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5)-금남(錦南) 최부(崔溥)의 35절(絶)(14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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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5)-금남(錦南) 최부(崔溥)의 35절(絶)(1487)-3
  • 현행복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승인 2024.04.0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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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어 옮김[編譯] ‧ 마명(馬鳴) 현 행 복(玄行福)

 

한학자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마명(馬鳴) 현행복 선생이 최근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 등 오현이 남긴 업적과 흔적에 대해 이를 집대성해 발표한 이후 다시 '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를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계속한다. 한시로 읽는 제주 역사는 고려-조선시대 한시 중 그동안 발표되지 않은 제주관련 한시들을 모아 해석한 내용이다. 특히 각주내용을 따로 수록, 한시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편집자주)

 

(이어서 계속)

 

【해석(解釋)】 (13)

候風島口金方慶(후풍도구김방경) 추자도[候風島] 어귀 김방경(金方慶) 주둔하고

明月浦頭都統瑩(명월포두도통영) 명월포(明月浦) 머리로 최영(崔瑩) 상륙했네.

前後旌旗盖海來(전후정기개해래) 앞뒤로 군사 정기(旌旗) 바다에서 와 뒤덮어

渠心厭亂知相應(거심염난지상응) 변란에 염증 난 마음 서로 응함을 알아냈네.

※ 운자 : 평성(平聲) ‘庚(경)’운 - 慶, 塋, (應) ※ ‘應(응)’은 운자로 평성(平聲) ‘烝(증)’운이다.

 

【해설(解說)】

추자도가 후풍도(候風島)라 불렸던 사연은 1세기 동안 연이은 제주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 때문이기도 하다. 제주에 주둔하던 삼별초의 군대를 토벌하기 위해 김방경(金方慶)이 정예기병 8백 명을 이끌고 나선 게 고려 원종 14년(1273) 5월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꼭 100년이 흐른 뒤인 공민왕 23년(1374) 8월에, 도통사(都統使) 최영이 군사 2만 5천명을 거느리고 와서 탐라에서 일어난 목호(牧胡)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그해 10월에 임무를 마치고 개성으로 귀경하였다.

<그림 (19)> ‘朝國都統大將崔將軍神位(조국도통대장최장군신위)’ - *추자도 최영 장군 사당 내

 

【해석(解釋)】 (14)

通精暴血濺池隍(통정포혈천지황) 김통정 흘린 피, 성 밑 얕은 내 되고

哈赤頑魂飛劒鋩(합적완혼비검망) 다루가치 완악한 혼 칼날에 날아갔네.

網盡鱣鯨付鼎鑊(망진전경부정확) 일망타진한 포악 무리 형틀에 매달아서

年來無複海波楊(연래무복해파양) 이후론 다시 또 파도 넘실댐 없어졌네.

※ 운자 : 평성(平聲) ‘陽(양)’운 - 隍, 鋩, 楊

 

【해설(解說)】

삼별초의 장군 김통정(金通精)이 제주에 도착한 시기는 대개 원종(元宗) 12년(1271) 5월 중순쯤으로 파악하고 있다. 애월읍 고성리인 항파두리 안팎 이중으로 된 성을 쌓았는데, 길이가 750m인 내성은 돌로 쌓고, 길이가 6㎞쯤 되는 외성은 흙으로 쌓았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비양방록(飛揚放鹿)>에 보면,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인 ‘토성(土城)’의 모습이 그림으로 확인 된다.

<그림 (20)>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을 그린 ‘토성(土城)’의 모습
*출처 : 《탐라순력도》 ‘비양방록(飛揚放鹿)’ 부분

 

<그림 (21)> 항파두리 외성 모습 *출처 : 국립제주박물관

 

【해석(解釋)】 (15)

到頭安堵復蘇息(도두안도복소식) 이르는 곳마다 안도의 한숨 다시 소생케 되니

弋獵謨生任所得(익렵모생임소득) 사냥으로 삶을 꾸려 얻는 대로 맡겨졌네.

鮮棹扁舟向北風(선도편주향북풍) 조각배 노 저어 하늬바람 부는 쪽 향해 가니

却將土物供臣職(각장토물공신직) 도리어 토산물 바쳐 신하 직책 제공받았네.

