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논문) 중문 대포리 ’존자 물‘은 왜? ..상원(上院)이 영실존자암, 하원(下院)이 하원리 법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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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논문) 중문 대포리 ’존자 물‘은 왜? ..상원(上院)이 영실존자암, 하원(下院)이 하원리 법화사
  • 이 문호(전북대 초빙교수)
  • 승인 2023.12.06 11: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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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호(전북대 초빙교수)

제주도가 탄생한 역사적 비밀을 풀고자 제주도를 집중연구하고 있는 이문호 전북대 초빙교수가 최근  '중문 대포리 ’존자 물‘은 왜? ..상원(上院)이 영실존자암, 하원(下院)이 하원리 법화사)'라는 제목의 제주관련 논문을 본지에 기고해 왔다. 이문호 교수는 이 논문에서 '대포동의 설촌은 지금으로부터 450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고 ​​전하고 있다.  본지는 이문호 교수가 발표한 이 논문을 전문 게재하기로 했다. 제주도 연구에 도움이 되기 바란다.(편집자주)

 

 

왜 존자물인가?

대포동 그늘집터(사진제공=고영철 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1. 대포리 ’존자 물‘과 개우당(큰개(浦) 위 동굴)

기원전1-4세기에 인도 발타라 존자와 제자 아라한 일행 900여명 중 일부가 뗏목배를 타고 성산포 섭지코지를 거쳐,중문 대포리 포구에 도착, 대포리에서 1km 지점에 있는 현재 이름 개우당(큰개(浦) 위에 동굴)에 도착하고 식수로 ’존자물‘을 먹으면서 하원라 법화사에 주춧돌을 놓는다.

지금도 대포리에 가면 발타라 ’존자 물‘이 있다. 이어 발타라 존자는 12km 떨어진 ’중질(僧路)을 타고 걸어 영실 볼레오름인 불래악 존자암으로 거처를 옮겨 포교와 불교 화엄에 매진한다.

그 흔적이 대포리, 하원리, 회수리에 남아 있다.

 

2.불래포구(佛來浦口), 스님들 목욕터인 ‘정술내(川’僧筒‘,보살 길)

섭섬
섭섬

 

인도 발타라 존자 일행의 뗏목배는 기원전1-4세기경에 탐라의 동쪽 끝에 뾰죽히 나온 성산포 섭지코지에 도착했다.

제주에서는 섭지코지 지명을 ‘지혜가 많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오봉 전 6선 국회의원 원내총무가 시흥리 출신이다. 섭지 어원은 지혜의 신 마하가섭(摩訶迦葉) 존자의 섭(葉), 지혜의 지(智), 코지는 곳(Place)이란 의미의 합성어로 보이며 발타라 존자 일행이 처음으로 당도한 곳이란 뜻이다.

같은 시기에 서귀포 보목리는 볼래낭개로 불교가 들어 왔다는 불래포구(佛來浦口), 지명은 보목포구(甫木浦口)이고 한라산 영실에도 불래악(佛來岳 1280m)이 있다.

보목리 앞바다 ‘지혜의섬 섭섬(葉島)’의 ‘섭’자와 성산포 섭지코지에 “섭”자가 같은 글자다.

보목리 동쪽 오름이 절오름(제지기오름 寺岳洞窟 85m), 원래 보목리 오름은 벌목伐木)리, 스님들 목욕터인 ‘정술내(川’僧筒‘)’가 오늘도 흐르고 있고, 마을 사람들은 마을 동서를 가로 지르는 ‘보살길’옛길을 지금도 잘 다니고 있다.

지혜의 섬 ‘섭섬(1442.612m)’ 안에 문필봉(文筆奉150m) 3개 산 봉우리가 있어 그 기를 받아선지, 보목리에는 서울대 하운진, 연대 이필욱 교수등 300여명의 인재를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3.승물(僧水)-중물-中文,화순리는 번뇌(煩惱)

 

존자암
존자암

 

인근 서귀포 중문리(中文里)의 원래 이름은 승물(僧水 스님이 샘터를 알려줬다고 해서 이름이 승수) 이 중물(僧水)로, 다시 중문(中文)으로 바뀌었다.

또한 사계리 산방굴사(山房窟寺) 마당 용머리 바다에 가파도와 마라도가 있는데, 가파도는 부처의 ‘가피(加被)’ 입고, 마라도의 마라(魔羅)는 ’번뇌(煩惱)‘를 ‘깨라(悟)‘ 는불법어를 오늘날에도 사용하고 있다.

사계(沙溪, 모래개울리,성산 동쪽과 남쪽사이로 부는 바람인 샛바람은 제주 동쪽 끝 성산일출봉에서 하루를 시작하여 제주 서쪽 끝 산방산에 바다로 지는 해를 뒤로 살풀이(Fohn: 습윤한 바람이 산방산을 넘으면 고온건조해 지는 현상)춤을 추고서 떠난다.

사계바당 해안 모래가 살풀이 바람에 의해 모래톱이 밭고량같은 ‘모래개울’이 생긴다 하여 ‘검은질黑砂路’) 이웃마을인 화순리도 속칭’번뇌‘다.

