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월정리 출신 항일운동가..행원리 신창진 지사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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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월정리 출신 항일운동가..행원리 신창진 지사 묘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4.01.19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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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8월 15일 독립유공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행원리 신창진 지사 묘

위치 : 행원리 3074번지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묘

 

행원리_신창진지사묘

 

월정리 출신 항일운동가 신창진(愼昌珍. 1914∼1940) 지사는 본관은 거창이며 父 신원식과 母 고운기의 5남3녀 중 5남이다.

신 지사는 1928년 4월 제주농업학교에 입학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로서 1929년 11월 3일에는 광주에서 일제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이 거세게 폭발하여 1930년에는 전국적으로 학생운동이 파급되던 시기였다.

제주농업학교에서는 평소 학교 의식 때에 일본 천황의 칙어를 읽어도 전혀 묵도하지 않아 교사들로부터 주목받던 학생들 중 졸업 직전에 사상불순을 이유로 퇴학처분을 받은 3학년생 김원요(金源堯)가 졸업식 날(1931년 3월 7일) 교무실로 들어가 일본인 담임교사(山川助夫=야마가와)에게 격렬히 항의하였다.

담임은 경찰에 알렸고 경찰이 출동하여 졸업식장에서 체포 수감해 버렸고, 동창인 졸업예정자 신창진(愼昌珍)·양두옥(梁斗玉)에게는 같은 이유로 유급조치를 내렸다.

신창진과 양두옥은 이틀 후인 3월 9일 교장실로 찾아가 교장 스기사키(杉崎勝藏)에게 유급조치의 부당함을 항변하였고, 신창진이 교무실에서 일본인 교사 모리다(森田親厚)에게 일격을 가했다.

이 때 홍계표가 큰소리로 외치자 이를 신호로 고태리(귀덕), 양두옥(신창), 고운석(조수), 현도선(하도), 김두진(두모), 신찬익(대림) 등은 공공기물을 던져 부쉈고, 양치삼(대림)은 교장관사로 들어가 닥치는 대로 물건을 부쉈다.

이는 일본인에 대한 적개심과 학교 당국의 황민화교육에 대한 반항심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신창진은 당일 체포되어 8월 29일 광주지법 목포지청에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받았다.

항소하니 1932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였다. 그 동안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1940년 1월 21일 타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93년 8월 15일 독립유공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제주인물대사전, 제주新보 060607, 구좌읍지)
《작성 18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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