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60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향토문화] . 노송 두 그루 아래 제장(祭場) 마련..용강동 이사제단(포제단) [향토문화] . 노송 두 그루 아래 제장(祭場) 마련..용강동 이사제단(포제단) 용강동 이사제단(포제단) 龍崗洞(웃무드내) 里社祭壇소재지 : 제주시 용강동 1777번지. 용강동 마을회관 남동쪽 아스팔트 포장된 도로(용강6길)로 150m 채 못 가면 큼직한 느티나무가 보이는 곳 동산 위.시대 : 未詳(조선시대 추정)유형 ; 민속신앙(포제단) 용강동은 일찍부터 농경, 목축을 하며 마을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나 본격적으로는 17세기에 이르러 촌락이 형성되었다.1904년 삼군호구가간총책(三郡戶口家間總冊)에 龍崗이라 기록되어 있다. 본래 제주군(산북 지역) 중면의 지역으로서 영평동의 무드내 위쪽이 되므로 웃무드내, 상무 "제주의 원류를 찾아서.."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2022-07-01 00:11 [향토문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용강동 본향당(웃무드네궤당) [향토문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용강동 본향당(웃무드네궤당) 용강동 본향당(웃무드네궤당) 지역 ; 용강동 720번지 동쪽 내 가운데.시대 ; 미상(조선 전기 추정)둘레 ; 냇가 암석 주변이므로 측정불가면적 ; 약 10㎡ 제주시 용강동에 있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이다. 용강동 마을회관 맞은편, 동쪽에서 동북쪽으로 휘어지는 길을 따라 200m 못 미쳐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난 시멘트 포장된 농로를 200m쯤 따라가면 수령 250여 년의 아름드리 구실잣밤나무가 있고, 그 아래쪽 속칭 '금덩굴내' 한가운데 있는 바위굴이 신당이다.1592년(선조 25) 충주 사람 완선생이 임진왜란을 "제주의 원류를 찾아서.."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2022-06-30 08:17 [향토문화] '주저항진지' 요새화..봉개동 큰칠오름갱도진지 [향토문화] '주저항진지' 요새화..봉개동 큰칠오름갱도진지 봉개동 큰칠오름갱도진지 위치 ; 봉개동 명도암마을 북동쪽 큰칠오름 산불감시초소 북서쪽 20m 지점유형 ; 방어유적(갱도진지)시대 ; 일제강점기 일본군 군사지도와 일본방위청 문헌 자료에 따르면 이 일대는 일본군 제96사단 예하 293연대 병력이 주로 주둔한 것으로 확인된다.연대본부 및 예하부대들이 집중 배치됐음을 보여주듯 마을을 둘러싼 안세미, 밧세미오름과 칠오름, 열안지오름, 노리손이오름 등은 하나같이 갱도진지 등이 구축돼 '주저항진지'로 요새화된다.명도암 마을은 마치 병풍처럼 이들 오름들에 둘러싸여 천혜의 요새와도 같은 형국이다. "제주의 원류를 찾아서.."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2022-06-29 10:16 [향토문화] 60여 년 전 일본군 주력부대 주요 진지.. 봉개동 고냉이술갱도진지 [향토문화] 60여 년 전 일본군 주력부대 주요 진지.. 봉개동 고냉이술갱도진지 봉개동 고냉이술갱도진지 위치 ; 봉개동 165번지. 명도암마을 북동쪽 큰칠오름 북동쪽에 있는 고냉이술 남쪽 동서로 길쭉하고 큰 밭과 숲 지대가 만나는 지점유형 ; 방어유적(갱도진지)시대 ;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에 들어서면 일본군은 속속 제주로 진주하였다. 그 해 초 수천 명에 불과하던 일본군은 4월이 되면서 주력부대가 본격적으로 이동하기 시작 8월까지 7만5천여 병력이 주둔하였다.당시 제주읍 일대도 일본군 96사단 예하의 주력부대가 동․서부로 나뉘어 주둔, 일 본토 사수를 위한 최후의 일전에 대비하고 있었다.일본군 "제주의 원류를 찾아서.."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2022-06-28 14:31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3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