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골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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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골머리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01.19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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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848.4m 비고: 95m 둘레: 1,216m 면적: 54,036㎡ 형태: 원추형

 

골머리

 

별칭: 아흔아홉 골. 동산(洞山). 홀두악(笏頭岳)

위치: 제주시 노형동 산20번지

표고: 848.4m 비고: 95m 둘레: 1,216m 면적: 54,036㎡ 형태: 원추형 난이도:☆☆☆

 

 

골머리라 함은 아흔아홉 골의 머리에 해당이 되며,제주시 남쪽(어승생악 동쪽)에 꼬불꼬불하고 크고 작은 골(골짜기)이 아흔아홉 개가 있다 하여 붙은 명칭이다.

설화에는 이곳에 골짜기가 하나만 더 있었다면 제주에도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가 있었을 것이라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걸시오름을 따라 금봉곡이라 부른 석굴암 일대를 거치면서 한라산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이 되고 있다.

골머리라는 오름 명칭이 특별하게 느껴지지만 그 유래와 관련한 내용을 알면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골머리는 바로 이 골의 머리에 해당이 된다고 하여 골+머리로 부르게 된 것이다.

사실상 아흔아홉 골을 대표하며 시작과 끝을 다 포함하는 곳이라 하여도 무방할 것 같다. 크고 작은 골짜기가 마치 밭고랑처럼 무수히 뻗어 내리며 계곡을 이룬 아흔아홉 골과 그 봉우리 주변은 천혜의 자연으로 이뤄져 있다.

워낙 수림이 울창하며 깊은 숲 속에는 갖가지 형상의 기암괴석들이 들어서 있어 이들이 골짜기와 봉우리를 지키는 모습이다.

 

그야말로 자연이 만들어 냈고 신이 다듬어 놓은 예술품들이다. 구전되는 이야기나 문헌에는 아흔아홉 골의 탄생과 더불어 우화처럼 ​들려오는 내용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는 한라산 기슭의 골짜기가 100개였으며 이곳에서 사자와 호랑이 등 맹수들이 백성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중국의 한 스님이 그 맹수들을 한군데 몰아넣고 골짜기 하나를 없앴다 한다. 그 후로 제주도에는 맹수가 없어지고 큰 인물도 나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 100개였던 골짜기는 아흔아홉 개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아흔아홉 골은 제주 4.3과 관련하여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웃드르(중산간)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가옥이 불타고 주민들이 학살되는 등 피해를 입자 이 계곡까지 피신을 했었다.

역사와 과거를 생각할 때면 계곡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동시에 슬픔도 밀려오는 곳이다. 비가 많이 내릴 때면 골을 따라서 물이 흐르게 마련이지만 한이 서린 슬픔과 아픔도 함께 흘러내린다.

그런 때문인지 계곡에 많은 비가 내릴 때면 죽어간 영혼들이 흘리는 피비린내 가 나는 곳이라고도 전해진다. 한자로 구구곡(九九谷)이나 동산(洞山) 외에 홀두악(笏頭岳)으로도 표기를 한다.

골머리를 아흔아홉 골의 대표라고 하지만 희미한(笏) 머리(頭)로 풀이를 할 경우 다소 어색한 면도 있다.

행여 과거에 숲이 울창하게 이뤄지지 않았을 때 뾰쪽한 봉우리의 형세를 두고서 홀두라고 표현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름의 표고는 848.4m이고 비고(高)는 95m이며, 멀리서 육안에 비치는 모습은 대수롭지 않지만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는 과정은 제법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한다.

한 맺힌 골머리로서도 쉽게 어깨를 내주려 하지 않는 때문인지 허리 능선을 지날 때면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골머리의 북쪽은 넓게 이어지는 공동묘지와 개인 묘지들이 자리하고 있다.

다행이라 그럴까 골머리로 향하는 지역 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더 이상의 묘지로 할애를 하지 않은 상태이다.

국립공원 접경 지역이라서 그러한 이유도 되겠지만 골머리로 가는 길은 골짜기와 숲 등 자연의 조화 가 잘 이뤄져 있다.

 

 

-골머리 탐방기

-국공내 출입제한지역이지만 이 일대의 무속인들의 훼손과 그 흔적들을 취재하는 팀에 합류를 한 것은 행운이었다.

딱히 정해진 들머리는 없지만 걸시오름 공동묘지에서 나온 후 남쪽으로 이어지는 숲을 초입으로 하였다. 계곡을 따라 진행을 하는 동안 아흔아홉 골의 실태와 환경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굽이굽이 골을 따라 오르다 산 체의 기슭을 오르기 시작했다. 만만하게 보였던 골머리의 등성은 실로 힘겨운 레이스가 연속되었다.

조릿대왓 사이로 어느 정도 길은 열렸지만 길게 이어지는 경사는 예상을 무너뜨렸다. 경사를 조금 더 오르니 우측으로는 석굴암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였다.

골머리 위쪽(西)의 금봉곡 골짜기에 있는 석굴암은 많은 사람들이 운동과 산책 코스로 이용을 한다. 그 위로 금봉이라 부르는 드레(두레왓) 오름이 있으나 역시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여 출입에 제한이 따른다.

마침내 표고점에 도착을 하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정상에는 이렇다 할 볼거리 나 특징은 없으며 조릿대가 바닥을 차지하고 있고 소나무를 비롯하여 여러 잡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GPS를 통해서 볼 떼 골머리의 표시는 정상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을 가르켰다. 오름의 정상이 아닌 골을 이룬 계곡의 특정한 곳을 지표로 한 것 같다. 하지만 험난한 벼랑과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계곡의 현장을 찾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산 체의 높은 곳을 골머리의 심벌로 확인했으니 무리를 둘 필요는 없었다. 정상부에서 조금 이동을 하니 오래된 묘가 있다. 오래전에 상여를 메고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보통 일이 아니라 여겨졌다.

비문에는 이곳을 홀두악(笏頭岳)으로 표기를 했는데 이와 관련한 내용을 토대로 오름의 별칭을 표기한 것 같다. 오가는 중에 곳곳에서 붉은색으로 표식을 한 모습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무속신앙의 장소를 찾아가는 길 표시인 사실을 알고 나니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국공지역이면서 깊은 자연으로 이뤄 진 곳이 건만 표식과 색칠로 표시를 한 흔적들을 보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골머리 아픈 일이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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