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리는 초보 노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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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우리는 초보 노인입니다.
  • 이준혁
  • 승인 2023.11.20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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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서귀포시 표선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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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노인입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60대에 접어든 부부의 실버타운 입주기인데 부부는 아직 노인이 될 마음의 준비가 안된 말 그대로 ‘초보노인’이다.

타운에는 다양한 어르신이 산다. 건강한 사람부터 간병이 필요한 사람, 치매환자까지. 하지만 서로를 불평하지 않고 서로의 삶을 매섭게 노려보지 않는다. 오히려 도시의 우리가 배워야만 할 감정이 이곳에서는 너무나도 흔하게 나타난다.

실버세계의 부적응자였던 작가는 어느 순간 어르신들로부터 평온을 느낀다. 적응으로부터 오는 익숙함이 아닌 그들의 세계를 직접 마주함으로써 느낀 감정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노인의 삶이라는 것은 커다란 그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들이 사는 일상과 여가가 다양한 페이지로 나누어진 굵은 두께의 소설책이라면, 실버의 세계에서 노인들의 삶은 아주 커다란 종이에서 조금씩 서로의 삶에 기대면서 또 조금씩 주변과 녹아들면서 그린 그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분명 느리고 조용하지만 쓸쓸하지만은 않았고, 화려하지 않아도 단단하게 쌓아 올린 벽과 같이 편안한 인생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써 내려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실버타운처럼 노인에게 알맞게 조정되어 있지 않고, 실버가 될 준비가 안된 ‘초보노인’이 즐비해 있다. 노실버존이 등장할 만큼 노인혐오는 사회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삶이 복잡하고 힘들때 노인들과 같이 조급함보다 한발 물러 웃으며 생각해봐야겠다. 남들의 행복이 부러울 때 진심을 다해 그들의 기쁨을 공유해야겠다. 나는 이 감정을 ‘실버감수성’이라고 이름지었다.

우리는 모두 젊음의 아름다움 위에 드리울 실버로의 그늘을 알고 살아가고 있지만 예전처럼 나도 막연히 두렵지는 않다. 실버의 그늘은 나를 덮는 것이 아니라 한여름 걷다 잠시 만나는 그늘처럼 반갑고 또 시원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의 노년생활은 아직 아득해 보이지만, 언젠간 다가올 것을 알기에 오늘도 세상의 모든 초보노인들에게 미리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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