 영향이었다.

그가 적거한 지 두 달이 지난 9월 대신들이 바른 말을 하는 관리를 섬에 계속 둘 수 없다 하여 그는 특별히 석방되었다. 또는 70세 된 늙은 아비가 있다 하여 방면되었다고도 한다.

복관 후 영조51년(1775) 사간(司諫)으로 재임 중에는 무과 응시생 중에서 시험관을 모욕한 자에 대해 엄한 형벌을 주고 유배를 보낼 것을 주청하였고 정조1년(1777) 집의(集義) 재임 중에는 토역(討逆), 성균관의 개방, 과장(科場)에서의 부정행위 방지, 궁방(宮房) 시장(柴場)의 혁파, 북도(北道) 흉황과 관련한 함경도 관찰사 조중회(趙重晦)의 파직 등을 주청하였다.

정조6년(1782) 시폐(時弊)를 상소하자 대사헌 김이소(金履素)의 탄핵을 받아 흑산도로 유배되었다가 정조8년(1784)에 남해현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순조1년(1801) 복관(復官)되었다.

해배된 임관주는 제주를 떠나기 전에 유배지 앞 계곡인 창고천을 시작으로 산방굴, 천제연, 백록담, 용연 등 당시 경승지로 이름난 곳에 들러 각각 제영 1수씩을 읊고 바위에 새겼다.

한라산 정상 동쪽 암벽에 새긴 그의 시는 다음과 같다.


茫茫滄海濶 아득하고 아득한 푸른 바다 드넓은데
一拳漢拏浮 주먹만한 한라산이 떠 있구나.
白鹿仙人待 백록과 선인이 기다리는데(백록담에서 신선이 기다리는데, 백록이 신선을 기다리는데)
今登上上頭 오늘에야 정상에 올랐네.


丁亥秋 任觀周 정해년(1767) 가을 임관주
《작성 1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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