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공부 많이 한 유식자들 많아..오라2동 해산이(잃어버린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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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공부 많이 한 유식자들 많아..오라2동 해산이(잃어버린마을) 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4.04.17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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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터가 과수원으로 바뀌어 있지만 옛길과 올레 등은 예전대로 남아 있다.

오라2동 해산이(잃어버린마을) 터

위치 ; 제주시 오라2동 1737-1번지, 1741번지 일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없어져 버린 마을 터

 

오라2동_해산이마을터


4·3 당시 연미마을에 속한 해산이에는 서당 훈장이던 송대평과 오성용, 김종국, 양규현, 오두옥, 현찬호, 고석중, 고동규 등 10여호에 5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연미마을 주민 오재옥(2003년 76세)은 해산이에는 부자들이 많이 살아 공부를 많이 한 유식자들이 많았다고 증언했다.

해산이라는 이름은 마을이 지형은 마치 개가 새끼를 낳은 것처럼 보여 해산이라 불렀다고 하는 말도 있는데 신빙성은 희박하다.

1949년 1월 1일 죽성에 주둔했던 제2연대(연대장 함병선 대령) 3대대(대대장 정준철 소령)에 의해 전소되었다. 일시에 마을이 소각되어 주민들은 힘든 피난생활을 해야 했다.

이들 중에는 야산으로 피난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웃마을로 피신했던 이들은 그곳에서 도피자 가족이라고 낙인 찍혀 희생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3년 후에 연미마을이 복구될 때에도 해산이는 북구되지 않았다.

당시 주민들이 살았던 집터가 지금은 과수원으로 바뀌어 있지만 옛길과 올레 등은 예전대로 남아 있기도 하다.

여기저기에 대나무가 자라고 있어 사람이 살았던 곳임을 알 수 있으며, 밭 경계 돌담 가운데에는 폭이 1m 이상 되는 겹담인 곳도 있다.

초토화작전 당시 깨진 그릇 조각들이 밭에 남아 있기도 하다.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연못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하나 필자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오라2동 1737-1번지 길가에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는데 표석에는 〈옛 마을 터(해산이마을) 해산(解(海)山)이 마을은 연미 마을회관에서 동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이곳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송(宋)씨가 마을을 설촌한 이후에 고(高 )씨, 김(金)씨, 양(梁)씨, 오(吳)씨 등이 거주하였으며, 4·3 사건 이전에는 모두 15가구가 모여 살았으나 4·3 사건으로 마을이 폐허가 된 이후에 사람이 살지 않는 사실상 잃어버린 마을이 되어 버렸다.〉라고 적혀 있다.
《작성 2020-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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