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학생운동 계열 항일운동가..세화리 김임형(金林瀅)지사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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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학생운동 계열 항일운동가..세화리 김임형(金林瀅)지사 묘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7.2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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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징역 2년 6월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

세화리 김임형(金林瀅)지사 묘

위치 ; 구좌읍 세화리 2492번지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묘
생몰년 ; 1915년 12월 30일생, 1949년 3월 3일 卒.

세화리_김임형지사묘

 

세화리_김임형지사묘비

 

김임형은 일제강점기 제주 세화리 출신의 학생운동 계열의 항일운동가이다. 본관은 김해. 아버지는 김홍지(金洪祉)이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1297번지[세화남길 8-7]에서 태어났다.

1932년 3월에 사립 하도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2년 4월에 협성실업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학년 때 사립 경신학교로 전학하여 1학년을 수료하였다. 이후 경성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 고등과에 입학하여 1학년 때 퇴학당하였다.

중국으로 건너가 1934년 4월에 만주 룽징시[龍井市] 사립 동흥중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1935년 3월에 4학년을 수료한 후 같은 해 4월에 경성공업학교(서울공업고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하여 1938년 3월에 졸업하였다.

동흥중학교 재학 때 교사의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민족주의 교육과 공산주의 사상에 공감하여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여 조국의 독립을 이룩하고 사회주의 제도를 실시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 후 1935년 4월 서울로 상경하여 사립경성공업학교(私立京城工業學校)에 입학한 그는 1936년 5월 초순경에는 서울에서 김종천(金鍾千)·박병윤(朴炳允) 등과 함께 일반상식 함양을 목적으로 조직한 독서회인 〈우리학교〉를 개편하고 경성공업학교 동창생들을 권유·참석시켜 사회주의 서적을 교재로 사회주의와 항일사상을 전파하였다. 이 일로 1938년 5월 7일 경기도 경찰부에 체포되었다.

1938년 12월 9일에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모진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인해 병을 얻어 석방되어 귀향하였으나 1949년 돌아가셨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1938. 12. 9. 경성지방법원 판결문,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2집 477면) 광복회제주특별자치도지부와 제주특별자치도보훈청은 2015년 5월 제주 지역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故 김임형 선생을 선정했다.(제민일보 150430)

김임형의 묘는 앞은 반원형이고 뒤는 삼각형인 용묘이며, 묘에는 산담이 둘러져 있고, 1998년에 북제주군수 명의로 건립한 〈愛國志士金公林瀅之墓〉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비석에는 팔작지붕 모양의 갓돌이 치장되어 있고 밑에는 방부가 받치고 있다. 앞 좌우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동자석이 세워져 있다.
《작성 17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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