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현재 안덕초등학교 부지 편입.. 화순리 안덕지서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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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현재 안덕초등학교 부지 편입.. 화순리 안덕지서성담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5.15 0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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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지서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 안덕경찰관주재소란 명칭으로 처음 설치되었다

화순리 안덕지서성담

 

위치 ; 안덕면 화순리 안덕초등학교 울타리 일부
유형 ; 방어유적(성)
시대 ; 대한민국

 

 

화순리_화순지서성담

 

안덕지서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 안덕경찰관주재소란 명칭으로 처음 설치되었다. 1946년 12월 제주감찰청 제2구경찰서 안덕지서로 개칭되고 안덕면을 관할하였다. 4.3 당시에는 고덕진(작고)씨가 주임으로 김태수, 고덕홍 형제들이 이 지서에 근무했다.


무장대는 1948년 11월 5일 화순리를 재차 습격했다. 그 후 지서에서는 안덕면 주민들을 동원해 지서 둘레에 성을 쌓았다. 안덕면 관내 11개 마을 주민들은 자기 마을에 할당된 날짜에 나가서 부역을 해야 했는데 이렇게 부역에 나갔던 주민들 중에는 명단에 따라 호명된 후 총살당한 사람들도 많았다.


안덕면 마을 중 사계리 주민들 희생이 가장 컸다. 사계리 청년들은 습격 뒷날인 11월 6일 출력 명령을 받아 축성 작업에 나갔었다. 이 날 10여 명 정도가 불려 나갔는데 이들은 주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군인들의 총에 학살됐다.


한편 안덕지서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만든 물통이 있었다. 물통의 규모는 한 평 정도 넓이에 높이 2m 정도였고 수직으로 땅을 파서 만들었으나 지상으로 조금 나와 있었다고 한다. 4.3 당시 이 물통은 구금자들을 수감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는데 이 물통에 갇혔던 서광리 박천년씨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불과 서너평밖에 안 되는 물탱크에 40여 명이 짐짝처럼 쌓여 있었으니 앉기는 커녕 서기도 힘들었어요. 그 한겨울에도 추운 줄을 전혀 몰랐죠. 무릎 정도 차 있던 물은 사람들의 열기로 곧 말라 버릴 정도였으니까요."


안덕지서 옛터는 현재 안덕초등학교 부지로 편입되어 있다. 지서 성담 일부가 길이 100m, 폭 1~2m, 높이 1~2m 정도 잘 남아 있다. 물통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여러 가지 나무들이 심어져 물통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제주4․3유적Ⅱ 108~109쪽)
《작성 1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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