※ 운자 : 입성(入聲) ‘職(직)’운 - 息, 得, 職

 

【해설(解說)】

조선조 태종(太宗) 2년(1402) 10월에, 탐라 성주 고봉례(高鳳禮)와 왕자 문충세(文忠世)가 조정에 들어가 지도를 받들어 관리되기를 요청하니, 고봉례는 비로소 성주의 작호를 내리고 우도지관(右都知管)으로, 문충세는 좌도지관(左都知管)으로 각각 임명되었다.

제주 출신 영곡(靈谷) 고득종(高得宗)은 상호군 고봉지(高鳳智)의 아들로서 태종 14년(1414)에 알성문과에 급제하였고, 이어 세종(世宗) 9년(1427)에 문과중시에 급제하여 첨지중추원사 ‧ 예조참의 ‧ 호조참의 등을 역임하였고 세종 30년(1448)에 한성부윤을 역임하는 등, 제주 출신의 관료로선 최고의 지위에까지 이르렀던 인물로서 유명하다.

 

【해석(解釋)】 (16)

爾來一百十餘年(이래일백십여년) 이로부터 일백 십여 년 동안

贏得王家德化宣(영득왕가덕화선) 왕가(王家)에서 듬뿍 덕화(德化) 펼쳐졌네.

文物儘從周禮樂(문물진종주례악) 문물은 모두 다 주(周)나라 예악을 따랐고

版圖編入禹山川(판도편입우산천) 직방(職方)에 편입되니 우 임금의 산천이라.

※ 운자 : 평성(平聲) ‘先(선)’운 - 年, 宣, 川

 

【해설(解說)】

조선 초기의 제주 관료 가운데 최부가 경차관(敬差官)의 임무를 맡아 제주로 들어오던 때인 성종(成宗) 18년(1487) 11월 이전까지 선정(善政)을 베푼 인물을 꼽으라면 크게 두 사람의 행적이 두드러진다.

그 한 사람이 바로 기건(奇虔) 목사이다. 그는 세종 25년(1443) 12월에, 도안문사겸지감목사(都安撫使兼知鑑牧使)로 부임해 와 만 2년 동안 역임하면서 나병 환자들을 위해 해변에 특별히 구질막(救疾幕)을 따로 설치하는가 하면, 해녀들이 전복 따기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서 전복을 먹지 않았으며, 부모가 죽으면 구덩이나 언덕에 버리는 풍속을 교화시켜 예절을 갖추어 장사지내도록 권장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이약동 목사이다. 그는 성종 1년(1470) 2월에 부임해 와 만 3년 6개월간 행목사(行牧使)를 역임하면서 한라산에서 산신제를 지내다가 얼어 죽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산천단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조처했고, 진상 물품 중 구하기 힘든 앵무조개나 무회 열매를 품목에서 빼어주도록 조정에 요청하는가 하면, 그 수량도 대폭 줄이도록 주선했다. 두 사람 모두 공통으로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될 정도로 청렴한 관료 출신의 인물들이기도 하다.

 

【해석(解釋)】 (17)

我今萬里擎丹詔(아금만리경단조) 내 이제 만 리 떨어진 곳 단조(丹詔)를 지녀

跋涉遠來並海徼(발섭원래병해요) 산 넘고 물 건너와 다시 바다 끝 간 데 왔네.

又有同舟(許使君(우유동주허사군) 마침 같은 배 타고서 허(許) 목사 동행하니

一番傾盖膽相照)(일번경개담상조) 단박에 쏠린 마음 쓸개까지 내놓을 정도네.

※ 운자 : 거성(去聲) ‘嘯(소)’운 - 詔, 徼, 照

 

【해설(解說)】

경차관 최부와 제주 목사 허희는 제주로 출발하는 해남의 관두량(舘頭梁) 포구에서 함께 배를 타고서 제주를 건너왔던 사람들이다. 그렇게 해서 맺은 인연은 제주에 와서도 순력(巡歷)을 함께 다니면서 서로의 교분(交分)을 쌓은 덕에 그와 얼마간 친해진 모양이다.

