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솔동산 오방신장석 중 하나..유수암리 솔동산돌(중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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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솔동산 오방신장석 중 하나..유수암리 솔동산돌(중황석)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10.24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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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황석 옆에는 큼직한 폭낭(팽나무)이 서 있다.

유수암리 솔동산돌(중황석)
 

위치 ; 유수암리 1889-1번지와 1925번지 사이에 있는 길 가운데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유형 ; 민간신앙(풍수지리 관련)

유수암리_오방석중앙석

 

마을 한가운데 있는 속명으로 솔동산에 있으며 솔동산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여기에 솔대(활을 쏠 때 과녁판을 달고 버티게 하는 기둥)을 세웠었지 않았는가 생각되며 강희경 선생이 쓴 유수암지에 따르면 선인들은 이 바위돌을 저울형(衡形)이라고 하였는데 옛날에 있었던 저울의 형체를 알 수 없어 이해하기 어렵다.


현장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중황석(솔동산 돌)이라는 제목 아래


〈이 중황석(中黃石)은 오방석(五方石) 또는 오방신장석(五方神將石)인 동선돌, 서선돌, 남모난돌, 북왕돌과 더불어 마을의 중심부인 이곳 솔동산(유수암리 1900번지)에 위치한 오방신장석 중의 하나이다.

마을이 설촌되면서 도로가 어떤 형태로 개설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근래에 도로를 확포장하고 좌우로 일방통행을 열면서 원형을 많이 손상한 것 같은 아쉬움이 있으나 현재와 같이 유지된 것도 주민들의 고적 보전에 지대한 관심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선인들이 이 거석의 모양을 저울 또는 저울추에 비견(比肩)한 것은 마을의 중심지에 있으면서 균형있는 발전을 주도하거나 그러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내재한 것으로 사료된다.


이 솔동산이라는 지명이 여러 가지로 전하는 바 소나무가 있었다고 해서 솔동산이라 하는가 하면, 강댁 종가에서 손방에 있다고 해서, 또한 과급이 나와 솟대를 세웠던 곳이어서 솔동산이라 부르는 바 이는 음상(音相)의 변화이다.〉라고 새겨 놓았다. 중황석 옆에는 큼직한 폭낭(팽나무)이 서 있다.
《작성 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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