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흔한 무릇, 소중히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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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흔한 무릇, 소중히 다시 보다.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23.08.18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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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의 만물은 다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한 무릇, 소중히 다시 보다.

 

무릇 백합과 Barnardia japonica (Thunb.) Schult.f.

 

귀한 꽃 한 송이 만나보겠다고 찾아 나선 꽃길이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희귀종일수록 서로 인연이 있어야 만날 수 있지 움직이지 않는 식물이라고 해서 그냥 아무 때나 가도 만나는 것이 아님을 또 한 번 실감 나게 체험했습니다.

게다가 더욱 소중한 깨우침은 꽃이 꼭 곱고 희귀해서만이 아니라 흔한 꽃일지라도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평상시에 느끼지 못한 소중함이나 아름다움이 훨씬 돋보일 수 있고 가까이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흔히 겪는 세상사이기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귀하지도 않은, 주변에 흔하게 널린 무릇이라는 풀을 산중에서 만나보고 그런 감정을 실감했다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무릇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연인즉. 어느 날 오랜 꽃 친구 셋이 시내에서 만났는데 그중 한 명이 국내에서는 딱 한군데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양반풀’이라는 풀을 찾아가자고 제안했습니다. 한 삼 년 전쯤에 가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같이 가볼 의향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만 어려운 것은 교통이 좋지 않고 한여름 더위라서 찾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였습니다. 셋은 오랫동안 연변, 백두산 등 국내·외 어느 곳을 마다하지 않고 함께 야생화를 찾아다니던 꽃 친구입니다.

아무튼 그 제안을 듣고 망설임 없이 동의하여 셋이 서로 일정을 맞춰 정한 날짜인데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이 그토록 무더울 줄은 몰랐습니다. 무거운 카메라가 든 배낭을 메고 세 명이 8월 상순의 한더위 땡볕, 기온이 섭씨 35도나 되는 날에 산을 오르자니 온몸이 땀에 젖었습니다.

무더위에 산길을 어렵사리 올라 어렴풋이 기억하는, 그 친구가 전에 보았다는 그 장소 주변을 아무리 찾아봐도 그 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 기억이 잘못된 건지? 그 식물이 없어진 건지? 운때가 맞지 않은 건지?

아무튼 땡볕 더위에 부근 산기슭을 오르고 내리고 기진맥진할 때까지 찾아봤으나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원래 ‘양반풀’은 황해도 이북 지방에서 자라는 북방계 식물이라서 기후 온난화 현상 때문에 이곳에서 없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서로가 만날 운때가 아닌가 보다 위안 삼고 하는 수 없이 하산해야만 했습니다. 꽃 탐방을 하다 보면 흔히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그 꽃 곁을 여러 차례 지나면서도 웬일인지 보지 못하다가 어쩌다 한 포기를 찾고 나면 주변 곳곳에 널려있음을 보게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평생 산삼을 찾아 헤매는 심마니도 운때가 맞지 않으면 산삼을 옆에 두고도 못 본다는 말이 헛말이 아님을 실제 느끼는 경우입니다.

귀한 꽃 한번 만나겠다고 극기 훈련처럼 용을 쓰고 불더위 속에 찾아가서 허탕 치고 되돌아오자니 허탈했습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나름 야생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만큼 아마추어 치곤 베테랑이라 자칭하는 셋은 더위에 처진 풀처럼 푹 꺾인 모습이었습니다.

보고자 한 꽃을 못 찾고서 고작 한다는 소리가 ‘서로 운때가 안 맞았나 보다.’고 달래며 하산하자니 한심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언제 봐도 싱싱해 보였던 자연 속 풀꽃들도 한낮 불더위에는 감당이 안 되는지 축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안타까울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가물지도 않았는데 뿌리 깊은 나무가 아닌 풀들은 한여름 땡볕 아래 잎이 늘어지고 생기를 잃어 제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꽃이 귀한 계절인 8월의 한더위 속이라서 주변에 꽃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홀로 꿋꿋이 꽃대를 추켜세우고 싱싱함을 뽐내는 한 송이 꽃이 있었습니다. 무릇꽃을 만난 것입니다. 바로 위의 사진입니다. 조그마한 꽃이지만 무릇꽃 너머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니 더욱 곱고 멋져 보였습니다.

 

주변 풀밭에서 조금만 관심 두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무릇

 

무릇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볕이 좋은 산기슭이나 들에서 무리 지어 자랍니다. 밭과 들에 저절로 자라는,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에게는 잡초와 같은 귀찮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한국 원산이며 일본과 중국에도 자랍니다. 물구, 물굿, 물구지라고도 부르며 파, 마늘과 비슷한데 봄에 알뿌리 같은 땅속 비늘줄기에서 마늘잎 모양의 잎이 두세 개가 납니다.

칠팔월 한더위가 되어 봄철 꽃들이 모두 시들고 난 한여름에 줄기 끝에 자잘한 분홍색 꽃이 핍니다. 잎 사이에서 30cm 정도의 꽃줄기가 나와 총상(總狀) 꽃차례로 아래에서 위로 피어 꽃송이를 이루며 한여름 벌, 나비에게 유용한 꿀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어린잎과 비늘줄기는 먹을 수 있는 구황식물로 아시아 동북부의 온대에서 아열대까지 널리 분포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 빈 밭에서 무릇을 캐다가 삶고 우려내 굶주린 배를 채웠던 동네의 한 친구 집의 모습이 어렴풋이 다시 생각납니다. 옛날에는 흉년이 들면 구황식물로 무릇을 많이 이용했다고 합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무릇은 구황식물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은 소중한 자원이었던 것입니다.

무릇은 구황식물 외에도 한약재로 요긴하게 쓰인다고 합니다. 인터넷 사전에 의하면 생약으로는 지란(地蘭), 면조아(綿棗兒), 천산(天蒜), 지조(地棗), 전도초근(剪刀草根)이라고도 부르며 흔히 알뿌리를 약재로 쓰는데, 진통 효과가 있고, 혈액 순환을 왕성하게 하며 부기를 가라앉히는 데에 효과가 있는 등 한약재로 유용하게 쓰인다고 합니다.

요긴하고 귀한 구황식물이고 한약재이기도 하며 주변에 친근하게 함께해 온 식물인데 이 식물에 대한 오해도 실제 많아 보입니다. 불교에서는 무릇을 오신채의 하나로 간주하여 금기 식물로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도교와 불교에서 금하는 오신채는 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를 말하는데 한국에서는 무릇을 흥거로 간주한 탓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향이 강해 금기시하는 흥거는 미나리과 아이속(Ferula)의 식물입니다.

백합과에 속하는 무릇과는 전혀 다른 식물로서 이란 남부에서 자라는 식물입니다. 한국에서는 흥거가 자라지 않아 애초에 가까이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릇이 흥거라는 억울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꽃 탐방에서 원하는 앙반풀은 만나지 못했지만 소중한 것을 체험했습니다. 우리가 흔하고 볼품없다고 하는 것은 단지 그 진가를 모르기 때문인가 싶습니다. 어느 때인가, 어디엔가 귀하고 소중하게 쓰일 때가 있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연 속의 만물은 다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찰에서 멀리하는 오신채의 하나라는 누명을 쓰고 있지만 흔하면서도 유용한 우리 식물자원, 무릇을 다시금 소중하게 인식할 수 있어 보람 있는 꽃 탐방의 하루였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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