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잠수만복(潛嫂萬福)..하도리 신동코지 불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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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잠수만복(潛嫂萬福)..하도리 신동코지 불턱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3.19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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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방형으로 제주도내에 있는 불턱 중에서 넓은 쪽에 속한다.

하도리 신동코지 불턱
 

위치 ;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468-4번지. 신동마을 바닷가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유형 : 어로유적(불턱)

하도리_신동코지불턱

 

제주에 언제부터 해녀(海女, 潛女)가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에 전복 속에서 진주를 캤다는 기록이 나온 이래로 해녀는 각종 기록에 자주 등장한다.

제주 해녀의 역사는 제주에 공동체 생활을 영위했던 역사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제주 해녀들은 맨 몸에 물소중이, 물적삼 등을 걸치고 수중에서 해산물을 채취했다.

전복이나 조개류를 채취할 때는 빗창을 사용하고, 해조류를 채취할 때는 호미류를 사용한다. 이들은 태왁이라 부르는 물체의 부력에 의지하여 장시간 바다에서 채취활동에 종사하고, 채취한 해산물은 태왁에 매단 망사리라는 그물주머니에 담아 보관한다.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을 이르는 말로 제주에서 원래 쓰였던 말은 ᄌᆞᆷ수(潛嫂), ᄌᆞᆷ녜/ᄌᆞᆷ녀(潛女) 등이지만 오늘날에는 해녀(海女)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특별한 잠수기구 없이 물 속에서 장시간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직업의 희귀성으로 인해 해녀는 세계적으로도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의 여성들은 7~8세 정도면 바닷가 야트막한 물에서 수영을 배웠다. 수영을 익히면 어린이용 테왁을 들고 물질 견습이 시작되어 13~15세까지 기술을 연마하면 숙련공이 된다. 물질이란 해녀가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잠수작업을 이르는 말이다. 개인차는 있으나 이후 숙련된 정도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누어 부른다.


인조6년(1628) 제주에 유배되었던 이건(李建) : 선조의 일곱째 아들인 인성군 공(珙)과 좌참찬 윤승길(尹承吉)의 딸 해평윤씨의 사이에서 태어난 왕족이다. 광해군 복위를 모의했던 부친 인성군의 죄에 연좌되어 제주에 유배되었다.


 이건은 유배 기간 중 제주의 풍물을 자세히 기록해 『제주풍토기』라는 책을 남겼다.

그는 이 책에서 당시 제주해녀들이 겪는 고통의 실상을


〈해산물에는 단지 전복, 오징어, 미역, 옥돔 등 수 종이 있고, 이외에도 이름 모를 여러 종의 물고기가 있을 뿐 다른 어물은 없다. 그 중에서도 천한 것은 미역을 캐는 여자로서 잠녀(潛女)라 한다. (중략) 그들은 전복을 잡아서 관가에 바치고 나머지는 팔아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생활의 간고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며, 더구나 부정한 관리가 있어 탐오지심(貪汚之心)이 생기면 명목을 교묘히 만들어 빼앗기를 수없이 하므로 일년 내내 애써 일을 해도 그 요구를 들어주기에 부족하다.〉

라고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였다.

또한 순조25년(1825) 우의정 심상규의 글에는
〈한 겨울에 전복과 미역을 채취하는데 남녀가 옷을 벗고 바다에 들어가 떨면서 물결에 휩싸여 죽지 않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요행이며, 해안에 불을 피워놓고 바다에서 나오면 몸을 구워 피부가 터지고 주름져서 귀신처럼 추하다.〉


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글은 해녀들의 물질이 얼마나 힘들며, 불턱이 해녀들의 쉼터이자 거친 바닷가에서 해녀들의 체력을 회복하고 추위로부터 몸을 지키는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글이다.
해녀들은 공동으로 자신들의 밭인 바다를 관리하고 감독한다.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 일하다가 뭍에 올라와서 쉬게 되는데 그 쉼터를 불턱이라 한다.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는 장소이며, 추운 겨울 물질을 마치고 불을 피워 몸을 덥히는 장소이다. 탈의실과 기능이 비슷하지만 담화의 공간이며, 물질 기술에 대한 전수의 공간이기도 하고, 공동의 의견을 모아내는 회의공간이기도 하다.


불턱에도 예절이 있다. 상군이 앉는 곳을 상군덕(턱)이라 하고 중군, 하군이 앉는 자리가 은연중에 정해져 있다. 물질 경험이 풍부하고 노장층 해녀 중 기능이 가장 뛰어난 해녀를 상군(上軍)이라 하며 상군불턱은 그들만이 사용한다. 원로 잠수를 대상군(大上軍)이라 불러 그녀의 말은 잘 지키고 규율을 스스로 강요한다. 군(軍)이란 해녀의 위계질서를 군대처럼 엄격히 다룬다는 함의(含意)로 본다.


불턱은 바닷가 바람을 가릴 위치에 돌담으로 둘러 만든 해녀의 대기처이자 휴식공간이다. 물질을 하고나서 불을 피워 놓고 쉬면서 옷을 갈아입거나 꽁꽁 얼어붙은 몸을 화기에 풀어 녹이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상군(최고급 잠수)으로부터 잠수질 기법과 예절, 바다에 대한 지식 등을 배우는 교습소이기도 하다.


소중기를 입던 시대에는 바다에서 장시간 작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물질을 하다가 중간중간 물밖으로 나와서 불을 쬐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다가 다시 바다에 들기도 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고무옷을 입게 되면서는 물질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상대적으로 불턱에서 쉬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지금은 마을마다 현대식 탈의장이 있지만 십수년 전만 하더라도 해녀들은 모두 이곳을 이용했었다. 일부 마을의 경우 해안도로 개설과 포구정비사업으로 불턱이 훼손돼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하도리 신동코지 불턱은 문주란 섬에서 서쪽 해안선을 따라 가다보면 신동리 해녀 탈의장 옆에 위치하고 있다. 장방형으로 제주도내에 있는 불턱 중에서 넓은 쪽에 속한다. 가로는 어른 보폭으로 16보, 세로는 12보, 높이는 2m 정도의 겹담으로 만들어졌으나, 바람을 막기 위해 시멘트로 덧발림을 했다.

내부에는 동쪽과 서쪽을 두고 가운데로 가름 담을 만들었으며 동쪽 불턱 내부는 다시 동서 방향으로 3분의 1 정도의 면적을 가름 담을 만들어 슬레이트 지붕까지 올렸던 흔적이 있으며 우측에는 1979. 8. 29 준공, 좌측에는 잠수만복(潛嫂萬福) 이라고 쓰여 있다.

내부는 세 칸으로 나뉘어져 있어 큰 불턱, 작은 불턱으로 두 개의 불턱이 설치되었고, 작은 불턱 앞으로 출입구를 두어 그 안쪽에 은밀한 공간을 두었다. 그 공간에는 사방 벽을 따라 짐을 올려놓을 수 있는 단이 만들어져 있다.

세 칸의 불턱 중 큰 불턱은 상군 해녀들이 주로 자리 잡았던 곳이고, 작은 불턱에는 어린아이들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부의 가장 안쪽 공간에서 옷을 갈아입었다고 한다. 입구에 덧발림한 시멘트가 떨어졌는데 원래 담 벽에 1965. 9월 13일이라 새겨져 있어 불턱을 수리했던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작성 1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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