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무관으로 벼슬생활..토평동(영천동) 한라산 정상 김종보 마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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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무관으로 벼슬생활..토평동(영천동) 한라산 정상 김종보 마애명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3.21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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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제주인의 마애석각으로는 가장 먼저 새겨진 것이다.

토평동(영천동) 한라산정상 김종보마애명

위치 :서귀포시 토평동 산15-1번지. 한라산 정상 북동쪽 암벽
시대 : 조선(1811년)
유형 : 마애명

백록담_마애_김종보 일행

 

마애석각의 내용은 金鍾譜 夫士簡 李膺良 洪範植 張文明 辛未이며, 글자 크기는 가로 7㎝, 세로 8㎝이다.

김종보(金鍾輔)는 제주 조천리 출신이며 김익철(金益喆)의 아들이다.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에서는 본관이 경주(慶州)라고 하였고, 백규상은 본관이 김해라고 하였으니 확인이 필요하다.

생년은 영조38년(1762, 壬午)이다. 『갑진왕세자책봉경용호방(甲辰王世子冊封慶龍虎榜)』에 따르면 23세인 正祖8년(1784) 甲辰에 무과 정시(庭試)에 응시하여 병과(丙科)에 합격했다.

급제자 2692명 중 2418위이다.(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순조5년(1805) 8월부터 순조8년(1808) 3월까지 명월만호를 지냈다.

그 후에는 전주와 함흥에서도 무관으로 벼슬생활을 하였다. 전라도 지방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는 자신의 곡식을 실어다 구휼했다고 한다.

부사간(夫士簡)은 김종보와 무과에 동반급제한 부사민의 친동생이다.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는 사료를 찾지 못하였다.

신미년은 1811년인데 제주인의 마애석각으로는 가장 먼저 새겨진 것이다.
《작성 1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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