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 (2)-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응제시(應制詩) (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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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 (2)-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응제시(應制詩) (1396)
  • 현행복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승인 2024.03.1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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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어 옮김[編譯] ‧ 마명(馬鳴) 현 행 복(玄行福)

 

한학자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마명(馬鳴) 현행복 선생이 최근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 등 오현이 남긴 업적과 흔적에 대해 이를 집대성해 발표한 이후 다시 '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를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계속한다. 한시로 읽는 제주 역사는 고려-조선시대 한시 중 그동안 발표되지 않은 제주관련 한시들을 모아 해석한 내용이다. 특히 각주내용을 따로 수록, 한시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편집자주)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 (2)

엮어 옮김[編譯] ‧ 마명(馬鳴) 현 행 복(玄行福)

 

2.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응제시(應詩) <탐라(耽羅)>(1396)

【원문(原文)】 (1) 《태조대왕실록(太祖大王實錄)》 (발췌)
【원문(原文)】 (2) 권근(權近)의 《양촌집(陽村集)》

 

【판독(判讀)】

耽羅

蒼蒼一點漢羅山 遠在洪濤浩渺間 人動星芒來海國 馬生龍種入天閑 地偏民業猶生遂 風便商帆僅往還 聖代職方修版籍 此邦雖陋不須刪

 

【해석(解釋)】

○ 탐라(耽羅) - 권근(權近)

 

蒼蒼一點漢羅山(창창일점한라산) 끝없이 넓은 바다 가운데 한 점 한라산이,

遠在洪濤浩渺間(원재홍도호묘간) 큰 파도 일렁이는 아득히 먼 곳에 있다네.

人動星芒來海國(인동성망래해국) 객성 움직임 따라 섬나라 사람들 찾아오고,

馬生龍種入天閑(마생용종입천한) 말은 준마를 낳아 천자의 나라로 들어가네.

地偏民業猶生遂(지편민업유생수) 땅 외져도 백성들 생업 여전히 이루어지고,

風便商帆僅往還(풍편상범근왕환) 바람 따라 장삿배들 근근이 들고나곤 하네.

聖代職方修版籍(성대직방수판적) 성대(聖代)에 직방에서 지도 판 고칠 때면,

此邦雖陋不須刪(차방수루부수산) 이 지방 비루해도 차마 지을 순 없다오.

※ 운자 : 평성(平聲) ‘刪(산)’운 - 山, 間, 閑, 還, 刪

 

【해설(解說)】

‘탐라(耽羅)’라는 제하(題下)의 이 시는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대학자 양촌(陽村) 권근(權近, 1352~1409)이 지은 응제시(應制詩) 24수 중 하나이다.

응제시란 제명(制命), 곧 중국 황제의 명령에 따라 지은 시를 일컫는다. 본래 ‘制(제)’란 글자는 천자(天子)의 나라인 중국에서만 쓰는 뜻이 있다고 한다.

대신에 왕국(王國)의 나라인 조선에서는 이 글자 대신에 ‘製(제)’란 글자로 대용했다. 예컨대 황제의 칙령이 ‘제고(制誥)’라 함에 비해 임금의 칙령을 뜻하는 말로는 ‘제교(製敎)’라 칭했고, 그 조서(詔書)나 교서(敎書) 등의 글을 지어 바치는 일을 맡은 벼슬을 중국에선 지제고(知制誥)라 함에 비해 조선에서는 지제교(知製敎)라 칭함 따위가 그렇다.

조선조 개국초에 중국 황실에 보낸 표전(表箋)을 문제 삼자, 조선에서는 당시의 문병(文柄)인 정도전(鄭道傳) 대신에 자원한 권근(權近)을 명(明) 제국을 세운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에게 파견한다. 이 응제시가 지어진 것은 조선 태조(太祖) 5년인 병자(丙子, 1396)의 해이다.

이 시의 작자인 양촌 권근이 그의 생전에 탐라를 방문했던 기록은 없다. 그렇지만 이처럼 함축적으로 탐라란 지역의 특징을 칠언율시(七言律詩)란 형식에 맞춰 절묘하게 표현해내고 있음이란 이 시를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탐라(耽羅)가 비록 망망한 대해에 떠 있는 한 점과 같이 작은 섬나라에 불과하지만, 여기엔 한라산이란 산이 있고, 신라에 조공을 바쳤던 역사가 전해지고 있고, 특히 품질이 우수한 말을 길러 천자의 나라로 보내짐과 더불어 편서풍을 따라 장삿배들의 들고남을 그 특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시의 특징 중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을 꼽는다면, 무엇보다도 ‘한라산’의 한자어 표기를 ‘漢羅山’이라고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곧 현재 전해지고 있는 ‘漢拏山’이란 표기에서처럼 그 두 번째 음절의 한자어 표기가 ‘붙잡다’란 뜻을 지닌 ‘拏(나)’ 대신에 ‘비단’ 혹은 ‘벌일’을 뜻하는 ‘羅’를 쓰고 있다.

