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한국전쟁 발발하자 젊은이들 거의 입대..신풍리 충혼비(忠魂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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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한국전쟁 발발하자 젊은이들 거의 입대..신풍리 충혼비(忠魂碑)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8.16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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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세워져..‘출정한 장병은 공을 세워 돌아오게 하소서’라는 한 구절 첨가

신풍리 충혼비(忠魂碑)

위치 : 신풍리 723번지 신풍리사무소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충혼비

신풍리_충혼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젊은이들이 거의 입대하였는데 1년이 지나자 몇몇 집에는 전사통지서가 날아들었다. 무자년(1948)부터 죽어가는 게 젊은이였으니 마을에 젊은이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포제 축문에도 ‘출정한 장병은 공을 세워 돌아오게 하소서’라는 한 구절이 첨가되었고, 부인회에서는 쌀을 거두어 마을 어른들 호통 때문에 중단되었던 마을굿(도청제)을 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마을 유지들 17인이 절간고구마 한 가마니씩을 염출하여 충혼비를 세웠다. 1965년에는 엄숙한 유교의식으로 위령제를 올려 최고의 예우를 하였다.

충혼비에는 강진구, 강홍삼, 고갑문, 고상순, 고성순, 김두수, 김두진, 김재현, 김춘보, 김홍문, 오경도, 오만택, 오세화, 오원서, 오재문, 오태국 등 16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2006년 냇가의 풍년마을)
《작성 17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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