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오현(五賢), 제주에 남긴 자취(影)와 울림(響)(15).. 오백장군 골짜기[五百將軍洞]와 우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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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오현(五賢), 제주에 남긴 자취(影)와 울림(響)(15).. 오백장군 골짜기[五百將軍洞]와 우도가
  • 현행복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승인 2023.11.2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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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엮음 ‧ 마명(馬鳴) 현행복/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남사록(南槎錄)》

제주 역사에서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 등 오현이 남긴 업적과 흔적은 많지만 이를 집대성해 발표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최근 제주시 소통협력센터는 현천(賢泉) 소학당(小學堂) 인문학 강의를 통해 이들 오현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학자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마명(馬鳴) 현행복 선생이 이를 집대성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지는 현행복 선생으로부터 이번에 발표한 내용을 긴급입수, 이를 연재하기로 했다. 오현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기 바란다.

한편 오현은 1520년(중종 15년) 충암 김정 (유배), 1534년(중종 29년) 규암 송인수 (제주목사), 1601년(선조 34년) 청음 김상헌 (제주 안무사), 1614년(광해군 6년) 동계 정온 (유배), 1689년(숙종 15년) 우암 송시열 (유배) 등이다.(편집자주)

 

(이어서 계속)

 

<참고자료> 《남사록》에 실린 임제(林悌)의 ‘오백장군동(五百將軍洞)’

【원문(原文)】

<그림 > 《남사록(南槎錄)》에 소개된 임제(林悌)의 ‘오백장군 골짜기(五百將軍洞)’

 

【판독(判讀)】

五百將軍洞 林子順

昔漢有天下田橫入海島相隨五百人勁氣磨蒼旻漢欲王侯橫橫死洛陽道客在海島中聞之當若爲雄心共激烈一死酬相知精靈恥漢土被髮翩然東仙洲化爲石屹立滄溟中萬古一片心碧海孤輪月客到起假想英風吹鬢髮一語慰幽寃韓彭亦鈇鉞

 

【해석(解釋)】

 

○ 오백장군 골짜기[五百將軍洞] - 임자순(林子順)

 

昔漢有天下 옛날, 한(漢)나라가 천하를 차지하자

田橫入海島 전횡(田橫)은 바다섬으로 들어가고 말았네.

 

相隨五百人 함께 전횡을 따라간 오백의 빈객(賓客)들

勁氣磨蒼旻 굳센 기개(氣槪) 창공을 휩쓸었다오.

 

漢欲王侯橫 한나라 조정에서 전횡을 왕후로 삼고자 불렀는데

橫死洛陽道 전횡은 낙양(洛陽) 가던 도중에 자결하였네.

 

客在海島中 오백의 빈객들 섬에 남아 있다가,

聞之當若爲 이 소식을 들었으니 어찌해야 하겠는가.

 

雄心共激烈 영웅의 마음 동시에 격렬히 타오른 터라

一死酬相知 한번 죽음으로 지기(知己)를 보답했다네.

 

精靈恥漢土 그 정령 한토(漢土)에 남아있기 부끄러워

被髮翩然東 머리카락 흩날려 동쪽으로 날아왔네.

 

仙洲化爲石 선향(仙鄕) 고을로 오자마자 돌로 변하여서

屹立滄溟中 깊은 바다 한가운데 우뚝하게 서 있다오.

 

萬古一片心 만고에 변함없는 한 조각의 붉은 마음,

碧海孤輪月 푸른 바다 위로 외로이 달빛에 구른다오.

 

客到起假想 길손 되어 여러 생각 일으킬 적에

英風吹鬢髮 영웅의 소슬바람 귀밑털을 휘날리누나.

 

一語慰幽寃 한 마디 말로 억울한 원혼 위로하나니,

韓彭亦鈇鉞 한신(韓信) · 팽월(彭越) 그들도 참살 당했소이다.

 

 

3) 청음 선생이 《남사록》에서 소개한 충암(冲庵)의 <우도가(牛島歌)>

 

 

청음 선생이 《남사록(南槎錄)》에서 소개하는 충암(冲庵)의 <우도가(牛島歌)>란 시는, 《충암선생문집(冲庵先生文集)》에 소개된 시와 비교해보면 시 한 구절이 빠져있다.

곧 《충암선생문집》에는 이 시의 23구인 ‘幽沈水府囚百靈(유침수부수백령)’과 24구인 ‘太陰之窟玄機停(태음지굴현기정)’ 사이에 ‘邪鱗頑甲毒風腥(사린완갑독풍성)’이란 1구의 문구가 더 들어간 셈이 된다.

○ 충암(冲庵) 김정(金淨)의 <우도가(牛島歌) (전문)

곧 이 시의 형태가 《충암선생문집》엔 ‘7언 33구(총 231자)’의 시로 소개하고 있음에 비해, 《남사록》에선 ‘7언 32구(총 224자)’의 시로 소개하고 있다.

