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대한민국 보물 제1902호..용담1동 제주향교 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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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대한민국 보물 제1902호..용담1동 제주향교 대성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4.14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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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28년(1828) 이행교 제주목사에 의해 제주향교가 현 위치로 이건

용담1동 제주향교 대성전

 

대한민국 보물 제1902호(160613 지정)
위치 : 제주시 용담1동 298번지
시대 : 조선초기(1394)
유형 : 교육기관(향교)

 

용담1동_제주향교대성전

 

제주향교는 애초 경사지형에 맞추어 홍살문–외삼문–명륜당–대성전–계성사로 이어져, 강학공간(명륜당)이 앞쪽에 있고 제향공간(대성전)이 뒤쪽에 자리한 전학후묘(前學後廟) 배치였으나, 1946년 제주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영역이 축소되고 명륜당이 대성전 남쪽에 신축되어 현재는 좌묘우학(左廟右學)의 배치를 하고 있다.

대성전은 문묘(文廟)이며 그 안에 공자(大成至聖文宣王)의 위패를 중심으로 복성공 안자(復聖公 顔子, 이름은 回, BC521∼490), 종성공 증자(宗聖公 曾子, 이름은 參, BC505∼436), 술성공 자사(述聖公 子思, 본래 이름은 孔伋, BC483∼402), 아성공 맹자(亞聖公 孟子, 이름은 軻, BC372∼289) 등의 오성(五聖)과 공문십철(孔門十哲 ; 민손·염경·염옹·재여·단목사·염구·중유·언언·복상·전손사), 신라양현(新羅兩賢 ; 설총·최치원), 송조6현(宋朝六賢 ; 주돈이·정호·정이·소옹·장재·주희), 고려양현(高麗兩賢 ; 안향·정몽주), 조선14현(朝鮮十四賢 ;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김인후·이이·성혼·김장생·조헌·김집·송시열·송준길·박세채)을 봉안하고 있다. 신라·고려·조선을 합하여 동국(東國) 18현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주향교 대성전은 1827년 이건 이후 제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제주 지역의 독특한 건축 요소들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전후좌우에 퇴칸을 두었는데 퇴칸 길이가 비교적 길며, 합리적이고 정연한 평면구성이다. 양상호 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기둥은 평주나 고주 모두 매우 약한 민흘림과 함께 비교적 세장(細長)한 느낌의 프로포션(비율, 비례)을 갖는다. 이는 제주민가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제주건축의 특징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귀포[隅包]와 배면포 하부에는 처마의 처짐을 방지하기 위해 덧기둥(기둥재의 보강을 위해 덧붙인 기둥)을 설치하였는데 네 모서리 4본과 배면중앙부에 4본 모두 8본이다. 이 덧기둥들은 다른 지역 건축에선 찾아볼 수 없는 부재로서 제주향교 대성전과 대정향교 대성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기둥이다.

특히 네 모서리의 덧기둥은 외목도리가 직교하는 부위에 귀한대를 대신해 귀공포(공포(栱包)는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 등에 짜 맞추어 댄 구조물)를 구성하고 있는 구조재 기둥이다. 이 덧기둥 상부엔 다른 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문양과 부재가 있어 더욱 새로운 성격을 나타내고 있어 제주향교 대성전만의 특징이다.

이에 대하여 양상호 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제주향교 대성전의 귓기둥밖으로 외목도리를 받치고 있는 기둥의 존재는 육지건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또 그 기둥의 머리부분에 새겨져 있는 문양은 육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아주 특이한 것으로 오히려 남방계의 느낌을 주는 문양이다. 이러한 기둥과 문양은 대정향교 대성전에서도 보인다. 일찍이 1924년 당시의 경성고공 건축과 교수였던 후지시마도 제주도의 건축을 답사하여 이것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남방계에 대한 의문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강력한 중앙집권테제를 표방했던 조선왕조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담당하던 향교에서 그것도 대성전에서 이렇듯 독특하고 독자적인 건축형식이 허용되었음은 무엇을 의미할까?〉

가구(架構)는 다른 향교 대성전보다 전후 퇴칸이 넓어져 고주 위의 대들보 길이가 길어 보이지 않고 단아한 느낌을 주고 있다.

공포(栱包)의 경우, 기둥 위에 놓인 주심도리(柱心道里)와 기둥 바깥의 외목도리(外目道里) 사이의 간격이 넓어 익공(翼工, 새 날개 모양의 부재)이 매우 길게 뻗어 나가 있는 형태로 육지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를 띠고 있다.

공포는 1출목 이익공계 공포양식인데, 익공의 길이가 매우 길며 상하 익공의 길이가 뒤바뀐 듯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익공의 쇠서형태 또한 특이하며 출목의 간격도 넓어 매우 특징적인 익공형식이다.

