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불 밝힌 서부전선 최전방 애기봉 등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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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불 밝힌 서부전선 최전방 애기봉 등탑
  • 제주환경일보
  • 승인 2010.12.24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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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부전선 최전방 ‘애기봉(愛妓峯) 등탑’이 7년 만에 평화의 불을 밝혔다.

성탄절과 부처님 오신 날에 불을 밝히던 애기봉 등탑은 2004년 6월 군사분계선(MDL) 지역에서 선전활동을 중지하고 선전수단을 모두 제거키로 한 2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에 따라 중단됐다.


 

그러나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대북심리전이 재개되면서 종교단체가 신청한 성탄등탑 복구와 트리 설치를 막을 이유가 없다는 군 당국자의 의견에 따라 이날 점등식을 갖게 된 것이다.

애기봉은 해병대2사단 청룡부대가 관할하며 북한과는 불과 3㎞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점등하면 개성에서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경기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산 59-13번지에 위치한 애기봉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가는 곳에 155m의 높이로 솟아 있다.

6·25전쟁 당시 남북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곳으로 정전협정 체결 이듬해인 1954년 이곳의 소나무를 이용해 성탄 트리를 만들었으며 1971년 지금의 높이 30m 등탑을 설치했다.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의 선전마을과 송악산 등을 볼 수 있어 관광객과 실향민들이 많이 찾으며 93년에는 망배단도 세워졌다.

2000년 현재 군 주둔 지역으로 출입통제소에서 신고서를 작성해야 출입할 수 있으며 주변에 문수산성(사적 139), 덕포진(사적 292), 고정리지석묘(경기기념물 91), 한재당(경기기념물 47) 등의 문화재가 있어 가족 나들이 코스로도 각광받고 있다.

북녘땅에 사랑과 자비의 빛을 전하며 안보교육 현장으로도 활용되는 애기봉은 오늘도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조용히 말하고 있다.



애기봉의 유래-기생 애기와 이산가족 한 서려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음각된 비석. 북의 고향을 떠나 온 실향민들이 합동제례를 지내는 망배단.


이곳엔 병자호란 때 일로 평양감사와 기생 애기(愛妓)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전쟁이 나자 평양감사와 애기는 한양으로 피란을 떠났다. 감사는 도중에 포로가 돼 끌려가고 애기 혼자 남게 됐다. 애기는 월곶면 조강리에 머물며 감사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날마다 쑥갓머리산(현 애기봉)에 올라 북녘을 바라보며 애타게 기다리다 결국 병이 들어 죽음을 맞게 됐고 감사를 기다리던 산꼭대기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애기의 유언대로 동네 사람들은 애기를 쑥갓머리산 정상에 묻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66년 10월 7일,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해 봉우리에 얽힌 전설을 듣고 강 하나를 두고 오가지 못하는 이산가족의 한과 애기의 한이 닮았다 하여 애기봉이라고 정식 명명하고 친필 휘호로 비석까지 세웠다.


(제공=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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