더욱이 이 시의 제목을 제시함도 《충암선생문집》에선 <聞方生牛島歌以寄興(문방생우도가이기흥)>, 곧 ‘방생(方生)이란 자가 전하는 우도(牛島) 이야기를 듣고서 노래로 흥을 부침’이란 뜻의 말로 제시했는데, 《남사록》에선 단지 <우도가>라고만 소개하고 있다.

한편 이 시를 통관하는 운율이란 거의 ‘평성 청(靑)운’이다. 이 시문에서 평성(平聲) ‘靑(청)’운의 운자로 쓰인 글자들만 차례로 모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곧, 2수; 溟(명) ‧ 4수; 霆(정) ‧ 6수; 庭(정) ‧ 8수; 扃(경) ‧ 10수; 熒(형) ‧ 12수; 星(성) ‧ 14수; 櫺(령) ‧ 16수; 冥(명) ‧ 18수; 翎(령) ‧ 20수; 靑(청) ‧ 21수; 婷(정) ‧ 22수; 竮(병) ‧ 23수; 靈(령) ‧ 24수; 腥(성) ‧ 25수; 停(정) ‧ 27수; 經(경) ‧ 28수; 形(형) ‧ 29수; 聽(청) ‧ 31수; 醒(성) ‧ 33수; 泠(령) 등이 그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이 시의 20수까지는 평성 ‘청(靑)’운의 운자가 규칙적으로 철저히 잘 안배되어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21수 이후로는 이 운율의 적용이 불규칙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생기는 의구심이란 이 시문 전체에서 21수 이후로는 운율의 안배를 고려할 때 시문의 완성도가 좀 떨어지지 않은가 하는 짧은 생각이 듦이다.

<그림 ()> ‘우도동굴음악회’의 팸플릿에 소개된 <우도가>의 번역문

 

결국 청음 선생이 이 시의 1구를 일부러 빼서 총 7언 32구의 시 형태로 소개했는가의 여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시 운율의 적용을 염두에 두어 그렇게 조정한 것인지에 대해선 이 분야 전문가의 심층적 연구가 더 필요로 해 보인다.

 

4.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선생 관련 유적지

청음 선생의 유적지로는 묘소와 석실서원 터가 자리한 경기도 남양주시와 더불어 낙향하여 은거했던 경북 안동시 풍산읍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생가터인 종로구 장의동 일대(현 청와대 옆)는 궁정동 안가(安家) 터로 쓰였다가 현재는 무궁화동산으로 조성돼 그의 시비(詩碑)와 더불어 집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그림 ()> 김상헌(金尙憲) 시비(詩碑)와 집터 표지석(청와대 옆 궁정동 안가터)

 

(1) 생가터 – 서울시 궁정동 안가 터(무궁화 동산)

안동김씨 문중에서 16세기 후반 한양에 세거하면서 독자적인 가문을 형성한 이들을 일컬어 신(新) 안동김씨(安東金氏)라고 한다. 이는 달리 장동김씨(壯洞金氏)라고도 불리는데, 이들이 세거한 곳이 장의동(壯義洞)이었기에 붙여진 명칭이다.

특히 이 집안에선 인조(仁祖) 때 활약했던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 청음(淸陰) 김상헌 (金尙憲) 이후 종묘 배향공신만 6명이나 배출했으며, 왕비(王妃) 3명, 정승(政丞) 15명, 판서(判書) 35명, 대제학(大提學) 6명, 청백리(淸白吏) 3명, 문과급제자(文科及第者) 120명 등 화려한 인물 활약상을 내보일 정도로 조선 말기까지 그 명성을 날린다.

특히 김조순(金祖淳)은 순조(純祖)의 장인이며, 약 60여 년간 왕권 이상의 외척(外戚) 세도정치(勢道政治)로 나라를 뒤흔들었던 벌열(閥閱) 가문이기도 하다.

이들 장동김씨 집안에선 특히 인왕산과 백악산이 만나는 계곡에 청풍계(淸風溪)라는 원림(園林)을 조성해 경영하기도 했다.

본래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국(殉國)한 우의정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이 별장으로 꾸미면서 맑은 바람이 부는 계곡이란 의미로 청풍계(淸風溪)란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한편 그곳의 푸른 석벽이 저절로 대를 이루어 석벽 위에 주자(朱子)의 ‘百世淸風(백세청풍)’의 네 글자가 새겨져 있으므로 청풍대(淸風臺)라 불린다고도 전한다.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로 유명한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은 인왕산 골짜기의 자신이 거처하는 집을 인곡유거(仁谷幽居)라 불렀다.

그러면서 바로 인근 청풍계 쪽에 위치한 장동김씨 집안 댁과 활발한 교류를 나누며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청음 김상헌 선생의 증손 되는 농암(農巖) 김창협,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의 문하에 드나들며 성리학과 시문서화(詩文書畫) 수련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현행복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연재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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