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수목원】 흰 눈이 내린 것같은 구골목서
어제 오후 늦은 시각,
남조순오름 기슭을 내려와 만목원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
어디선가 훅 끼치는 향긋한 꽃내음에 발을 멈추었습니다. 엇, 뭐지?
둘레둘레 주변을 살피다 혹시나~하고 몇 걸음 뒤돌아갔더니
아- 이럴 수가! 나무 가득 하얀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흰 눈이 이 나무에만 소복이 내린 것 같은 놀라운 광경에
숨이 멎는 것 같습니다.
밑에서부터 여럿으로 갈라진 줄기에 3m를 넘지 않을 것 같은 아담한 키
전형적인 관목상을 하고 있는 이 나무는 누구일까요?
저기 줄기 하나에 이름표가 붙어 있는 것 같군요.
구골목서 (물푸레나무과) Osmanthus heterophylla 로군요.
도감에선 여러 번 보았지만 실제로 꽃이 핀 모습은 처음 봅니다.
원산지는 일본, 대만이고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관상수로 심는대요.
왼쪽에 있는 목서에 비해 구골목서는 잎이 아주 작고 단단하게 생겼습니다.
도감에 잎 가장자리가 밋밋하거나 가시로 된 모서리가 2~5개 있는데 노목이 될수록
잎 가장자리가 밋밋해진다고 해서 혹시나 하여 동서남북 안팎을 다 살펴보았지만
가시가 달린 잎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작고 아담한 풍채지만 나이를 많이 먹었나 봐요.
목서는 암수딴그루로 저렇게 꽃이 다복하게 핀 걸 보면 십중팔구 수나무겠지요?
뒤에 일렬로 두 그루가 더 있는데 세 그루가 하나같이 하얗습니다.
은목서는 잎이 커서 꽃이 피면 새치가 난 것처럼 보이는데,
구골목서는 작은 잎보다 꽃이 더 두드러져서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처럼 보이는군요.
목서와 이웃사촌인 신나무에 저녁햇살이 내려와 잠시 붉게 타다 갑니다.
저도 잠시 쑥부쟁이의 말간 얼굴을 보며 구골목서에 놀라 들이켰던 숨을
천천히 내쉬고 발길을 돌립니다.
오늘 아침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지요.
어제 꺼내 입은 파카가 멋적을 만큼 공기도 따뜻해서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지는 그런 날이었어요.
청량한 하늘을 배경으로 꿀벌들은 오늘도 바쁘네요.
가을의 끝을 쥐고 있는 11월인데도 찾아보면
꽃피는 풀과 나무들이 꽤 있으니까요.
구골목서의 향긋한 꽃내음이 오십보 백보까지 따라옵니다.
날이 저물기 전에 다시 한 번 만목원 입구로 가 봐야겠어요.
(글 사진 란라수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