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기미년 독립만세 함성 울려 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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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기미년 독립만세 함성 울려 퍼져
  • 김태홍 기자
  • 승인 2015.03.0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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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조천체육관에서 기념식 개최

 
제96주년 3.1절인 1일 오전 7시40분 제주시 조천읍 만세동산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대행진'을 시작했다.

제주시 조천청년회의소(회장 김규식)가 주관한 이날 만세대행진에는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구성지 제주도의회 의장, 이석문 제주도교육감, 강창일.김우남 국회의원, 한대섭 광복회 제주지부장 등 주요인사와 시민, 학생 등이 대거 참가했다.

조천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1일 만세동산에서 김장환 등 핵심 인사 14명과 인근 지역의 서당 생도와 주민 등 700여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라고 쓴 혈서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쳤다.

 
이어 만세대행진이 끝난 뒤, 오전 10시 조천체육관에서는 제96주년 3.1절 기념식이 거행됐다.

기념식은 한대섭 광복회제주특별자치도지부장의 독립선언서 낭독, 원희룡 도지사의 기념사, 구성지 도의회 의장의 만세삼창 순으로 1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원 지사는 기념사를 통해 “이 자리에 서니 96년 전 일제의 총칼 앞에 맞서서 맨손으로 만세를 부르던 조상님들의 마음과 각오가 어떠했을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며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던 역사를 잊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
원 지사는 “제주의 자연과 문화, 제주인의 주체성을 지켜서 후손들에게 잘 물려줘야한다”며 “과거로부터 변방에 소외되고 억눌린 역사에서 이제는 전세계를 향한 번영의 중심이 되고, 문화 창조의 중심이 되는 자랑스러운 제주를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날 행사는 만세동산을 사이에 두고 동쪽(함덕초)과 서쪽(신촌초)에서 출발한 시민과 학생들은 독립운동 당시의 의상으로 분장해 각각 2km 구간에서 태극기 물결을 펼치며 행진을 이어갔다.

 
한편 제주 조천의 만세운동의 역사는 1919년 3월21일로 거슬로 올라간다.

민족 수탈에 대한 인내와 독립에의 열망이 극에 달한 1919년.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운동(3월1일)의 기운이 20일 뒤 제주에 도달했다.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4일간 조천지역을 중심으로 함덕과 신흥·신촌 등지에서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발단은 그랬다. 조천 출신이었던 김장환이 독립선언서를 몰래 숨기고 귀향해 서울의 시위 소식을 알렸다. 마침 조천의 유림 세력들이 전국의 독립운동 소식을 접하고 움직임을 모색하던 때였다.

김장환·김시범·김시은 등이 17일쯤 조천리 미밋동산에서 거사 결행을 다짐하고 19일까지 11명의 동지를 모았다. 거사일은 김시우의 기일인 21일로 정했다. 이들은 시위를 위해 대형 태극기 4장과 소형 태극기 300여장을 제작했다.

 
21일, 날이 밝자 미밋동산에 태극기를 꽂은 김시범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김장환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이들은 조천 비석거리까지 행진했다. 시위대는 제주성 내를 향했지만 신촌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김시범·김시은·김장환 등 13명이 연행된다.

이튿날, 조천장터에서는 전날 연행된 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2차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백응선·박두규·김필원이 중심이 된 가운데 200여명이 모였다. 그러나 다시 주동자들은 연행되고 시위대는 강제 해산됐다.

23일과 24일에도 석방을 요구하는 만세시위는 계속됐다. 24일까지 만세운동의 핵심인물 14명이 모두 검거됨에 따라 만세 시위운동은 일단락됐다. 4일간 이어진 시위에서 29명이 기소됐고, 23명이 실형을 선고 받았다. 

제주자치도는 이날 태극기 달기 시범거리로 지정된 제주도내 주요 도로변 11곳 19.9km 구간에 일제히 태극기를 게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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