이는 앞서 제시된 영인 원본인 《태조대왕실록(太祖大王實錄)》이나 권근의 문집인 《양촌집(陽村集)》을 참조해봐도 공통으로 그렇게 표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이는 ‘한라산’이란 단어의 초기 표기 형태의 하나로 파악될 수 있다. 특히 그 발음체가 ‘할라산’이라고 읽힐 수 있는 조건에서 보면 오히려 ‘한나산’이라 읽힐 수 있는 ‘漢拏山’의 표기보다도 더 현실적이기도 하다.

북한에서는 현재도 한라산의 한글 표기를 ‘한나산’이라고 고집하고 있음도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과연 ‘은하수를 붙잡을 수 있을 만큼 높은 산’이란 의미에서 ‘漢拏山’이란 표기를 처음 쓰기 시작한 일은 누구로부터였으며, 그 출처인 문헌 기록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림 (3)> 천하대총일람(天下大揔一覽) 지도(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각주(脚註) 모음

蒼蒼(창창) : 끝없이 넓고 아득함.

漢羅山(한라산) : 한라산. 대개 한라산의 한자어 표기가 漢拏山이라 하는데 비해, 여기서는 漢羅山이라고 함이 인상적이다. 이 시가 인용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태조(太祖) 6(1397)> ‘38조의 기사나, 양촌집(陽村集)(1) <응제시(應製詩)>의 원문에 공통적으로 그렇게 표기되어 있다. 아마도 한라산의 발음체인 할라산에 해당하는 한자어로 그렇게 표기한 것이라 짐작된다.

洪濤浩渺間(홍도호묘간) : 큰 파도 일렁이는 아득히 먼 사이.

人動星芒來海國(인동성망래해국) : “사람이 별자리를 움직이게 했으니, 바다 나라에서 (사신이) 찾아옴이라.” 양촌집(陽村集)의 이 부분에 대한 원주(原註)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부기되어 있다. , “옛날에 탐라 사신이 신라에 조회를 오자 객성(客星)의 응험(應驗)이 있었으므로, 신라 임금은 기뻐하여 호()를 성주(星主)와 왕자(王子)라 내렸고, 그 자손들은 이런 사실을 지금까지 일컫는다.[昔耽羅人來朝新羅 有客星之應 羅主喜之 賜號星子 其子孫至今傳稱]”라 했다.

龍種(용종) : 준마(駿馬).

天閑(천한) : 천자(天子)의 마구간으로, 어마(御馬)를 기르는 곳을 뜻한다.

職方修版籍(직방수판적) : ‘직방(職方)에서 지도(地圖) 등을 제작하며 판을 새로 꾸밀 때’. 여기서 직방(職方)’직방씨(職方氏)’로서 주례(周禮)<하관사마(夏官司馬)>조에 보면, “직방씨(職方氏)는 천하의 지도(地圖)를 관장하고 사방의 공물(貢物)을 제정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 : 깎아내다. 지도 따위를 만들 때 목판에서 깎아냄이란, 곧 없앰과 같은 뜻이 된다.

 

 

 

필자소개

 

 

마명(馬鳴) 현행복(玄行福)

‧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태생

- 어린 시절부터 한학(漢學)과 서예(書藝) 독학(獨學)

외조부에게서 《천자문(千字文)》 ‧ 《명심보감(明心寶鑑)》 등 기초 한문 학습

 

주요 논문 및 저서

(1) 논문 : <공자(孔子)의 음악사상>, <일본에 건너간 탐라의 음악 - 도라악(度羅樂) 연구>, <한국오페라 ‘춘향전(春香傳)’에 관한 연구>, <동굴의 자연음향과 음악적 활용 가치>, <15세기 제주 유배인 홍유손(洪裕孫) 연구>, <제주 오현(五賢)의 남긴 자취[影]와 울림[響]> 등

(2) 단행본 저술 : 《엔리코 카루소》(1996), 《악(樂) ‧ 관(觀) ‧ 심(深)》(2003), 《방선문(訪仙門)》(2004), 《취병담(翠屛潭)》(2006), 《탐라직방설(耽羅職方說)》(2008), 《우도가(牛島歌)》(2010), 《영해창수록(嶺海唱酬錄)》(2011), 《귤록(橘錄)》(2016), 《청용만고(聽舂漫稿)》(2018)

 

(연재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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