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김중업 선생 1964년에 설계..용담2동 구제주대학본관(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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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김중업 선생 1964년에 설계..용담2동 구제주대학본관(멸실)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5.2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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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건축학회의 건물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1995년 7월 철거하였다.

용담2동 구제주대학본관(멸실)

 

위치 ; 용담2동 587번지(현 제주대학교사대부고 내)
시대 ; 대한민국(1967년 준공)
유형 ; 교육기관

용담2동_구제주대본관
용담2동_구제주대본관 멸실

 

김중업 선생에 의해 1964년 설계되었다. 작가는 당시 이 건물을 21세기 건축이라고 했다. 1965년 국전에 출품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한국 건축에 본격적인 모더니즘이 수용되고 작가로서 건축가가 등장하는 시기가 1960년대였으며 그 선봉에 김중업 선생이 서 있었다.


김중업은 평양에서 태어났다. 1941년 일본 요코하마공업고등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광복 후 1946~1952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조교수로 있었다.

1952년 한국 현대건축가로는 처음으로 유럽에 진출하여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건축연구소에서 4년간 수업하고 귀국, 1956년 홍익대학교 건축미술과 교수, 같은 해에 김중업합동건축연구소장이 되었으며 1956~1965년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71~1978년 사이에는 프랑스 파리, 미국 프로비던스에서 활동하였으며, 1972년 파리건축대학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1971~1975년에는 프랑스 문화부의 고문건축가도 역임하였다.

1976년에는 미국 로드아일랜드 미술대학 교수와 하버드대학교 객원교수가 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서강대학교 본관, 주한프랑스대사관, 제주대학 본관, 삼일로빌딩, 육군박물관 등이 있다.(네이버지식백과)


김중업 선생은 모더니즘 건축의 마이스터인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수업을 받고 귀국하여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설계하였다.

이 건축은 코르뷔지에가 주창한 현대건축의 원리와 한국의 서정을 혼합시킨 걸작으로 평가되면서 한국 모더니즘 건축의 효시로 일컬어졌다.

이 작품의 후속 작품이 제주대학 본관 건물이다. 설계 당시 정확한 명칭은 제주대학 법문학부 도서관과 교수연구실, 학생회의실, 실습실, 학생식당과 도서관, 행정실, 학교박물관이 포함된 다기능의 복합시설이다.


이 작품은 전작 주한프랑스대사관에 비하면 모더니즘의 전범에서 큰 일탈을 보였다. 모더니티의 특징인 기하학적 추상과 합리성과 기능적인 요구에서 멀어져 있다는 것이다.

곡선이 구조가 되어 유기적이고 관능적이고 여유로움이 감지된다. 작가는 이것을 제주도의 낭만이라고 설명하였다.


다수의 비평가들은 이 부분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이경성, 김원도, 김봉렬 교수 등은 이 건축을 ‘과다한 표현 욕구와 개인적인 재능을 과시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이 건물은 1993년 한국건축계와 지역 문화계에서 보존운동을 벌였다. 서울에서 원로건축가 80명이 제주로 총출동하여 ‘이 건축은 한국현대건축사의 중요 사료이고 제주도의 문화유산이므로 기필코 건강하게 재생되어야 한다’는 공동성명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1995년 5월에 철거가 결정되었다.

현재 아라동 제주대학교 국제교류회관 역사자료실에 있는 모형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게시되었다.

〈한국현대건축사의 큰 축을 이루었던 거장 김중업이 설계한 작품으로 르 꼬르뷔제의 ‘근대건축5원칙’을 한국 정서와 적절히 혼합시킨 근대건축의 교과서와도 같은 건축물이다.

1967년 준공된 후 대학본관 및 도서관으로, 1979년 캠퍼스 통합이설 이후에는 야간강좌부와 부설학교 교육시설로 사용해 오다 대한건축학회의 건물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1995년 7월 철거하였다. 이 건축 모형은 당초 설계도에 기초하여 축척 50분의 1로 재현한 것이다.〉

국내 굴지의 건축저널인 《공간》에서는 지령 500호를 기념하여 2013년 2월 ‘장소의 기록, 기억의 재현’이라는 주제의 전시회를 열면서 전시 주제 제1호로 제주대학 본관을 띄웠다.(김석윤 글)


제주의 건축가(제주대 건축학부 겸임교수) 김석윤은 ‘내가 이 건축에서 맘에 들어하던 부분은 2층으로 다시 3층으로 휘어져 오르는 제주도 초가의 올렛길을 닮았던 뒤편의 경사로다’라고 하였다.
《작성 1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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