그 정분을 두고 최부는 “단박에 쏠린 마음, (간과) 쓸개까지 다 내놓을 지경이라네.[一番傾蓋(肝)膽相照]”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膽相照(담상조)’는 ‘肝膽相照(간담상조)’의 줄임말임을 대번에 알아챌 수 있다. 왜냐면 쓸개 하나만으로는 서로 비쳐본다란 표현이 어불성설(語不成說)이고 보면, 칠언(七言)의 제약으로 부득이 ‘간(肝)’이란 글자 하나가 생략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서로 마음을 터놓고 사귀는 진실한 친구 사이의 비유를 뜻하는 이 말의 출처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보면, 책사(策士)인 괴통(蒯通)이 한신(韓信)에게 털어놓는 말속에 이런 게 있다. “현재 한왕(漢王) 유방(劉邦)과 항왕(項王) 항우(項羽) 두 임금의 목숨은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한신(韓信) 장군께서 한(漢)나라를 위하면 한나라가 이기고, 초(楚)나라에 가담하면 초나라가 이깁니다. 저는 지금 ‘간담상조(肝膽相照)’하듯 제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장군께 충성을 다해 어리석은 꾀를 다 동원해 말씀드리고 싶으나 장군께서 능히 쓰지 못할까 두렵습니다.[當今兩主之命縣於足下 足下爲 漢則漢勝 與楚則楚勝 臣願披腹心 輸肝膽 效愚計 恐足下不能用也]”

그러나 한신은 평소 유방에게 작은 은혜를 입은 일 때문에 괴통의 이런 속 깊은 제안을 거절하고야 만다. 그 결과 후일 한신은 결국 모반죄로 몰려 한고조(漢高祖)에게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자, 토사구팽(兎死狗烹, *곧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란 뜻)이란 말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고 만다.

 

【원문(原文)】

<그림 24 > 김상헌(金尙憲) 《남사록(南槎錄)》에 실린 최부(崔溥)의 <탐라시(耽羅詩)> 35절(4) * 자료출처 : 《제주사자료총서(濟州史資料叢書)》(Ⅰ)(제주도, 1998), 310~311쪽.

 

<그림 (22)> 한신(韓信) 상(像)
*출처 : 《삼재도회(三才圖會)》
<그림 (23)> 간담상조(肝膽相照)의 상상화
*출처 : 작자 미상

 

 

 

 

 

 

 

 

 

 

 

 

【판독(判讀)】

 

許使君 一番傾盖膽相照 館頭巖畔卸征鞍 海

色天光入望寒 貫月槎浮縱所適 南溟無際學

鵬摶 孤帆却被天風好 驀地飛經火脫島 暫試

靑蛇掣海雲 蜃樓蛟室紛顚倒 底處一聲送櫓

歌 迓船來赴疾於梭 蓬窓揭了問前程 館在朝

天影蘸波 海吐瑞山供逸興 龍蟠牛島呈祥霧

山川喜我泛槎來 我亦有情堪指顧 燕尾蜂腰

千萬形 爭流競秀不知名 微茫樹色畫圖裏 日

暈紅霞照眼明 遠人頗識尊王命 扶我登途笳

鼓競 浦口巉嵓道士羊 路周磊落仙人鏡 靑鳥

彩鸞如有期 護予呵擁城中馳 奔迎拜跪稍知

禮 聒耳語音譯後知 便從父老問風土 冬苦風

威夏苦雨 草木昆蟲傲雪霜 禽無鵂鵲獸無虎

人知種植飽齁齁 不羨江陵千戶侯 渾把生涯

登壽域 閭閻到處杖皆鳩 嫌將歲月虛抛擲 照

里土人田頭起墳稱照里戱役使平民鞦韆傳自昔 僧刹了無香

火時 騈闐簫鼓燃燈俗節夕 革帶芒鞋葛織衣 石

田茅屋矮柴扉 負甁村婦汲泉去 橫笛堤兒牧

馬歸 民風淳儉看來取 不必彎絃徒尙武 絃誦

東西精舍中 元來人傑擬鄒魯 路入杏壇謁素

 

【해석(解釋)】 (18)

館頭巖畔卸征鞍(관두암반사정안) 관두량(館頭梁) 포구 바위에 말안장 풀어두고

海色天光入望寒(해색천광입망한) 바다색 하늘빛이 보름에 접어들어 차가운데

貫月槎浮縱所適(관월사부종소적) 달을 꿰차고 사신 배 띄워 거침없이 나아가니

南溟無際學鵬摶(남명무제학붕단) 남녘 바다 끝이 없어 붕새 비상함 배울거나.