주심도리의 첨차(檐遮)와 화반은 그 형태가 크기가 매우 흡사한 내용을 보이는 특징이다. 화반 상단에 3개의 소로를 올리는 점이 특이하다.

한편, 지붕은 양 측면에 삼각형 모양의 합각면이 있는 팔작지붕이지만 경사가 완만하여 합각면의 크기가 작고, 처마에서 추녀 쪽이 치켜 올라간 앙곡과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추녀 쪽이 빠져나간 안허리곡(曲)이 세지 않은데 이는 제주건축의 전반적인 특징이다.

그리고 건물이 낮아 전체적으로 지면에 달라붙은 듯하지만, 건물의 규모가 커서 안정적이고 장중한 느낌을 준다. 지붕높이가 주칸에 비해 낮게 보이는 시각적 안정감을 시도했다. 이러한 특성은 바람이 세고 비가 잦은 제주도의 자연조건에 순응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처마의 길이는 주칸 길이에 비해 짧은 느낌이다. 이런 대성전 합각마루 설치방식은 부석사 무량수전과 유사한 점을 들어 상대(上代)의 건축적 특성일 수 있음을 보인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유교건축인 제주향교 대성전은 이건 이후 현위치에서 큰 변형 없이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제주도 건축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향교는 학교로서의 기능이 사라진 가운데 일제는 제주향교를 없애려 했지만 유생들의 반대로 끝내 향교를 없애지 못했다. 최후로 중수한 것은 1918년이다.

2015년 9월 제주시가 국가 보물 지정을 신청하였으며 2016년 4월 8일 문화재청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으며(제주新보 150923, 미디어제주 150923, 뉴시스 150923, 제주매일 150923, 문화재청 보도자료 160408) 2016년 6월 13일 보물로 지정하였음을 발표했다.
2016년 6월19일에는 이에 따른 고유례를 봉행하였다.

①귀포[隅包]=귓기둥 위에 짜여 지는 공포대
②귀한대(-限大)=귓기둥 위에 짜인 제공에 45도 각도로 가로로 얹은 살미(살미=공포에서 기둥 위의 도리 사이를 소의 혀 모양으로 꾸민 부재의 짜임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③가구(架構)=낱낱의 재료를 조립하여 만든 구조물 또는 목조건축 구조부재(構造部材)의 짜임새 전체를 일컫는 말

④주심도리(柱心道里)=한옥 지붕구조에서 들보에 직각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둘러 얹혀서 연직하중 또는 수평하중을 받는 가로재 중 하나. 평주의 위에 얹은 도리를 가리킨다.
⑤외목도리(外目道里)=한옥 지붕구조에서 들보에 직각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둘러 얹혀서 연직하중 또는 수평하중을 받는 가로재 중 하나. 주심 밖의 외부도리로 도리 중 가장 낮게 걸린다. ①포작(包作) 바깥에 서까래를 얹기 위하여 가로 얹는 도리. ②기둥의 중심선 바깥쪽에 나가 걸리는 도리.

⑥첨차(檐遮)=공포를 구성하는 기본 부재로 살미와 반턱맞춤에 의해 직교하여 결구되는 도리 방향의 부재
⑦화반=공포대의 주간(柱間) 구성에 있어서 상하에 위치한 도리 방향의 긴 부재 사이를 받쳐주기 위해 사용하는 부재
⑧앙곡=끝머리가 휘어 오른 추녀. 또는 그 휘어 오른 곡선

⑨안허리곡은 건물 가운데보다 귀퉁이의 처마 끝을 더 튀어나오도록 처리한 것이고 귀솟음은 건물 귀퉁이쪽의 기둥을 가운데보다 높게 처리한 것을 말한다. 건물의 귀퉁이쪽 처마와 기둥은 실제 높이보다 밑으로 처져보인다. 사람의 착시 때문이다. 안허리곡과 귀솟음은 바로 착시를 막기 위한 고안이다.

제주향교 대성전은 2016년 6월 13일 대한민국 보물 제1902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청이 배포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 종 별: 보물 제1902호
□ 문화재명: 제주향교 대성전(濟州鄕校 大成殿)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 298-1번지
ㅇ 양 식: 정면 5칸, 측면 4칸, 팔작지붕, 이익공
ㅇ 수 량: 1동
ㅇ 조성연대: 조선 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재)제주특별자치도향교재단
ㅇ 지정면적: 155㎡

□ 지정사유
ㅇ 제주향교는 1394년(태조 3) 관덕정에서 동쪽으로 1리 정도 떨어진 가락천의 서안에 위치한 교동에서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5차례 이건과정을 거치면서 1827년(순조 27)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ㅇ 제주향교는 애초 경사지형에 맞추어 ‘홍살문-외삼문-명륜당-대성전-계성사’로 이어지는 ‘전학후묘’의 배치였으나, 제주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영역이 축소되고 명륜당이 대성전 남쪽에 건립되어 현재의 ‘좌묘우학’ 배치가 되었다.

