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병문천 복개하면서 물통 매립..용담1동 선반물(仙盤水)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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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병문천 복개하면서 물통 매립..용담1동 선반물(仙盤水) 표석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6.14 0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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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을 기준으로 해서 동쪽은 산짓물을 이용하고 서쪽은 선반물을 이용했다.

용담1동 선반물(仙盤水) 표석 

위치 ; 제주시 용담1동 2578번지(하천). 용담1동 394번지(동한두기길 9)의 동쪽
시대 : 일제강점기(1935년)
유형 ; 표석(기념비)

 

용담1동_선반물표석(동한두기가는길)
용담1동_선반수표석&한두기설촌유래

 

용담1동과 삼도2동의 경계가 되는 병문천의 하류 지역은 2001년 12월 복개되었다. 복개된 곳을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 위에 선반수(仙盤水)라는 표석이 있다. 원래는 선반물이라는 용천수가 있던 하천에 세웠던 것이다.(위 사진 참조)

仙盤水라는 큰 글자를 위에 세로로 새기고 중간 이하에 2줄로 主催 龍潭里 新校洞 / 修築 昭和十年仲秋라고 쓰고 義捐芳名無順이라 가로로 쓴 아래 용천수를 정비하면서 의연금을 출연한 사람의 이름과 금액을 적어 놓았다. 昭和十年仲秋라고 하였으므로 1935년 가을에 세운 것이다.

매끈하고 길쭉한 삼각형 모양의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글자를 새겼다. 뒷면은 깨어 내어 평면을 만들어 직육면체의 일부분처럼 다듬었다. 하천 바닥에 박혀 있던 자연석을 옮기는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모양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선반물이나 한두기물은 무근성 사람들이나 삼도리 사람들도 모두 이용하던 식수였고 수량이 풍부했다.

병문천을 복개하면서 이 물통이 매립되었다. 삼도리에도 ‘통물’이라고 있었지만, 내가 터지고 선반물을 길러 다니기 어려운 때나 통물을 이용하고 거의 대부분은 ‘산물(한라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말함)’이라고 불린 선반물들을 이용했다고 한다.

삼도2동 주민들은 관덕정을 기준으로 해서 동쪽은 산짓물을 이용하고 서쪽은 선반물을 이용했다.

선반물은 식수통이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야채를 씻는 공간을 그리고 다시 그 아래 쪽으로는 목욕과 빨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이 공간에서 빨래도 하고 목욕도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대부분 광목 옷이여서 빨래 후 삶기 위해 집에서 솥을 들고 가 물가 근처에 솥을 걸고 옷을 삶아 말리기도 해서 빨래를 하러 갈 때면 사람들이 북적거려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연합청년회관 정남향 웃녘에서 나오던 생이물이 있었고, 선반물 아래로는 병문천이 바다로 흘러드는 포구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곳을 ‘버렝이깍(버렁개, 부러릿개, 벌랑포, 벌랑개라 불리기도 함)’이라 불렸다고 한다. 생이물과 선반물이 흘러 모여서 큰 물통을 이루었다가 버렝이깍으로 흘러 들어가는 허덕물이 있었다고 하고 허덕물은 최근에 갈마수라고 한다.(하늘타리정원)

선반물 동북쪽으로는 ‘코큰물(콩큰물)’이라고 있었는데, 절동산에 있던 해륜사에서 이 물에 콩을 담가 불리면서 콩나물을 길러 먹었기 때문에 콩을 큰(담근)물이라 해서 콩큰물이라고도 하고, 혹은 물고가 크고, 물고이는 곳이 마치 사람의 코와 비슷하다고 하여 ‘코큰물’이라 했다고도 한다. 예전에는 이 곳 ‘콩큰물’ 부근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으며 은어, 숭어, 장어를 낚기도 했다고 한다.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작성 1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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