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슬기롭게 참되게 씩씩하게..애월리 애월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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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슬기롭게 참되게 씩씩하게..애월리 애월초등학교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4.07 0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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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제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애월리 애월초등학교

위치 : 애월읍 애월리 1736번지(애월로139-10)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교육기관(초등학교)

애월리_애월초등학교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이 공포되기 이전에 설립된 초등교육 기관은 제주, 정의, 대정, 서귀, 조천의 5개 교에 불과하였다. 제2차 조선교육령의 공포로 1군1교(一郡一校)제에서 1면1교(一面一校)제로 정책 방향이 바뀌면서 학교 설립이 활기를 띠었다.

일제강점기 애월리에서는 1920년 3월 1일 애월공진사숙이 개설되어 3년 동안 운영되어 오던 중, 1923년 5월 15일 신우공립보통학교가 인가됨에 따라 공진사숙을 인수하고 애월면 애월리 1736번지 4,659.6㎡의 교지에 같은 해 9월 4일 개교되었다. 학교 후원과 육성을 위해서 김도현, 장제필의 공이 많았다. 교정에 立法院 議員 金道鉉 記念碑와 校長 張濟弼 先生 頌德碑가 서 있다.

1923년부터 당국은 신엄과 구좌에 각 1개교씩 학교를 설립키로 하고 설립 기금 오천원을 학교가 서는 지방에서 부담토록 했다. 당시 애월읍장은 김도현씨였는데 꾀를 내어 “아무 마을이나 돈 오천원 내는 마을에 학교가 돌아간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신엄리 출신 사업가인 백창유 씨가 “그게 정말이냐?”고 다짐한 다음 “정말이다.”고 하자 얼른 그 자리에서 희사금 오천원을 쾌척해 버렸다. 그러자 애월 사람 문창숙 씨가 나서서 “도대체 학교가 신엄리로 가게 할 수 있느냐?”고 애월면 서오리(西五里 : 애월, 곽지, 금성, 납읍, 어도, 어음 등) 이장들이 다시 오천원을 모금했다.

그래서 1923년 5월 15일 애월리에 지금 애월초등학교의 전신인 신우공립보통학교가 설립 인가되고 그해 9월 4일에 개교하였다.

1935년 공립보통학교의 명칭을 신우공립보통학교에서 애월공립보통학교로 부르게 되었다.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을 공포하면서 종래의 보통학교라는 명칭이 심상소학교로 개칭돼 일본인이 쓰는 학교 명칭과 동일하게 되었다.

그래서 애월공립보통학교는 애월공립심상소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41년 4월 25일 애월공립보통학교로, 1950년 6월 1일 애월국민학교로 개칭되었다. 태평양전쟁 중인 1945년에는 학교 관사는 일본관동군 사령관(마쓰이 중장)의 관사로 모든 교실은 병사들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948년 11월에는 4.3사건 토벌대 독립대대가 주둔했다.

제1대 이이스까 다까지로오(飮塚孝次郞)를 비롯하여 광복 전 6대 교장 모두 일본인이었는데 제7대 이르러 한국인 교장 김한희(金瀚熙)가 부임하였다. 초창기 제10회 졸업자까지는 여자 취학학생이 없이 남자 433명뿐이었다.

애월초등학교 소속으로 1934년 4월 부설 고성간이학교가 인가된 바 있고, 1940년 4월 부설 어도간이학교가 인가되었으나 1943년 3월 본교로 승격되었다. 학구는 애월면 서부 전역에서 취학하였으나 광복 후 납읍, 어도, 곽지에 학교가 신설됨에 따라 애월리와 고내리에 한정되었다.

하가리에서는 1936년부터 1942년까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아동들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신성개량서당을 하가리 향사에 설립하였다.

광복 직후 하가리 주민들이 앞장서 1946년 9월 1일 설립 인가를 받아 애월면 하가리 1572-2번지에서 하가공립국민학교로 지금의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가 개교하였고, 1949년 2월 5일 4·3사건으로 인하여 교사가 소실되었으나 학구민들의 노력으로 1950년 복구되었다.

1954년 6월 4일 학구민들의 요청으로 인해 더럭국민학교로 개칭한 바 있다. 더럭초등교 설립에는 하가리민들과 청년회, 진흥회 등의 기금 희사가 있었다.

1946년 1월 20일에 애월초등학교 일부 교실을 임시로 수용하여 사설 학술강습소인 애월중학원을 개설하여 교육하기 시작하였다. 수업연한 1년(애월중학원 학적부에는 2학년까지 기록된 것으로 보아 2년제로 추정됨), 모집 인원 150명, 수업료 월 20원이었다.

그 후 설립자 박형순의 명의로 전라남도 도지사에게 인가 신청서를 제출하였으나 인가 당국은 사설 강습소를 초등학교 구내에 설치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서류가 반려되어 부득이 애월면 회의실과 애월리 향사를 빌려서 1947년 6월 18일에 애월중학원 설치인가를 받았다.

당시 강사 진용은 장응선(애월공립초급중학교 초대 교장) 원장을 비롯하여 이영순, 강창균, 김봉원, 김관진, 김화숙, 안윤협, 박중흠, 이한익, 강응익 등이다. 1947년 6월 18일 학생 150여 명으로 애월중학원이 개교하게 되었다.

애월초등학교 주요 연혁
1923. 5. 15. 신우공립보통학교 설립 인가
1923. 9. 4. 개교
1949. 3. 1. 17학급 편성
1972. 11. 15. 교육부지정 체육시범학교 운영
1975. 11. 11. 교육부지정 체육시범학교 운영
1981. 3. 10. 병설유치원 개원
1993. 3. 1. 급식학교 실시
1996. 3. 1. 애월초등학교로 교명 변경, 더럭분교장 인가
2009. 1. 과학실 현대화, 다목적실, 급식실 개축
2009. 7. 운동장 육상 주로(우레탄) 및 주변 인터로킹 설치
2010. 2. 학교생태숲 조성

2013. 2. 15. 제88회 졸업(25명 졸업, 총 4,872명)
2013. 3. 26. 해망관(체육관) 개관

교훈 : 슬기롭게 참되게 씩씩하게


교가[작사 김동인/작곡 장중석]


창공에 우뚝 솟은 한라의 기슭
물 맑고 땅 기름진 아늑한 고장
배움의 전통은 종을 울리어
우리는 몸과 뜻을 갈고 닦는 꽃송이
해망에 어린 달빛 우리들 표상
그 이름도 드높다 애월교 빛나리.


교목 : 푸름, 굳셈, 새로움을 상징하는 소나무이다.
교화 : 맑음, 밝음, 끈기 있음을 상징하는 금잔화이다.

애월(涯月: 물가에 비친 달)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갖고 있는 애월초등학교는 9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하물을 비롯한 애월십경을 품은 아름다운 마을의 기운을 받아서 시인, 아동문학가, 시조시인, 서예가, 화가 등 예술인이 다수 배출된 예술인의 고향이기도 하다.

여러 분야에서 그 공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대통령 표창, 화랑무공훈장 등의 수상자가 많다. 교육계를 비롯하여 변호사, 판, 의사, 사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제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한 때는 몇 백 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이지만 현재(2013년 12월)는 121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는 소규모 농어촌 학교로 선배들의 예술혼을 이어가기 위해 문화예술교육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2014년 2월에는 제89회 졸업생은 18명이었다.
(학교가 펴낸 우리 고장 이야기, 애월초등학교 홈페이지,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작성 16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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