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마을표석으로 세워졌던..교래리 광령고인돌(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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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마을표석으로 세워졌던..교래리 광령고인돌(이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6.01 0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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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월6일 크레인 동원 철거, 원래 위치로 환원하지 않고 돌문화공원으로 옮겨 전시

교래리 광령고인돌(이전)

 

위치 ; 교래리 돌문화공원 內
시대 ; 탐라시대
유형 ; 선사유적(고인돌)

교래리_돌공원광령고인돌 성혈
교래리_돌공원광령고인돌

 

교래리 돌문화공원 內 북쪽에 고인돌 모습을 재현하여 전시하는 곳에 광령리 고인돌이 옮겨져 설치되어 있다.

제주대학교 박물관이 조사한 자료에는 상석 길이 315㎝, 폭 234㎝, 두께 78㎝ 크기의 장방형으로 나타나 있으며, 상석에는 성혈이 17개 있고, 110×55×19㎤의 판석이 상석을 수직으로 받치고 있었으며 작은 할석들이 지석 역할을 하는 특이한 형태의 고인돌이었다. 홈줄도 있다고 하나 필자는 홈줄을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이 고인돌은 1990년대 말에 사라진 것이 확인되어 소재를 파악할 수 없었는데 한라일보(020130) ‘행방묘연했던 고인돌 마을 이정표로 둔갑’ 제하의 기사로 애월읍 어느 마을의 마을이름표석으로 세워진 것으로 밝혀졌다.

신문 기사에는 이 고인돌이 광령리 고인돌3호라고 하였으나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에 의하면 광령리 고인돌3호는 광령리 1644번지와 1677번지 경계에 있는 2개로 깨어진 고인돌이다. 원래 몇 호로 지정되어 있었는지 미상이다.


한라일보(020207)에 따르면 〈북제주군 문화재 담당은 “그렇게 좋은 고인돌이 왜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관계전문가와 협의해서 고인돌 상석의 원상 이전과 함께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하부구조에 대한 조사를 벌여 정확한 성격을 규명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언론에 의해 마을표석이 고인돌임이 밝혀졌고 당국에서도 원상이전을 공언했지만 2002년 2월6일 크레인을 동원하여 철거하면서 원래 위치로 환원하지 않고 돌문화공원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는데 지석은 없는 상태이며, 상석에는 마을 이름을 새겼던 흔적이 남아 있다.
《작성 1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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