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토지지관 모신 본향당..신흥리 대방황수당(남할으방당)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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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토지지관 모신 본향당..신흥리 대방황수당(남할으방당) 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9.09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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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이나 해신 계통의 신을 모시는 당이었을지도 모른다.

신흥리 대방황수당(남할으방당) 터

위치 ; 조천읍 신흥리 506-1번지
시대 ; 조선
유형 ; 민속신앙(신당)

신흥리_대방황수당
신흥리_대방황수당 제단

 

조천읍 신흥리는 예전에는 옛개라고 불렸었다. 제주도의 고지도를 보면 옛개는 倭浦로 표기되어 있다.

성산읍 온평리에서 채록된 민요에도 "서귓개에 예배나 들라…"라는 귀절이 있고 '왜놈'을 '예놈'으로 발음하는 등 '倭'를 제주도에서는 '예'로 발음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왜포'라는 이름은 왜구들이 신흥 포구 '큰물'의 물을 싣기 위해서인지, 노략질을 하려해서인지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에 붙게 된 것 같다.(제주신문 1993년 3월 21일)

동산밭에 있어서 동산밭대방황수당이라고도 불렀다. 토지지관을 모신 당 즉 본향당이라고 하나, 신명이 대방황수이고 볼레낭당에 다니는 잠수들이 모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용왕이나 해신 계통의 신을 모시는 당이었을지도 모른다.

제일은 축일이며 택일해서 다녔다. 폭낭(팽나무)을 신목으로 삼았으며 지전 물색을 걸어 두었다. 제물로는 메 2그릇을 올렸다. 매인심방은 정인화-정주병-삼승할망으로 이어졌었다. 제단이 일부 남아 있다.

이 당은 큰거리제(거리도청제=당기를 모시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도액막이를 하고, 집집마다 방문해 액막이를 하는 굿의 한 과정)를 10일씩이나 올리던 큰 당이었다.

거리도청제는 마을을 편안히 해 줍서 하는 뜻으로 심방을 모셔다 팽나무 있는 세거리 길에서 굿을 했다. 천막을 쳐서 굿을 하는데 닭의 코를 꿰어 끌고 다니면서 거리를 돈다.

동카름 끝에서 서카름 끝까지 마을을 빙 돌았다. 굿은 3일도 하고 5일도 했다. 거릿제의 경비는 가호마다 다니며 걸궁을 하고 문굿을 하면 돈이나 쌀을 내놓아 충당했었다.

1930년대에 일제의 강압에 의해 폐당되었으며 4·3 사건 당시에 볼레낭할망당으로 합쳐서 모셨다.(북제주군의 문화유적Ⅱ)

당맨심방이 신촌에 살았는데 이 분이 죽고, 4.3사건 당시 거릿제를 지내지 못하게 하자 마을에서도 '법에서 사망(邪亡)스러운 일은 하지 말라고 하니 할망당에 함께 모시자'고 하여 거릿제를 중단하고 할망당에 함께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신흥리지에 따르면 일제강점기(1940년대)에 할망당으로 옮겼다고 한다.
《작성 17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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