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소악부(小樂府)' 중 이수(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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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소악부(小樂府)' 중 이수(二首)
  • 현행복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승인 2024.03.0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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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어 옮김[編譯] ‧ 마명(馬鳴) 현행복(玄行福)

한학자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마명(馬鳴) 현행복 선생이 최근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 등 오현이 남긴 업적과 흔적에 대해 이를 집대성해 발표한 이후 다시 '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를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계속한다. 한시로 읽는 제주 역사는 고려-조선시대 한시 중 그동안 발표되지 않은 제주관련 한시들을 모아 해석한 내용이다. 특히 각주내용을 따로 수록, 한시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편집자주)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

 

<일러두기>

-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역사(濟州歷史)”는 고려조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글에서부터 조선조 제주목사 이형상에 이르기까지 총 일곱 분의 한시를 대상으로 했다. 모든 글에 대한 소개의 편제는 【원문(原文)】 ‧ 【판독(判讀)】 ‧ 【각주(脚註)】 ‧ 【해석(解釋)】‧ 【해설(解說)】의 순으로 엮었다.

- 【원문(原文)】은 텍스트의 이미지이다. 각 개인 문집이나 관찬 사료의 원문 영인본을 그 대상으로 삼아 글의 맨 앞에 제시했다.

- 【판독(判讀)】은 역자가 일차 텍스트의 이미지인 원문을 읽어나간 작업 결과이다. 원문에 실린 한자어의 옮김에 있어 가능하면 원문에 소개된 글자 형태 그대로 살려 소개하려 했다. 이를테면, 약자(略字)나 속자(俗字)로 된 한자어의 경우 그 표기를 그대로 옮기고 그 본자(本字)를 따로 각주에서 밝혔다. 아울러 원문의 문장에서 의미상 띄어쓰기를 병행했다.

- 【각주(脚註)】는 본문의 내용 이해에 있어 도움을 줄 요량으로, 어려운 낱말의 뜻풀이나, 혹은 그 전거(典據)를 밝히는 일에 주안점을 두었다. 낱말의 뜻풀이 작업은 주로 《교학대한한사전(敎學大漢韓辭典)》(2003)을 활용했고, 더불어 ‘인터넷 한국고전종합DB’를 참조했다.

- 【해석(解釋)】은 직역을 원칙으로 하되, 부득이한 경우 의역을 통해 그 이해도를 높이려 했다. 해석하는 과정에서 원문에 없는 부분은 ( )의 내용으로 구별해 덧붙였다.

- 【해설(解說)】은 주로 제주의 역사적 관련성과 더불어 필자의 개인적 감상 소감을 한데 엮어 구성했다.

 

 

<차례>

1.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소악부(小樂府)> 중 이수(二首)(1362)

2.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응제시(應製詩) <탐라(耽羅)>(1397)

3. 영곡(靈谷) 고득종(高得宗)의 '홍화각(弘化閣)'(1437)

4.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탁라가(乇羅歌)>(1465)

5. 금남(錦南) 최부(崔溥)의 <탐라시 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1487)

6. 충암(冲庵) 김정(金淨)의 유배시 2수(1520)

가. <우도가(牛島歌)>

나. <임절사(臨絶辭)>

7. 백호(白湖) 임제(林悌)의 <오백장군(五百將軍)>(1577)

8.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의 <황복원대가(荒服願戴歌)>(1701)

 

 

1.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소악부(小樂府)> 중 이수(二首)(1362)

 

【원문(原文)】

 《익재집(益齋集)》(4권)

 

【판독(判讀)】

都近川頹制水坊 水精寺裏亦滄浪 上房此夜藏仙子 社主還爲黃帽郞

近者 有達官戱老妓鳳池蓮者曰 爾曹惟富沙門是從 士大夫召之何來之 遲也 答曰 今之士大夫 取富商之女 爲二家 否則妾其婢子 我輩苟擇緇 素 何以度朝夕 座者有愧色 鮮于樞西湖曲云 西湖畫舫誰家女 貪得 纏頭强歌舞 又曰 安得壯士擲千金 坐令桑濮歌行露 宋亡 士族有以 此 自養者 故傷之也 耽羅此曲 極爲鄙陋 然可以觀民風知時變也

