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물 한 잔에 담은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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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물 한 잔에 담은 친절
  • 강미
  • 승인 2023.11.09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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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 서귀포시 정방동주민센터
강미 서귀포시 정방동주민센터
강미 서귀포시 정방동주민센터

유난히도 습하고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나는 기분에 애써 모니터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때 나보다도 더 큰 짜증을 안고 온 민원인은 다짜고짜 화를 내며 자신의 한풀이를 시작했다. 어느새 더위는 느낄 수 없었고 민원인의 울분에 내 감정은 무너져만 갔다. 그래도 나는 민원인의 말을 애써 들어주며 시원한 물 한잔을 내밀었다. 물 한잔을 들이킨 민원인은 어느새 말을 잃고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봤다. “고맙소.”

친절. 공무원이 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민원인에게 친절해라. 그러나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어느새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 너덜너덜해진 내 모습을 보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좋은 표정이 지어질 수 없었고, 좋은 말이 나갈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내민 시원한 물 한잔에 민원인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나도 멍하니 민원인의 얼굴을 바라보다 자연스레 미소를 짓게 되었다.

민원인의 짜증은 물 한잔과 함께 어느새 사라져 버렸고, 차근차근 말을 이어간 그의 요구는 다행히 해결되었다.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나는 뿌듯함을 느꼈다. 단지 물 한잔인데. 그동안 내가 생각한 친절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민원인은 나의 물 한잔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친절은 무더운 여름 내민 물 한잔과 같은 것일까. 억지로 지어지는 미소가 아닌 진심으로 내민 물 한잔이 아닐까. 나는 가만히 친절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친절하라고 했지만, 친절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곱씹어본 친절이라는 것은 나의 진심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러하기에 민원인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이 나온 것은 아닐까.

오늘도 나는 동주민센터를 찾은 민원인들에게 시원한 물 한잔을 내밀어 본다. 나의 진심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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