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중 오키나와는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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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중 오키나와는 지옥이었다"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3.11.0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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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한국인 위령탑 제주이전 나선 일본인 후지키 쇼겐 씨 회견

 

쇼겐 선생의 영상편지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군! 김군! 장군! 등 오끼나와로 끌려와 모두 총살당한 740명의 한국인 학도병들에게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으로써 진심으로 사죄를 드리고 싶다”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으로 오키나와로 끌려가 희생된 조선 학도병 일만 영혼이 68년 만에 고국 평화의 섬 제주로 귀환하는 한.일 양국의 모임이 태동했다.

3일 라마다프라자호텔에서는 전쟁 마지막 격전지인 오키나와 전투에 참전했던 유일한 생존자인 일본인 후지키 쇼겐 (90세) 선생의 ‘오키나와 한국인 위령탑 제주 이전’ 에 관한 한일 공동 기자회견 및 한일공동기구 출범식이 열렸다.

이날 출범식전 미리 가진 기자회견에서 후지키 쇼겐 선생은 인사말을 통해 “전쟁당시 오끼나와는 일본도 버린 지역이었고 평화로운 지금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지옥이었다”고 회고했다.

한국측 장정언 위원장과 쇼겐 선생
   

“당시 오끼나와를 경험하며 지구상에는 신도 부처도 없다는 결론이 이르렀고 지금도 그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한 쇼겐 선생은 “740명의 원혼을 그들이 그토록 오고 싶어했던 조국에 영혼이라도 모셔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으며 머지 않아 하늘나라에서 만나게 될 그들에게 꼭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태평양 전쟁의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학도병 지휘관으로 참전했던 현재 유일한 생존자 후지키 쇼겐(90세) 선생은, 당시 강제 징용된 조선학도병 740인과 함께 오키나와 전투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고 우정을 나누며, 조선학도병 740인의 유골을 직접 수습, 역도산과 함께 12년간 모금활동을 전개하여, 오키나와 한국인 위령탑을 세운 실제 인물이다.

특히, 그는 "지난 1963년 12월, 역도산과 함께 故 박정희대통령을 만났을 때, 박대통령께서 천만엔의 지원금과, 위령탑에 새겨 넣을 ‘한국인 위령탑.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 라는 추모글을 비통한 심정을 담아 써주시던 모습과, 故 육영수 여사께서 따로 별실로 부르시더니 삼백만 엔 을 싼 보자기를 따로 건네시며, 한국에 위령탑을 건립하고 유골을 모시고 올 때까지, 부디 위령제 라도 잘 지내달라고 두 손을 꼭 잡고 부탁하시던 40여 년 전의 일을, 지금도 어제의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에 끌려간 학도병은 740명이 아니라 1만여명에 달한다”며 “꼭 위령탑을 세워줄 것을 당부하고 부탁했지만 끝내 두분 다 위령탑 완성을 직접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뒷 얘기도 전해줬다.


하지만 그때 받은 박정희 대통령 친필을 위령탑에 새겨, 오키나와 마부니 평화공원에 한국인 위령탑을 조성했는데 이 박 대통령 친필 위령비가 제주로 옮겨오게 되는 것이다.

 


한편 11월3일 출범하는 Let’s Peace 한일 양국추진위원회는,정치적 종교적 이념을 넘어, 순수 민간차원에서 각50명씩 구성될 예정이며, 한국추진위원장은 제주4.3평화공원 초대 이사장을 지낸 장정언씨가 맡기로 했다.

일본측은 일본 동북복지대학 萩野 浩基(Hagino Koki)학장이 맡기로 했다, 참여 위원들은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한일 양국의 대표적인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문화예술인 들로 구성된다.

그런데 위령비는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선운정사(주지 현오 스님)에 세워질 예정이며 박정희 대통령의 차녀인 박근령 씨도 이번 행사에 참석, 쇼겐 선생등과 함께 감격의 대화를 나눴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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