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해병대 창설 11주년 1960년 4월 15일 제막식.. 일도1동 해병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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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해병대 창설 11주년 1960년 4월 15일 제막식.. 일도1동 해병혼 탑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2.0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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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굳건히 지켜낸 해병대의 애국충정을 상징하고 있다.

일도1동 해병혼 탑

 

위치 ; 일도1동 1146-26번지 동문로터리 가운데
유형 ; 기념탑
시대 ; 대한민국

 

일도1동_해병혼탑


일도1동 1146-26번지 동문로터리 가운데 세워진 탑이다. 이 탑은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굳건히 지켜낸 해병대의 애국충정을 상징하고 있다. 1949년 진해에서 창설한 해병대는 2개 대대 1000여 명에 불과한 상태에서 이듬해 6·25전쟁을 맞이했다.

제주에서 교사와 학도병 등을 중심으로 3·4기 해병 3000여 명이 자진 입대하면서 연대급 규모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게 됐다. 제주에서 제2의 창군으로 구국의 선봉에 선 해병대는 한국전쟁 중 조국수호를 위해 수많은 장병이 산화하였다.


이 탑은 수많은 이 고장 해병대원들의 호국정신을 계승하고 전공을 추념하기 위하여 해병대 3·4기 제대 장병들이 주축이 되어 해병혼탑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건립하였다. 군의관으로 참전해 도솔산전투 등 격전지에서 해병들을 치료한 장시영씨는 해군 대위로 예편한 후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아 당시 돈으로 50여 만환을 기탁했다.

1950년 후반 제주해병 막사장(幕舍長:대대장)이던 이서근 대령은 해병대사령부로부터 50만환을 지원받았다. 특히 문상률·김형근씨 등 3·4기 예비역은 제주도뿐만 아니라 흩어진 전우를 찾아 서울과 인천, 부산, 포항을 돌며 모금에 나섰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 군·관의 주도가 아닌 예비역 해병들이 앞장선 가운데 해병대 창설 11주년을 맞은 1960년 4월 15일 제막식을 가졌다.


당초 3·4기 3000여 명이 상륙함에 승선, 출정한 것을 기념해 산지항(서부두)에 설치하려던 것을 무적해병의 신화를 낳은 해병대의 상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왕래가 많은 동문로터리를 최종 부지로 선정했다. 글이 새겨진 탑의 주 방향을 북쪽으로 한 것은 북진 통일의 의미를 담고 있다.


2단의 받침대 위에 철근 콘크리트로 삼각뿔대를 높게 만들고 그 맨 위에는 다시 삼각뿔 모양으로 마무리하였다. 이는 삼다·삼무를 상징하는 것이다. 면적 400㎡(119평)에 기단 1.83m를 포함해 전체 탑 높이는 10m에 이른다.


북쪽 면에 海兵魂이라는 글씨가 있는데 원래는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해병혼(海兵魂)의 휘호를 받았으나 1960년 3·15부정선거가 일어나자 서예가 청탄 김광추 선생의 서체로 바꾸게 됐다.

그런데 김씨는 해병혼의 글자 중 우변인 鬼 위에 붙은 꼭지(´)를 떼지 않으면 죽은 혼이 된다고 해서 그의 지론에 따라 귀신 귀자의 삐침별(부수)을 뗀 한자가 쓰여 있다. 대영토건의 토목기사로 일하던 문창해씨(해병 4기)는 김광추씨가 쓴 글씨(海兵魂)를 도내에 한 대 밖에 없는 도면확대기로 크기를 확대하느라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제주일보 20130624)


맨 아래 기단에는 〈여기 耽羅의 푸른 넋이 엉켜 塔이 되다. 갈리운 땅덩이 위에 統一의 횃불을 높이 든 海兵魂은 솟았나니 平和를 念願하는 像 앞에 겨레여! 옷깃을 여미이시라.〉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해병혼 탑을 세운 취지는 〈단군(檀君)의 역대를 두고 유례없는 백의민족의 수난 6・25동란을 상기한다.

국운명멸(國運明滅)의 기로(岐路)에 선 민족의 살상(殺傷)은 금수강산을 혈루(血淚)로 물들였고, 육골(肉骨)은 산야에 허덕일 때 좌시보다 죽음으로 구국의 대도를 지향하여 민족의 지침이 되겠다고 10대의 젊은 이 고장 학도들이 바로 충무공의 넋을 이은 대한해병이었다.

세기의 전사에 찬란한 인천상륙작전은 세인공지(世人共知)의 사실이며 대한민국의 운명(運命)을 반석(磐石) 위에 안치(安置)케 하였다.


생존한 우리 해병 제대 장병은 이 고장 건아 앞에 호국정신(護國精神)의 계승의 표식(標式)을 계시하는 뜻과 대한의 영구한 번영을 기하는 붕지(鵬志)에서 여기에 지난 날의 전력을 더듬으며 그 혁혁한 전공을 기념하고 영구불멸(永久不滅)의 상징의 탑을 이 고장 한라록(漢拏麓)에 세우노라. 단기4293년 4월15일 建立 代表 張時英〉이라고 되어 있다. 단기4293년은 서기1960년이다.


탑이 준공되면서 장면 내각수반을 비롯해 김성은 해병대사령관이 참배하는 등 해병대의 명소가 됐으며, 제주해병대의 날에 현역 해병대 및 해병대전우회원 등이 모여 헌화와 참배를 하는 등 이곳에서 기념식을 한다.

제주해병대의 날은 한국전쟁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제주에서 자원입대한 해병대 3기와 4기 3,000명이 1950년 9월1일 처음으로 제주항에서 출정한 것을 기념하여 9월1일로 정해졌으며 2001년부터 기념식을 하고 있다.


한편, 해병 3~4기생들이 훈련을 받았던 병사(兵舍)와 세면장 등이 대정읍 상모리 해병91대대 안에 남아 있어 등록문화재 제410호(2008년 10월 1일)로 지정되었다.《작성 130614, 보완 1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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