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12월의 산매화, 산납매(山臘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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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12월의 산매화, 산납매(山臘梅)..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23.12.22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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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무성한 푸른 잎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는 은둔의 꽃..지조 있는 열혈 청년 선비와 같은 꽃

 

12월의 산매화, 산납매(山臘梅)

 

산납매, 받침꽃과, 학명 Chimonanthus nitens Oliv.

 

 벌써 계묘년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벽에 걸린 마지막 달력 한 장이 을씨년스럽고 외로워 보이더니 이제 그나마도 사라져야 하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가는 세월의 아쉬움과 다가오는 새해의 기대감이 중첩되는 시점입니다.

O.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한 잎 한 잎 떨어져 가는 담쟁이 잎처럼, 마지막 달력 한 장의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이토록 한 해가 저물어 가고 겨울이 깊어 가는 시기에도 꽃쟁이의 아쉬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12월에 만난 꽃이 있어 이를 소개해 올립니다.

12월이면 한 해의 마지막 달로서 북반구에서는 싸늘한 겨울이 깊어 가는 계절입니다. 고운 꽃과 푸른 잎으로 세상천지를 아름답고 푸르게 꾸몄던 풀과 나무 대부분이 겨울을 맞아 잎이 떨어집니다.

한여름 생의 에너지를 공급해 왔던 무성한 잎이지만 차가운 겨울을 맞아 탄소동화작용 기능을 상실하고 오히려 에너지를 소모하니 식물체에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상록수를 제외한 풀과 나무가 겨울철에 잎을 떨구는 것은 혹독한 한겨울을 버텨내고 생을 이어가기 위한 나름의 생존술입니다. 그러다 보니 겨울이 되면 야외에서 꽃을 만날 수가 없어 꽃쟁이들의 어쩔 수 없는 농한기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겨울이라 해서 모든 식물이 다 성장 활동을 멈추는 것은 아닙니다. 따뜻하고 햇볕 좋은 봄, 여름을 넘기고 햇볕 약한 늦가을이나 겨울이 되어야만 꽃을 피우는 식물도 있습니다. 각기 나름의 진화된 생존술에 의해 적정 시기를 맞춰 꽃을 피우는 자연의 질서이기도 합니다.

산국, 감국, 쑥부쟁이 등 들국화나 코스모스, 꽃무릇 등은 가을꽃입니다. 봄, 여름에 비하면 햇볕 받는 시간도 짧고 햇빛도 약한데 이러한 자연조건에 맞춰 자라도록 진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나마 가을꽃은 그런대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에서 겨울꽃은 매우 드뭅니다. 국내에서의 겨울꽃으로는 목본류가 몇 종 있는데 그나마도 중부 이북이 아닌 남부지방에 주로 있습니다. 차나무, 동백나무, 팔손이나무, 비파 등이 겨울에 꽃이 핍니다.

겨울에는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만나면 그저 반갑고 대견하기만 합니다. 이들 겨울꽃 하나를 서울의 홍릉수목원에서 만났습니다. 바로 산납매입니다.

납매라는 이름의 첫 글자 납(臘)이 생소하여 그 뜻이 언뜻 와 닿지 않는 이름입니다. 납(臘)은 음력 섣달을 뜻하는 한자로서 실생활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어쩌다 연말쯤이면 신문 등 언론매체에서나 볼 수 있는 납월(臘月), 납일(臘日)에서 보게 되는 한자입니다.

12월에 산에 피는 매화, 산납매

 

산납매(山臘梅)는 중국 원산의 상록활엽관목입니다. 원산지에서는 평지가 아닌 산에서 주로 자라기에 산+납매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나 봅니다. 굳이 한자 뜻풀이를 하면 ‘산에서 자라는 섣달 매화’인데 사실 매화나무와는 전혀 다른 종입니다.

