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태흥3리' 설촌터의 하나..태흥3리 덕둑개(포구)
상태바
[향토문화] '태흥3리' 설촌터의 하나..태흥3리 덕둑개(포구)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12.05 06: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덕돌개는 포구의 지형의 가마솥의 양 옆을 받치는 ‘덕볼’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태흥3리 덕둑개(포구)

◈위치 : 태흥3리 62의 1,6번지 바닷가. 현재 태흥3리 포구
◈유형 ; 어로시설
◈시대 ; 조선

 

태흥3리_덕돌포구


◈유래와 현황 : 태흥3리 포구는 덕둑개/덕돌개/덕돌포/덕도포로 불린다. 태흥3리는 1494~1506년 경에 태흥리 110번지 부근은 안지왓집터라고 불리면서 안씨, 강시, 장씨가 살았다고 전해진다.

1800년 경에는 태흥리 8번지 부근에 현씨, 정씨, 강씨, 김씨가 살면서 인가가 형성되어 이곳 이름을 산(산변포)라 칭한다고 하였다.

태흥리 36번지 일대에는 1860년 경에 유학사 오영화와 유향별감 김일방, 고종문, 오영지, 송정우, 고종진, 월평의 강장의, 고사장 등이 들어와 마을이 크게 형성되면서부터 이 포구의 이름을「덕둑개」라고 붙였는데 이후 한자표기화에 따라 「덕돌포(德乭浦)」,「덕도포(德道浦)」라고도 불리운다.

「태흥3리」설촌터의 하나이다.(마을홈피) 덕돌개는 포구의 지형의 가마솥의 양 옆을 받치는 ‘덕볼’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1913년에는 삼석동, 덕돌포, 산변포를 합하여 삼덕동이라 불렀고, 1915년 의귀리에서 정의군 참사 김희은씨가 태흥리 165번지에 정착하고 동중면 일대의 젊은이들을 모아 한학을 가르치며 살아왔으며, 그러던 중 1948년 4・3사건으로 주민이 피신하는 바람에 사라지고 덕돌포에 살고 있는 가구만 남았다고 한다.


‘덕돌개’도 용천수가 풍부했던 포구다. 포구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거의 묻혀졌지만 둥근 모양으로 남아 있고. 지금은 방파제에 묻힌 용천수인 ‘우악산물’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수량이 워낙 풍부해서 해수면 위로 마치 산이 솟은 것처럼 쏟아져 나와서 이름 지었다고 한다.


덕돌개는 안쪽에 위치한 개와 밖에 위치한 개로 2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어선들은 안전하게 안개로 들어와 있지만 출입구가 작아서 작은 어선밖에 다닐 수 없다.

옛 덕둑개의 흔적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안쪽 포구의 동쪽에는 자연적인 암벽으로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그대로 놔 둔 채로 다른 부분만 새로 축조한 방파제가 견고하게 자리잡았다.
《작성 12123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