從敎壠麥倒離披 亦任丘麻生兩歧 滿載靑瓷兼白米 北風船子望來時

耽羅地狹民貧 往時全羅之賈販甆器稻米者 時至 而稀矣 今則官私牛馬 蔽野 而靡所耕墾 往來冠蓋如梭 而困於將迎 其民之不幸也 所以 屢生變也

 

 

【해석(解釋)】

(1)

都近川頹制水坊(도근천퇴제수방) / 도근내의 둑 터져 물이 넘치고

水精寺裏亦滄浪(수정사리역창랑) / 수정사 마당까지 흙탕물이 출렁이네.

上房此夜藏仙子(상방차야장선자) / 승방엔 오늘 밤 미인을 숨겨놓았으니

社主還爲黃帽郞(사주환위황모랑) / 절 주인 도리어 뱃사공이 되고 말았네.

※ 운자 : 평성(平聲) ‘陽(양)’운 - 坊, 浪, 郞

 

근래에 어떤 고관(高官)이, 늙은 기생 봉지련(鳳池蓮)을 희롱하여 말하길, “너희들은 돈 많은 중[僧]들만 따르고 사대부(士大夫)들이 부르면 오지 않으니 어째서이냐?” 하니, 그 기생이 대답하되, “요즘 사대부들은 돈 많은 상인의 딸을 맞아 둘째부인으로 삼거나 그렇지 않으면 여종[婢子]을 첩으로 삼아 즐기고 있는데, 우리가 중과 속인을 가린다면 어떻게 끼니를 떼우며 살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라 하였다. 이 대답에 좌중(座中)의 고관은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선우추(鮮于樞)의 <서호곡(西湖曲>에, “서호의 놀음배[畫舫]에 뉘 집의 계집인가, 전두(纏頭)를 탐내어 억지로 가무(歌舞)를 하네.[西湖畫舫誰家女 / 貪得纏頭强歌舞]”라 하였고, 또 “어떻게 해야 천금(千金)을 버리는 장사(壯士)를 만나, 음탕한 풍속을 바꿔 바른 노래 할 수 있으려나.[安得壯士擲千金 / 坐令桑濮歌行露]”라 하였다. 송(宋)나라가 망한 뒤, 사족(士族)들이 이러한 식으로 생활하면서 마음을 썩이곤 했다. 탐라(耽羅)의 이런 노래들이 아주 비루하긴 하지만 당대 백성의 풍속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세태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서호화방(西湖畫舫) - 작자미상

 

(2)

從敎壠麥倒離披(종교농맥도리피) / 밭 두둑의 보릿대들 마구 쓰러지건 말건

亦任丘麻生兩歧(역임구마생양기) / 삼대들이 두 갈래로 갈라져도 아랑곳 않네.

滿載靑甆兼白米(만재청자겸백미) / 오로지 청자와 흰쌀을, 한 배 가득 싣고서

北風船子望來時(북풍선자망래시) / 하늬바람 불 때 올 뱃사공만 기다린다네.

※ 운자 : 평성(平聲) ‘支(지)’운 - 披, 歧, 時

 

탐라(耽羅)는 지역이 좁고 백성들이 가난하여 과거에는 전라도 장사치들이 자기(甆器)와 도미(稻米)를 팔러 때때로 찾아왔었으나 그리 흔하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관가(官家)와 사가(私家)의 소와 말이 황폐한 들에 가득하여 개간(開墾)해 경작할 땅이 없다. 더욱이 관원들이 왕래가 북[梭]같이 빈번하니 그 전송과 영접에 그 백성들이 시달려 불행이었다. 그래서 여러 번 소동[變]이 생기곤 했다.

