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신선이 사는 집, 그 버금은 될 것"..신천리 팔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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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신선이 사는 집, 그 버금은 될 것"..신천리 팔운석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8.08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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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선·성산 지역의 서귀포소묵회 회원들이 돌에 각을 해서 이 바위의 이름표가 되었다고 한다

신천리 팔운석

위치 : 신천마을목장 바닷가에 광활하게 펼쳐진 잔디밭이 있는데 그 잔디밭의 동쪽에 바다에서 솟아오른 듯한 바위 팔운석(속칭 고망난 돌)이 있다.

시대 : 지질시대
유형 : 자연유산

 

신천리_팔운석

 

이 바위는 겉에 있는 용암이 식으면서 속에 있는 용암에서 뜨거운 기체가 겉의 용암을 밀어 올리면서 형성된 돔(dome)형의 튜물러스이다. 팔운석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구멍난 돌의 구멍에서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이 팔자 모양으로 구멍을 드나든다고 한데서 연유했다고 한다.(제주투데이 131005)

고문헌에는 관석(貫石) 또는 탄석이라고 기록되었고, 지방 사람들은 창곰돌 또는 고망난돌이라 한다. 이름 그대로 큰 바위에 구멍이 뚫려 있으며 안에 들어가면 몇 사람이 앉아 놀 만하다. 또 주위에 있는 바위들의 형상이 괴이하다. 용문연과 합하여 용문동천(龍門洞天)이라 한다.(2005년 정의군지)

성산포문학회에서 펴낸 성산풍아(成山風雅)에 팔운석에 대한 다음의 해설이 있다. 〈이 바위 구멍에서는 여덟 가지 빛의 구름이 내뿜어진다는 말이 전해진다. 신선은 아홉 가지 빛의 구름으로 집을 지어 사는데, 이곳에도 신선이 집을 지으려고 했지만, 한 가지 빛의 구름을 더 얻지 못하여 포기했다는 데서 팔운석이란 이름이 생겼다.〉

이에 소농 오문복 선생은 “신선이 사는 집은 못돼도 그 버금은 될 것이란 뜻”이라고 덧붙였다.

2005년 발간된 旌義郡誌에는 ‘팔운석과 천지연을 김상헌 선생이 상찬한 바 있어 지금은 본도의 명소가 되었다’라고 하였지만 필자는 남사록에서 팔운석에 대한 기록을 찾지 못하였다. 가까이서 보면 이 바위는 한 개의 바위에 구멍이 난 게 아니라 두 개의 바위가 서로 기대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84년 가을 서귀포소묵회에서 임서대회를 겸한 야유회를 가졌는데, 소암 현중화 선생은 이곳의 아름다움을 빗대 팔운석을 언급한 청음 김상헌의 남사록 기록을 따서 八雲石이란 글씨를 몇 점 썼는데, 1985년 표선·성산 지역의 서귀포소묵회 회원들이 돌에 각을 해서 이 바위의 이름표가 되었다고 한다. 팔운석이란 다음의 시는 사실과는 조금 다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八 雲 石
글/이승익

소암(素菴)은 탁배기 한 잔 들이켜
허연 수염 쓸며 바다를 바라 본다.
취기 오른 소암
곁에 앉은 제자 소농(小農)에게
지필묵 대령하란다.

바람 맞아 볼그래한 얼굴빛이
마장밭 잔디처럼 해맑은 소암,

기분 좋은 듯 허허 웃는다.

바다엔 갈메기 날아 다닌다.
잔디밭엔 한 무리 학이 춤을 춘다.
바닷 바람도 소암곁에 살포시 앉았다.

호방한 웃음 지으며 붓을 잡는다.
바람과 학은 숨소리 멈췄다.

" 八 雲 石 "

후일 제자 소농이 돌에 각을 했다지.
그 돌, 마장 어귀에 심어 소암을 기린다지.

《작성 170302, 보완 1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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