산방산(山房山) 신령이 산방덕(山房德), 옆마을이 덕수(德修)와 안덕(安德),덕(德)자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

 

3.대포(큰개大浦) 주상절리

대포동 주상절리(사진제공=고영철 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대포동의 설촌은 지금으로부터 450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당시 원주 원씨 15세 孫(손)이 이 마을로 와 포구 근처인 ’절터왓‘과 ’동골왓(東谷員)‘일원을 근거로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법화사 주춧돌이 대포 포구에서 발견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듯 지금도 동골왓 일대에는 대나무와 양하들이 돌담 굽에 자생하고 있고 정주목과 주춧돌의 파편들도 보인다.

그 후 이 마을에는 임(林)씨, 이(李)씨, 임(任)씨, 김(金)씨들이 이주해 오게 되며 이씨는 당초 지금의 포구 동쪽 1km쯤 떨어져 있는 속칭 ’소동이터‘에 자리 잡았던 것으로 전해 온다.

마을의 현 위치로의 이주는 임(林)씨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이(李)씨, 임(任)씨, 김(金)씨들이 옮겨올 무렵 큰개(大浦)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전한다. 이곳에 이주해 왔던 이씨 중에는 나중에 회수리로 옮겨가 그 마을을 설촌한 사람도 있다.

대포란 마을 이름은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로 사용돼 온 듯 1807년(가경 12년)에 작성된 이 마을의 호적도 ’대포리 호적 중초(大浦理 戶籍 中草)‘라고 되어 있다. 마을 이름이 큰개인 것은 부락 동쪽 해안가의 포구가 과거에 이 고장의 큰 포구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4.영실 불래악 사찰이 상원(上院), 법정악(法井岳) 사찰이 중원(中院), 법화사 일대 하원(下院)

 

법정사터(사진제공=고영철 문화유산답사회장)

 

하원마을은 마을의 설촌은 법화사(法華寺)의 건립과 비슷한 시기, 이 사지의 발굴로 그 설립 연대는 대충 원(元)의 제주 통치 시기인 1273년(원종 14년) 이후 100년 간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절이 지어지던 무렵 마을 상류인 영실(靈室)의 불래악(佛來岳)(볼래오름)에도 절이 있었고 법정(法井)에도 사찰이 있었다.

구전에 의하면 기원전1-4세기에 한라산 영실불래악 사찰을 중심으로 그 일대를 상원(上院)이라 했으며 법정악(法井岳) 사찰을 중심으로 그 일대를 중원(中院), 그리고 법화사 일대를 하원(下院)이라 했는데 지금의 마을 이름 하원(河源)도 그 하원(下院)에서 유래했고 약천사가 있다.

 

5.회수(回水)도래물 마을은?

법화사
법화사

 

회수동의 옛 이름은 ’도래물‘이다. 이 지명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물에 대한 갈망을 읽을 수 있다. 지금도 회수리 서쪽 ’섯못 동네‘에서는 오래 묵은 기와 파편들이 나오는데 1732년 중문리로부터 20여 호가 이 마을로 올 당시는 고승과 선비들이 모여듦으로 그 분위기를 좇아 왔다는 것이다.

이 마을은 하원동의 법화사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어 그 분위기가 전래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당초 이름은 상문(上文)마을이었다가 도문(道文)마을 - 현재의 회수마을로 바뀌었다 한다.

처음 입주한 성씨는 이(李)씨인데 조선조 정조 시대에 대포마을에 살다가 잃어버린 소를 이 마을에서 찾았으므로 이주해 왔다고도 하며 이후 그의 인품을 추앙하던 사람들 50여 세대가 따라 올라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도 전한다.

1948년 4.3으로 다시 대포리로 이주했던 이 마을 사람들은 4.3이 진압될 무렵 계엄사령부의 집단체제 부락형성계획에 따라 대포리 27세대와 이 부락 101호 등 128동이 옮겨와 살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제시대 이후 이 부락은 지역적으로 소외 되는 듯 했으나 1975년 제2횡단도로가 개통되면서 그 길이 마을 복판을 관통케 되어 교통이 원활해지고 개발의 속도가 빨라졌다.

 

 

이문호 전북대 초빙교수

이문호 전북대 초빙교수

 

제주도 서광서리 출신, 1990년 일본 동경대 정보통신 공박, 1984년 전남대 전기과 공박,1985년 미국 미네소타대 전기과 포스트닥, 1981년 통신기술사, 한림원 정회원, 2008년 이달의 과학자상,제주,전북문화상 및 2015년 국가연구 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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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2023-12-06 20:09:57
@ 제주의 여러 지명에 대한 유래와 의미를 폭깊이 알게되어 새로운 감정이 일어난다. 시조격인 인도 발타라 존자 아라한 900명 일행이 도착해 거쳐간 곳이 지금의 지명과 일치한다. 외부세력인 원나라 징기스칸이 제주까지 손을 뻗치기에 값진 섬같다. 서귀포시 각 마을 지명과 포구 이름의 의미를 되새겨보면 지나온 제주생활에 색다른 애착을 같게 한다. 화순 번뢰, 가파도 가피, 마라도 번뇌 깨우침, 섭섬, 포목, 사계, 산방산,하원 약천사, 존자암, 영실 불래악 등 지명 마다 참뜻을 품고있다. 이제는 제주도 사람의 조상격인 아라한 900나한의 고향인 인도로 여행을 하며 조상찾기를 해봄직하다. 결국 BRICS의 국가중 하나인 인도와 뿌리 찾기여행도 하며, 국가간 소통도 활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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