【해설(解說)】

14세기 제주의 민간에서 불리던 노래를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이 채록하여 한시 형태를 빌어 <소악부(小樂府)>란 시 모음집에 실어 소개하고 있다. 문헌 기록상 제주의 노래가 소개된 건 이 두 작품이 처음이기에 매우 소중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두 작품에 등장하는 공통적 소재가 뱃사공이다. <수정사(水精寺)>란 시에서 ‘절의 주지가 뱃사공이 되었네’란 구절을 통해 풍자적인 표현 수법을 읽을 수 있고, 아울러 당시 제주의 사찰에서 수행하는 승려들이란 대부분 대처승(帶妻僧)이었음을 가늠케 해준다.

한편 또 다른 탐라시에 등장하는 뱃사공은, 육지에서 질그릇류의 옹기와 제주에선 수확되지 않은 백미(白米)를 싣고 오는 돈 많고 잘생긴 남자이다. 당시의 제주 섬에서 육지로의 교통은 오로지 바람의 힘을 이용하는 돛배가 주종이기에 서북풍인 하뉘바람을 이용해 제주로 내려오는 뱃길의 풍경을 잘 담아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초상화
– 일본 천리대학교 소장본

 

 

 

【각주(脚註) 모음】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은 고려 충렬왕 13년(1287)에 태어나 15세 되던 해에 등과(登科)에 입신하여, 모두 6대의 왕을 섬기면서 네 번 재상(宰相)에 오른 큰 정치인이며, 이 나라에 성리학(性理學)을 처음 전교한 대학자요, 그리고 시(詩) ․ 문(文)이 고루 갖춘 대 문호(文豪)로서 81세를 일기로 졸하여 공민왕(恭愍王)의 묘정에 배향된 고려 말기의 위인이다. 그가 남긴 저서로 《익재난고(益齋亂藁)》 ․ 《역옹패설(櫟翁稗說)》 등이 유명하다.

都近川(도근천) : ‘都近川(도근천)’이란 ‘도시 부근 하천’이란 뜻이 아니고, 그냥 ‘도근내’란 제주의 고유 지명이다. 본래 이 내는 내도(內都)마을 쪽으로 흘러들다가 바닷가 가까운 곳에서 외도(外都)마을 쪽으로 흐르는 광령천(光令川, 혹은 무수천)과 합류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제주목(濟州牧)> ‘산천(山川)’조에 보면, “도근천(都近川)은 주(州) 서쪽 18리(里)에 있다. 일명 수정천(水精川) 또는 조공천(朝貢川)이라 하는데 지방 사람들의 말이 간삽(艱澁)하여 도근(都近)은 곧 조공(朝貢)이란 말의 그릇된 것이다. 언덕은 높고 험하여 폭포가 수십 척을 날라 흘러 그 밑에서 땅속으로 스며들어 칠팔 리에 이르러 놀 사이로 솟아나와 드디어 대천(大川)의 하류를 이루었는데 도근포(都近浦)라 일컫는다. 이 아래에 깊은 못이 있는데 모양이 수달[獺] 같은 동물이 잠복하고 있어 변화를 일으켜 사람의 보물을 보면 끌어당기어 못 속으로 들어간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水精寺(수정사) : 도근천(都近川) 서쪽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이 절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26년(1300)에 원(元)나라 황후가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중종(中宗) 15년(1520)에 제주에 유배를 왔던 충암(冲庵) 김정(金淨)은 <도근천수정사중수권문(都近川水精寺重修勸門)>이란 글을 남겼는데, 당시 제주사회에 창궐했던 무속행위를 시정하기 위한 조처의 일환으로 씌어졌다고 전한다.

藏仙子(장선자) :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감춰두다.

黃帽郞(황모랑) : 달리 ‘황두랑(黃頭郞)’이라고도 한다. 본래 ‘누런 모자[黃帽]를 쓴 사내’란 뜻인데, 예로부터 임금이 탄 배의 뱃사공은 대개 이런 모자를 썼기에 후에는 바로 뱃사공을 상징하는 말로 쓰였다. 이의 출전이 《사기(史記)》<영행열전(佞幸列傳) ․ 등통전(鄧通傳)>에 보인다. 곧, “효문제(孝文帝) 때의 궁중 총신으로서 사인(士人) 등통(鄧通)이 있었는데 … 등통은 별다른 재능도 없이 사랑을 받았다. 그는 촉군(蜀郡)의 남안(南安, 현재의 泗川省) 출신이다. 배를 잘 저었기 때문에 황두랑(黃頭郞, 곧 누런 모자를 쓰고서 御座船을 젓는 선장)이 되었다.[孝文時中寵臣士人則鄧通…鄧通蜀郡南安人也以濯舩爲黃頭郞]”라고 함에서 보인다.

