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2010년 11월의 호국인물'..하귀2리 한규택하사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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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2010년 11월의 호국인물'..하귀2리 한규택하사 흉상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9.13 0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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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탄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적 기관총 2정 파괴하고 다른 기관총 격파

하귀2리 한규택하사 흉상

위치 : 애월읍 하귀2리 1908-2번지(애월읍 하귀로44) 하귀초등학교 교정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위인선현유적(흉상)

하귀2리_하귀초한규택상병흉상

 

1930년 4월 13일 제주 상귀리에서 한자순의 3남으로 태어난 한규택 하사는 1945년에 하귀초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해병대 3기로 지원입대해 3대대 11중대 화기소대 기관총 사수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1950년 11월 20일 평안남도 양덕군 동양리지구에서 적 패잔병 소탕작전을 벌이던 해병대 3대대 11중대는 대대급 규모의 적 패잔병이 원산~평양 요충지인 동양리 일대의 보급로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해오자 부상자가 속출하는 등 위기상황에 처했다.

이때 한규택 상병(당시 계급 삼등병조)을 포함한 화기소대원들의 지원사격과 엄호를 받으며 부대원들은 철수를 시도했으나 소나기처럼 퍼붓는 적 기관총 사격으로 여의치 않았다.

이에 한 하사는 적탄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적 기관총 2정을 파괴하고 다른 기관총을 격파하려던 순간 적탄에 관통상을 입고 장렬히 산화했다. 한 하사의 투철한 희생정신으로 11중대는 위기에서 벗어나 무사히 철수했다.

〈이 전투는 대대적인 전투로 이어졌습니다. 한규택 삼등병조를 포함한 소대원들이 지원사격과 엄호를 한 끝에 철수를 시도하기로 했으나 소나기처럼 퍼붓는 기관총 앞에서는 누구도 무사히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선두에 있던 한규택 삼등병조는 적의 총탄에 왼쪽 어깨를 관통 당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는 아직 오른팔이 있다.”고 말하며, 물러서지 않고 적의 기관총을 차례대로 명중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치명상에 피를 흘리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끝까지 해내고자 결심했던 것입니다. 비록 그는 기관총 격파 중 적의 탄환을 맞아 2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지만 그의 희생 끝에 11중대는 위기에서 벗어나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출처: http://mpva.tistory.com/4199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 훈터]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기리어 하사로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김유신, 을지문덕 등과 함께 '호국인물 100인'에 선정되었으며, 6·25 호국인물 100인에도 선정되었고, 지난 2001년 하귀초등학교 교정에 이어 2010년 해병대 교육훈련단에 고인의 흉상이 건립됐다.

전쟁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기관총 사수로 큰 공적을 세우고 산화한 한규택(韓圭澤) 해병대 삼등병조(하사)를 '2010년 11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하귀초등학교는 현충일을 전후하여 전교어린이회 주관으로 꽃다발 헌화와 묵념, 시 낭송 등으로 모교 출신의 전쟁영웅을 추모하는 조촐한 기념행사를 가진다.

한규택 하사는 결혼하자마자 출정했기 때문에 자손은 없다. 그의 동생인 한중택씨는 형의 모교인 하귀초등학교에 2001년부터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작성 1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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