※ 운자 : 평성(平聲) ‘寒(한)’운 - 鞍, 寒, 摶

 

【해설(解說)】

최부는 앞의 서두에서 밝히길, 해남의 관두량(舘頭梁) 포구에서 제주로 향하는 배에 신임 제주 목사 허희(許熙)와 함께 승선함을 언급했다. 끝없이 전개될 남녘 바다[南溟]의 광활함에 마주한 작자는 자신의 배가 마치 날갯짓 하나로 회오리바람을 타고서 구만리 위로 날아가는 붕새[鵬]를 떠올리고 있다.

마치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의 첫머리를 옮겨놓은 듯하다.

<그림 (25)> 붕단(鵬摶)의 상상화(* 작자 미상)

 

【해석(解釋)】 (19)

孤帆却被天風好(고범각피천풍호) 외로운 돛배 뜻밖의 천연 바람 좋게 불어주어

驀地飛經火脫島(맥지비경화탈도) 돌연 날아가듯 화탈도(火脫島)를 지나갔네.

暫試靑蛇掣海雲(잠시청사체해운) 잠깐 청사(靑蛇)가 시험하듯 해무를 끌어들여

蜃樓蛟室紛顚倒(신루교실분전도) 신기루(蜃氣樓) 일며 교룡의 집 헤집어 놓네.

※ 운자 : 상성(上聲) ‘皓(호)’운 - 好, 島, 倒

【해설(解說)

최부 일행이 탄 배를 상상해 볼 수 있는 문인화가 진재(眞宰) 김윤겸(金允謙, 1711~1775)의 그림이 있다. 현재 북한의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된 이 그림의 타이틀은 ‘사신 바다를 건느다’라고 달고 있다. 아마도 이 그림은 조선통신사 일행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는 배를 형상화한 그림으로 추정된다.

<그림 (26)> ‘사신 바다를 건느다’ - 김윤겸의 <신행도해선도(信行渡海船圖)>
*소장처: 북한 조선미술박물관 소장

 

【해석(解釋)】 (20)

底處一聲送櫓歌(저처일성송로가) 뱃바닥서 한 가닥 노 젓는 소리 들려오고

迓船來赴疾於梭(아선래부질어사) 마중 나온 배 속도, 베틀 북보다 더 빠르네.

蓬窓揭了問前程(봉창게료문전정) 봉창(蓬窓) 열고서 남은 노정(路程) 물어보니

館在朝天影蘸波(관재조천영잠파) 조천관(朝天館) 그림자 물속에 일렁거린다네.

※ 운자 : 평성(平聲) ‘歌(가)’운 - 歌, 梭, 波

【해설(解說)】

최부 일행이 처음 제주에 닿을 무렵 조천관(朝天館)의 위치와 그 주변의 포구 지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있는 그림이 있다. 바로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조천조점(朝天操點)>의 화폭에서 간접으로나마 이를 예상해볼 수 있다.

<그림 (27)>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조천조점(朝天操點)>

 

(연재 계속 됩니다)

 

 

필자소개

 

 

 

마명(馬鳴) 현행복(玄行福)

‧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태생

- 어린 시절부터 한학(漢學)과 서예(書藝) 독학(獨學)

외조부에게서 《천자문(千字文)》 ‧ 《명심보감(明心寶鑑)》 등 기초 한문 학습

 

주요 논문 및 저서

(1) 논문 : <공자(孔子)의 음악사상>, <일본에 건너간 탐라의 음악 - 도라악(度羅樂) 연구>, <한국오페라 ‘춘향전(春香傳)’에 관한 연구>, <동굴의 자연음향과 음악적 활용 가치>, <15세기 제주 유배인 홍유손(洪裕孫) 연구>, <제주 오현(五賢)의 남긴 자취[影]와 울림[響]> 등

(2) 단행본 저술 : 《엔리코 카루소》(1996), 《악(樂) ‧ 관(觀) ‧ 심(深)》(2003), 《방선문(訪仙門)》(2004), 《취병담(翠屛潭)》(2006), 《탐라직방설(耽羅職方說)》(2008), 《우도가(牛島歌)》(2010), 《영해창수록(嶺海唱酬錄)》(2011), 《귤록(橘錄)》(2016), 《청용만고(聽舂漫稿)》(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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