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영곡 고득종과 명도암 김진용의 공적과 덕행(德行) 추모..이도1동 향현사(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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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영곡 고득종과 명도암 김진용의 공적과 덕행(德行) 추모..이도1동 향현사(복원)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8.11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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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곡 고득종 追享하기 위해 헌종9년(1843)에 李源祚 목사가 귤림서원 옆에 세웠다.

이도1동 향현사(복원)

역 ; 제주시 이도1동 1421번지
시대 : 조선 후기(1843)
유형 : 사당

이도1동_향현사(복원)

 

지방의 이름난 학자, 충신 등의 공적과 덕행(德行)을 추모하기 위하여 집을 세우고 제사지내는 사당(祠堂)으로 향현사가 있었다.

김진용은 후학 양성에 매진하다 현종4년(1663)에 생을 마감했는데, 그로부터 약 170년이 지난 순조31년(1831)에 유림의 건의로 이예연 목사가 김진용의 업적을 기려 그의 위폐를 영혜사(永惠祠, 일명 象賢祠)에 모셨다.

향현사는 조선 세종 때에 한성판윤을 지낸 영곡 고득종을 追享하기 위해 헌종9년(1843)에 李源祚 목사가 귤림서원 옆에 세웠다.

헌종15년(1849)에는 김진용을 영혜사에서 옮겨 향현사에 함께 추향하였다.

고종8년(1871) 대원군이 서원·사우(書院祠宇) 대동철폐령에 의하여 三姓祠, 귤림서원, 영혜사, 松竹祠 등과 함께 철폐되었다. 철사된 후 제주 유생들이 두 분 선생의 덕행과 공적이 후세에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향현사 유허비를 세우고 임시로 제향하였었다.

귤림서원의 부속 건물로 제주의 이름난 선비의 신주를 모셨던 향현사(鄕賢祠) 터에는 개인 주택들이 밀집하여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복원 후보지에도 60년대 후반에 철근콘크리트로 세워진 2층 8각정자가 그대로 버티고 있었으며, 인접지에는 지난 75년 지은 연면적 145㎡의 경로당이 오현단의 경관을 망치고 있었다.

이 같은 오현단의 훼손실태에 대해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2005년 6월 2일 "제주시가 노인회관을 건립할 부지가 그렇게 없어 오현단에 세워야 했는가"고 개탄하며 "잘못된 것임을 아는 만큼 시급히 철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연합뉴스 050603) 2007년 제주시가 장수당(藏修堂)과 향현사를 복원하였다. 팔작지붕 단층 구조이다.
《작성 17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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