또한 산납매의 납(臘)도 음력을 기본으로 사용하던 옛날 시대에 섣달을 뜻하는 한자이므로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뜻합니다. 그러나 양력을 사용하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한 해를 마감하는 각종 모임을 한자는 다르지만 ‘납회’라고 하다보니 섣달의 의미가 양력 12월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언론 매체에서도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달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다 보니 납월이 음력 섣달이 아닌, 양력 12월의 뜻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산납매는 음력 섣달인, 즉 1월 말이나 2월쯤에 피는 ‘산에서 자라는 매화’라는 뜻의 이름인데 실제 꽃이 피는 시기는 11월 ~2월입니다.

산납매 꽃은 잎겨드랑이에 1~2개가 마주나기로 달립니다. 나무의 높이는 1~6m에 이르며 잎자루는 짧고 잎몸은 난상(卵狀) 피침형입니다. 꽃의 지름은 7~10mm인데 꽃 모양이 이름과 달리 독특합니다. 꽃 이름에 매화를 뜻하는 매(梅)가 있어 매화꽃을 연상하기 쉬운데 전혀 다릅니다.

꽃잎이 3가지 모양이며 이들이 결합하여 꽃을 이룹니다. 맨 바깥쪽의 꽃 모양은 난형, 중간은 난상피침형, 안쪽은 긴 난형의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중국 식물도감에는 꽃잎이 20~24개라고 하는데 꽃잎의 크기도 작고 모양 별로 분별이 쉽지 않아 꽃잎 개수 헤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꽃잎 하나하나가 미백색의 반투명 막질이라서 꽃 모양이 밀랍처럼 보여 밀랍을 뜻하는 랍(蠟)자를 써서 납매(蠟梅)로도 쓴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명(正名)은 랍(蠟)이 아닌 납(臘)으로 표기합니다. 열매 또한 매화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꽃이 진 후 꽃받침이 생장해서 긴 달걀 모양의 위과(僞果) 열매가 되고 그 속에 콩알만 한 종자가 5∼20개 들어 있습니다. 뿌리는 약으로 사용하며, 말린 어린잎은 강서성(江西省)과 절강성(浙江省)에서 흔히 차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름이 다소 생소한 산납매보다는 우리에게 보다 친숙하게 알려진 납매(臘梅)가 있습니다. 납매는 이른 봄, 매화꽃이 피기 전에 꽃이 피며 꽃도 매화를 많이 닮았습니다. 매화처럼 겨울에는 잎이 지고 봄이 되면 잎보다 먼저 꽃이 핍니다.

꽃의 색깔이 황색으로 광택이 있고 향기도 매화처럼 좋습니다. 그러나 납매는 이름이 산납매와 비슷하지만, 산납매와는 과(科)도 다르고, 꽃 모양도 다르고, 상록이 아니라서 겨울에는 잎이 지는 낙엽소교목입니다.

꽃도, 이름도 매우 생소한 산납매를 한 해가 저물어 가는 12월에 만나 이모저모 살펴보았습니다. 음력을 사용하던 옛 시대의 이름 산납매, 음력 섣달에 핀다는 꽃이 오히려 양력 12월에 피는 꽃이라 해도 좋을 만큼 개화 시기가 양력의 마지막 달 전후인 꽃입니다.

한겨울임에도 잎이 파랗게 남아,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의 자태는 지나는 겨울 길손의 시선을 강하게 끌지만, 꽃은 무성한 푸른 잎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는 은둔의 꽃입니다.

한겨울에 독야청청하는 굳센 기상, 꽃이 귀한 혹한에 꽃을 피우는 희귀한 모습, 나아가 아름다운 향기마저 곱게 풍기니 우리 옛 선비님들이 즐겨 칭송했던 매화보다도 더 멋져 보입니다.

혹독한 추위에 굴하지 않는 팔팔한 청춘의 열기와 강하고 귀하고 향기마저 고운, 지조 있는 열혈 청년 선비와 같은 꽃이 아닌가 여겨지는 산납매꽃입니다.

(2023. 12월 계묘년을 보내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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