그러나 대성전과 계성사는 이건 이후 현재까지 제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ㅇ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전면 퇴칸은 개방하여 고주열에 벽체를 설치하고 창호를 달았다. 나머지 삼면에는 현무암 화방벽을 설치하였다.

기둥은 평주와 고주 모두 약한 민흘림을 주었다. 특징적인 것은 귀포와 배면포의 외목도리 장여 하부에 처마의 처짐방지를 위한 덧기둥을 설치하였는데, 다른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제주에서도 대정향교와 제주향교 대성전에만 나타난다.

다만, 제주향교 대성전 덧기둥 상부에는 다른 건물에서 보기 힘든 문양과 교두형 부재가 보이고 있어 지역적 특색이 반영된 이 건물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ㅇ 가구는 2고주 7량가로 부재가 길이에 비해 가늘고 긴 편이지만, 대들보를 항아리형에 가까운 형태로 가공하는 등 부재의 가공이 깔끔하여 정제된 느낌을 준다.

ㅇ 공포는 일출목 이익공 양식인데, 출목의 간격이 넓어 익공의 길이가 매우 길게 뻗어 나가 있고, 내부 보아지 쪽은 하부의 익공이 상부보다 길어 상하가 뒤바뀐 듯한 형상이며, 익공의 형태 또한 육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양을 하고 있어 공포에서도 제주만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ㅇ 지붕은 팔작지붕이지만 물매가 완만하여 합각면의 크기가 작고, 처마의 앙곡과 안허리곡도 세지 않으며, 건물이 낮아 전체적으로 지면에 달라붙은 듯하지만, 건물의 규모가 커서 안정적이고 장중한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특성은 바람이 세고 비가 잦은 제주도의 자연조건에 순응한 건축의 결과로 볼 수 있다.

ㅇ 이처럼 제주도의 대표적인 유교건축 문화유산인 제주향교 대성전은 건립과 이건 이후 현위치에서 큰 변형 없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제주지역 내 다른 건축문화재에 비해 역사가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 건축의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가치가 있다.

2017년 대성전 주변의 변형된 돌담 정비공사 진행 중 일부 구간에 대한 해체 결과, 과거 철거되어 사라져 버린 서무(西廡)의 초석으로 추정되는 원형 유구가 확인되면서 2018년 4월부터 세계유산본부가 (재)제주문화유산연구원에 의뢰해 제주향교 대성전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대성전 앞 월대(月臺)와 앞마당 등 총 651㎡에 달하는 조사 대상지는 발굴조사 이전에 이미 잔디가 전면에 깔려 있는 상태였고, 월대(月臺)의 기단석과 석축, 1952~53년 훼철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무·서무(東廡·西廡)와 관련한 초석과 석렬, 중앙의 신도(神道)가 표면에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발굴 결과 순조28년(1828) 이행교 제주목사에 의해 제주향교가 현 위치로 이건했을 때 모습이 최초로 확인됐다.

동무(東廡)와 서무(西廡)의 터에서 각각 2개씩 대칭되는 문주석(門柱石)과 건물의 서쪽 경계에 해당하는 기단석렬도 출토됐다. 이로써 기존 문헌 및 사진자료로만 추정됐던 건물의 세로 폭이 4.8m 가량임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동무와 서무는 대성전 좌우에 있는 건축물로 동무는 서향, 서무는 동향으로 배치돼 있다. 이와 함께 과거에는 동무와 서무 앞에 보도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동무·서무의 전체적인 범위가 이번 조사대상지를 벗어나 인근 제주중학교 운동장까지 연장되어 있음에 따라 정확한 전체 길이는 확인할 수 없었다.

동무와 서무는 대성전에 봉안된 10철(哲)을 제외한 공자의 제자, 중국의 역대 현인(賢人) 94위 및 우리나라의 명현(名賢) 18위 등 총 112위 위패를 동서로 봉안하던 곳이다. 우리나라 18현은 대성전으로 승차하여 현재와 같이 39위를 봉안한다.

또한 과거 제주향교의 대성전 앞으로 월대(月臺)가 있었고, 월대(月臺)와 마당의 바닥면이 전체적으로 전(塼, 벽돌)이 깔렸으며, 중앙에 신도(神道)가 설치됐었던 사실도 확인됐다.

다수의 기와편(일부 막새편 포함)도 출토됐다. 이 중 수성(守成)과 임신(壬申)이라고 새겨진 명문기와도 발견됐다. 수성은 성문거교군(城門擧橋軍)이 근무했던 수성소(守成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와 유사한 기와는 제주목관아를 비롯해 오현단 부근의 제주성, 운주당터에서 발견됐다.(제주신보·한라일보·제주의소리 181022)
《작성 160411, 보완 160619, 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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