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도내 최초 정식 초등학교 교사..함덕리 함덕초 강세독 교장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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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도내 최초 정식 초등학교 교사..함덕리 함덕초 강세독 교장 기념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9.26 0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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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내와 전라남도의 초등학교에서 페스탈로지로 불리도록 성실하게 교직에 임하였다

함덕리 함덕초 강세독 교장 기념비

위치 : 함덕리 287-2번지(조천읍 일주동로1231). 북쪽 정문 동쪽 울타리 옆 왼쪽 첫째
시대 : 대한민국(1957)
유형 : 碣(기념비)

강세독_교장
함덕초_강세독교장기념비

 

함덕초등학교 제6대 교장인 강세독 선생을 기리는 비석이다. 비문은 다음과 같다.


<전면> 前校長姜世篤紀念碑(전 교장 강세독 기념비)
<우측면> 檀紀四二九0年 秋 咸德里有志一同(단기4290년(1957) 가을 함덕리 유지 일동)
<좌측면> 내용 없음


<후면> 惟我先生之爲人剛直且勉投身敎育四十有年 本校在職九年有月 師道確立 躬行示範 故校風日新 師親融和 學徒進就 我校斯界冠冕其中是豈非先生精華耶 惜哉 以停年而致仕歸鄕 吾等不勝欽慕 以一片石永世不忘焉

(우리 선생님을 생각하니 위인이 강직하고 또 근면하셨다. 교육에 투신하셔서 40년이 넘으셨으며, 본교에 재직하신 9년 몇 개월 동안 사도를 확립하고 몸소 시범을 보이시며, 오래된 교풍을 일신하셨으니 선생님들은 융화하시고 학생들은 진취적이었다.

우리 학교는 이 분야에서 장엄하고 당당하였으니 그 중 이것이 어찌 선생님의 뛰어난 업적이 아니겠는가! 아깝도다, 정년을 맞이하여 그만두고 고향으로 가셨으니 우리는 흠모하는 정을 이길 수 없어 한 조각 돌로써 영원히 잊지 않으려 한다.)


강세독(1890∼1969)은 애월읍 광령리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제주시 일도리로 이주하였다. 할아버지는 문장이 좋아서 소년좌수라 불렸던 강철현이며, 노형동 월랑마을에서 한문선생을 하다가 1901년 순교한 강두훈(姜斗勳)의 아들이다.

강세독과 누이동생 강평국(姜平國. 독립운동가)은 천주교에서 양육하였다. 1911년 제주공립보통학교 4년을 제1회로 졸업하고 관비 유학생으로 1916년 경성고보(京城高普)와 동교 부설 사범과를 졸업, 동년 대정공보교(현 대정초등학교), 또 제주공보교(현 제주북초등학교) 교사로, 1923년 표선면 성읍리에 개설된 정의공립보통학교 교장 사무취급이 되었다.

후일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대학(東洋大學)을 졸업하고서도 또 도내외의 초등교육에 몸바쳐 정년 퇴임한 분이다.(http://jeju.go.kr/culture/history/person. 제주역사/역사인물) 도내 최초의 정식 초등학교 교사이다. 아들 강춘길은 해방 직후 도미하여 미국 국적을 취득하였다고 한다.(제주인물대사전)

※ 姜世篤은 1917∼1921년 대정공립보통학교, 1922∼1923년 제주공립보통학교(현 제주북초) 교사를 거쳐, 성읍리 정의공립보통학교 교장(1923.06.25.~1924.06.30.), 사립중앙보통학교(현 구좌중앙초) 교장(1928.01.01.~1929.03.31.), 1931∼1936년 전남 월등보통학교, 1937∼1940년 전남 해제보통학교(1938년 해제심상소학교), 1941년 전남 황산공립국민학교에 근무하였다.(한국사데이터베이스)

1942년 이후 행적은 미상이나, 그 후 다시 제주도에 들어와 제주북공립국민학교 교장(1947.10.10.~1949.08.31.)을 거쳐 함덕초등학교 교장(1949.09.15.∼1957.05.06.)으로 정년퇴임하였다.(조선총독부 직원록, 성읍초·구좌중앙초·제주북초·함덕초 연혁지)

※ 강세독 교장 재임중에 1950년 선흘과 북촌에 분교장이 설치되었다가 1953년에는 학교로 독립하였고, 1956년에는 본관 동쪽 석조기와 4개 교실 및 승강구가 증축되었다.

※ 강세독은 1950년대 필자가 다녔던 함덕초등학교 교장이었다. 매일 아침 학교 입구에서 학생들의 잘못을 일일이 지적하시면서도 관대하게 처분하던 엄하면서도 인자하였던 분. 몸맵시만큼이나 성품도 깐깐하였다. 연단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교훈을 주시는 데 정성을 다했다.

소박하신 성품은 관사에 딸린 채소밭을 손수 일구었으며, 넓은 학교 구석구석을 부지런히 돌아다니시며 오물을 손수 주우시는 모범을 보였다.

해방된 나라의 새싹인 어린이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가르치기에 온 정열을 바치셨던 선생님. 누이 강평국에게 공부를 할 것을 요청한 장본인이다. 강세독은 제주도내와 전라남도의 초등학교에서 페스탈로지로 불리워지도록 성실하게 교직에 임하였다.(제주신보 2012년 11월 12일 함덕초등학교 출신 김관후 글)

※ 비석은 그가 퇴임한 후 석달쯤 지난 1957년 가을에 세워졌다. 이 당시 가을이라고 하면 음력 7∼9월에 해당한다. 조면암으로 된 비석 크기는 가로 29㎝, 세로 70㎝, 폭 14㎝이고, 상부는 반원형에 가까우며 40㎝×26㎝의 현무암 방부(方趺) 위에 세워져 있다.
《작성 1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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