沙門(사문) : 불가(佛家)의 용어로 ‘중[僧]’을 달리 일컫는 말.

緇素(치소) : ‘緇素(치소)’란 본래 검정색과 흰색을 뜻하는 말인데, 승려와 속인(俗人)을 뜻한다.

鮮于樞(선우추) : 선우추(鮮于樞, 1257~1302)는 원(元)나라 때의 학자이자 서예가로 자는 백기(伯機)이고 호는 곤학산민(困學山民)으로서 어양(漁陽) 출신이다. 당대(當代)의 조맹부(趙孟頫)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유명했는데, 서호(西湖) 근방에 곤학재(困學齋)를 지어 생활하다가 46세의 나이로 졸했다. 한편 한말의 문신 이유원(李裕元)은 자신의 저서 《임하필기(林下筆記)》(38권)<해동악부(海東樂府)>에서 선우추의 <서호곡(西湖曲)>이란 시에 빗대어서 같은 제목의 시를 남겼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송나라 말기의 백성들은 가난에 쪼들려, 화방(畫舫)에서 가벼운 차림으로 매춘(買春)을 하네. 어떤 장사가 선뜻 천금을 버리겠는가, 일조에 탐라의 먼지 씻기 어려워라.[景炎之族傷於貧 / 畫舫輕裝自買春 / 壯士千金誰肯擲 / 一朝難滌耽羅塵]”라고 했다.

纏頭(전두) : 가무 공연을 끝낸 연예인에게 관객이 비단을 주던 일. 인신하여, 기생에게 주는 선물.

桑濮歌行露(상복가행로) : “상복(桑濮)에서 ‘행로(行露)’를 노래하다.” 여기서 ‘상복(桑濮)’이란 상간복상(桑間濮上)의 준말로서, 음란한 음악 혹은 망국(亡國)의 음악을 뜻하는 말이다. 아울러 ‘행로(行露)’란 《시경(詩經)》<소남(召南)>편의 ‘행로장(行露章)’을 지칭함인데, 여자가 정조를 지키는 것을 상징한 말이다.

從敎壠麥(종교농맥) : “보리밭 두둑[壟麥]이 … 하건 말건”이란 뜻이다. ‘壠(농)’은 ‘壟 (농)’과 같은 글자로 밭두둑을 뜻하는 말이다.

冠蓋(관개) : 본래 ‘높은 벼슬아치의 관복과 수레’를 뜻하는 말인데, ‘높은 벼슬’을 상징하는 말이다.

梭(사) : 베틀 부속품의 하나인 북. 북이 왔다 갔다 함처럼 그 왕래가 빈번하거나 빠름의 비유.

 

저자소개

 

마명(馬鳴) 현행복(玄行福)

)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태생

- 어린 시절부터 한학(漢學)과 서예(書藝) 독학(獨學)

외조부에게서 천자문(千字文)》 ‧ 《명심보감(明心寶鑑)등 기초 한문 학습

 

주요 논문 및 저서

(1) 논문 : <공자(孔子)의 음악사상>, <일본에 건너간 탐라의 음악 - 도라악(度羅樂) 연구>, <한국오페라 춘향전(春香傳)’에 관한 연구>, <동굴의 자연음향과 음악적 활용 가치>, <15세기 제주 유배인 홍유손(洪裕孫) 연구>, <제주 오현(五賢)의 남긴 자취[]와 울림[]>

(2) 단행본 저술 : 엔리코 카루소(1996), () () ()(2003), 방선문(訪仙門)(2004), 취병담(翠屛潭)(2006), 탐라직방설(耽羅職方說)(2008), 우도가(牛島歌)(2010), 영해창수록(嶺海唱酬錄)(2011), 귤록(橘錄)(2016), 청용만고(聽舂漫稿)(2018)

 

(연재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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