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촛불 켠 듯 피어나는 마로니에, 칠엽수(七葉樹)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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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촛불 켠 듯 피어나는 마로니에, 칠엽수(七葉樹)꽃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23.05.1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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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마로니에와 칠엽수는 엄연히 다른 종(種)

 

촛불 켠 듯 피어나는 마로니에, 칠엽수(七葉樹)꽃

칠엽수(七葉樹) 칠엽수과, (英名) Japanese Horse Chestnut, 불어 Marronnier

 

5월! 담록의 싱그러운 빛깔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싱그러운 풀냄새, 여기저기 곳곳에 피어나는 갖가지 꽃이 한 해를 여는 꽃을 피우고 새잎을 냅니다. 바야흐로 아름답고 고운 새 생명체들이 생동하는 계절입니다.

흔히 생명체라고 하면 식물을 제외하고 동물만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식물 또한 확연한 생명체이며 이 땅의 모든 생명체를 먹여 살리는 영양물의 근원적 생산자이기도 합니다. 기후 온난화 현상 탓인지 근래에 들어 꽃들의 개화기가 확실히 빨라진 것 같습니다.

온갖 꽃들이 이제까지의 개화기와 그 순서를 무시하고 동시다발적으로 같은 시기에 피어나기 일쑤입니다. 자연의 질서를 가장 잘 따르는 식물의 세계에도 기존의 질서가 무너져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무에 꽃이 현란하게 많이 피었습니다. 마치 커다란 초록빛 나무에 가지마다 주렁주렁 촛불을 켜놓은 듯합니다. 바로 칠엽수입니다. 우리에게는 마로니에로 더 잘 알려진 나무입니다.

식물도감 기재문에는 5~6월에 피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5월 초에 이미 꽃을 피워 이제는 거의 꽃이 져가는 상태에 있습니다. 가지마다 온통 촛불을 켜 놓은 듯한 칠엽수를 보니 불현듯, 불을 켜서 불이 일어나는 것 같다는 사전(事典)의 뜻처럼, 생각 나는 마로니에 노래가 있습니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박 건이 1971년 발표하여 대 히트곡이 된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라는 노래입니다. 군부독재 등으로 대학가가 암울한 분위기였던 당시 그야말로 젊은 연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 슬픈 듯 감미롭게 파고드는 낭만적 감성과 암울한 시대상이 함께 겹친 듯한 가사와 음률이었습니다. 이 노래를 다시 되새김질하는 것만으로도 아련한 그 시절의 추억으로 빠져들 듯합니다.

하지만 정명(正名)이 칠엽수인 마로니에 그 자체를 알고 보면 그렇게 낭만적이지도 않고 특별한 나무도 아닙니다. 오히려 박 건의 노래가 있음으로 해서 널리 알려지고 왠지 젊음의 한때를 그리움과 낭만에 젖게 하는 나무가 되었을 뿐입니다.

꽃은 곱게 피어나는데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아름다움과 허전함, 그리움과 슬픔, 상반된 감정이 함께 앙상블을 이루는 듯한 고운 나무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노래 때문에 칠엽수라는 본래의 이름은 어색하고 생소한 감이 드는 대신에 마로니에가 맛깔나는 참 이름이다시피 되어버린 것입니다. 가짜가 진짜를 잊히게 한 셈입니다. 엄밀히 살피면 마로니에와 칠엽수는 엄연히 다른 종(種)입니다.

 

푸른 나무에 촛불을 켠 듯 피어나는 칠엽수꽃

 

국가표준 식물명은 마로니에가 아닌 칠엽수입니다. 일본 전국에 분포하며 동남아와 국내에도 오래전부터 자생해 온 칠엽수는 높이는 30m에 달하고 굵은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며 겨울눈은 크고 수지(樹脂)가 있어 만지면 끈적거립니다.

어린 가지와 잎자루에 붉은빛이 도는 갈색의 털이 있습니다. 잎은 마주나고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진 겹잎인데 작은 잎은 5∼7개입니다. 대부분이 7개의 작은 잎을 가지고 있어 칠엽수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꽃은 6월에 분홍색 반점이 있는 흰색으로 피며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를 이루어 촛불을 켜서 매달아 놓은 듯, 빽빽이 달립니다. 열매는 밤나무의 밤이 익어가는 10월에 익어 땅바닥에 떨어집니다. 알밤을 빼닮은 칠엽수 종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알밤을 생각나게 하여 군침이 돌게 합니다.

하지만 밤과 달리 맛이 매우 쓰고 독성도 있어 바로 먹을 수는 없습니다. 한방에서는 종자를 사라자(娑羅子)라고 부르며 타박상, 염증 치료에 약으로 처방했다고 하는데 종자에 녹말이 많으므로 타닌을 제거한 후에 먹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중부 지방 이남에서 가로수나 정원수로 많이 심습니다.

국내에 마로니에라고 심어진 대부분 나무는 칠엽수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국내에 마로니에가 처음 심어진 때는 1913년입니다. 네덜란드 공사가 고종에게 선물한 묘목으로 덕수궁 석조전 뒤에 처음으로 심어졌습니다.

심은 지 100년이 넘어 이젠 거목이 되었는데도 덕수궁에 가서 보면 아직도 많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 이후 수목원, 식물원 등에 마로니에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마로니에가 국내에 도입되어 여러 곳에 심어져 요즘에는 예전에 불렀던 칠엽수를 일본침엽수, 마로니에를 서양칠엽수라 구분해서 부르기도 합니다.

불어로 마로니에(marronier)라 불리는 서양칠엽수( Horse-chestnut)는 일본칠엽수라고 불리는 칠엽수와 모양이 매우 비슷합니다, 쉽게 구분되는 부위가 있으니 바로 열매입니다. 서양칠엽수는 열매 겉에 가시가 있고 잎에 주름살이 많으며 꽃이 약간 큽니다.

마로니에는 스페인, 프랑스 등 남부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가로수로 많이 이용되며 봄이 되면 거리에 꽃가루를 가득히 날립니다. 예전에 프랑스에 유학 간 학생이 파리에 널리 심어진 마로니에 가로수의 열매를 밤으로 오인하여 주워와서 삶았는데 먹지 못하고 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마로니에와 칠엽수 열매는 둘을 같이 놓고 보면 열매 겉에 가시가 있고 없고가 확실하여 구분이 쉽지만 하나만 보면 서로 다른 점을 모르기에 같은 것으로 보기 십상입니다. 서울 대학로의 마로니에공원도 이러한 결과인데 대학로에 심어진 나무는 경성제국대학 시절 일본인 교수가 심은 칠엽수로서 마로니에공원에 심어진 나무 중 실제 마로니에로 확인된 것은 세 그루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사실이 아닌 가짜 뉴스가 진실을 뒤덮고 판을 치는 것이 요즈음의 추세인 듯합니다. 오래전부터 알려진 서울의 대학로 마로니에공원도 그중의 하나인 셈입니다.

촛불을 켠 듯 피어나는 칠엽수꽃을 보며 불현듯 몇 가지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학창 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박 건의 노래, 그리고 가짜가 진짜를 밀어낸 마로니에공원이 새삼스레 생각나는 5월의 어느 아침입니다.

(2023. 5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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