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원희룡 후예 답다...세계유산본부장이 왜(?) 오고, 일고 타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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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원희룡 후예 답다...세계유산본부장이 왜(?) 오고, 일고 타령을..
  • 고현준
  • 승인 2022.07.19 0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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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음악관은 제주근대사의 유적..오고로 가라는 편협한 역사관으로 무슨 일 하나
길버트 소령과 길버트음악관

 

 

서귀포시 이중섭거리는 이중섭이라는 걸출한 화가가 잠시 방을 빌려 살았던 적거지가 그 중심이 됐다.

오현단은  중종 15년(1520)에 유배된 충암 김정 선생, 중종29년 (1534)에 목사로 부임했던 규암 송인수선생, 선조 34년(1601)에 안무사로 왔던 청음 김상헌 선생, 광해군 6년(1614)에 유배된 동계 정온 선생과 숙종 15년(1689)에 유배된 우암 송시열 선생 등 다섯 분을 기념하는 곳이다.

그들이 제주도에 유배를 왔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문화유적지로 남았다.

모두가 그들의 업적을 기리고 역사에 남을 만한 인물들이기에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후학들 또는 문화인들이 힘을 모아 그런 기념물들을 만들고 기념하는 것이다.

최근 예전 제주시 중앙로에 오현고가 있을 때 오현단 위에 서 있었던 길버트음악관 표지석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변덕승 세계유산센터 본부장을 만나보려고 했다.

몇 번이나 약속시간을 잡지 못하더니 결국 부장을 만나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본부장 바로 아래 직책인 임홍철 세계유산문화재부장을 만났다.

본부장 대신 만난 것이기에 본부장을 만난 것과 다름 없는 취재의 자리였다.

이날 와흘굴 문제와 한라산조릿대 문제를 취재한 후, 개인적인 궁금증이라며 길버트음악관 표지석 문제를 물었다.

“길버트음악관 표지석 문제가 세계유산센터에 온후 해결이 안된다는데 왜 그런 거냐”고 물었다.

이 부장은 대뜸 “그건 이미 오래전에 불가결정을 내린 사항”이라고 했다.

그리고 길버트음악관 위치를 자세히 물어보길래 뭔가 기대를 하며 위치를 설명해 주면서 “길버트음악관은 길버트소령이 6,25전쟁이 끝난 후, 오고 만이 아니라 여러 학교를 도왔다”는 설명까지 해줬다.

“오고의 경우 당시 시멘트 200포대를 보내 학생들이 돌을 나르며 지은 돌로 된 건물로 그림처럼 아름다웠었다”고 전해줬다.

당시 어려웠던 시절 등 그런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려 하자 그는 “다른 일정이 있다”며 “설명을 듣지 않겠다”고 하더니, 자기는 “오중 일고를 나왔는데..그동안 오고 출신들로부터 수많은 전화를 받았다”면서 “오현단은 문화재구역으로 절대로 다른 물건은 놓을 수가 없다”고 강변했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오고에 세우면 될 게 아닙니까..오고꺼니까 오고에 세워야지요..”

그리고 마치 옹이를 박듯 “오현단에는 절대로 못 세웁니다..”라고 말했다.

길버트음악관은 오고가 아닌 근대문화유산이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세계유산센터가 오고-일고를 따지며 이 중요한 기념물을 허접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길버트 소령은 우리가 전쟁의 폐허위에서 정말 어려웠을 때 우리 제주도를 도운 고마운 인물 중 한사람이다.

지금 잘 살고 있는 우리나라가 잊지 말아야 할 전쟁 영웅의 한사람으로 고맙게 기억해야 할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수단에서 봉사를 했던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를 기억한다.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가톨릭 신부였던 수도자로, 세례명은 요한인 그는 지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수단(현 남수단) 톤즈(Tonj)에 파견되어 봉사활동을 하며 체류했다.

이 시기에 베푼 여러 선행과 공적 덕에 기독교 종파는 물론이고 다른 종교의 교인들과 무종교인들에게도 큰 존경을 받는 위인으로 남았다.

"요즈음은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성당과도 같은 거룩한 학교, '내 집'처럼 느껴지게 하는 정이 넘치는 학교, 그런 학교를 말이다."

-이태석 신부의 저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2013, 생활성서사)에서

 

“이태석 신부는 한국사람이니 한국으로 가서 기념관을 만드세요..수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라고 만약 수단 유산본부장이 말한다면 우리는 이 나라를 나라로 생각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고마움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욕이나 하면서 더 이상 상대조차 안 하려고 할 것이다.

길버트음악관은 오고가 아니라 제주음악계가 나서서 제주국제관악제의 시발점이 됐던 길버트 소령을 기억하고 그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변덕승 본부장이나 임홍철 부장의 내편, 네편을 가르는 것이 꼭 원희룡을 닮았다.

제주도의 기념물을 만드는데 왜 세계유산본부가 오고, 일고를 따지는가...

그러고 보면 한라산쓰레기 문제나 조릿대 문제나 이같은 편협한 머리로 일들을 하니 업무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이날도 한라산 조릿대 문제를 물었더니..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며 “아예 손을 놓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할 일은 안 하고 높은 자리에 앉았으니 폼이나 잡겠다”는 뜻이나 다름 없는 자기고백과 다름없었다.

변덕승 본부장이나 임홍철 부장은 절대로 그런 중요한, 책임있는 자리에 앉아 있어서는 안될 사람들이다.

더욱이 그렇게 오고,일고를 따지면서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을 만드는 본부장이 있다 하더라도, 길버트 소령의 그 따뜻했던 인간애는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영원히 제주인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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