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탐라초기 적갈색 토기편 다량 확인..북촌리 다려도 제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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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탐라초기 적갈색 토기편 다량 확인..북촌리 다려도 제사유적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1.21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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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여도라고 불리고 섬 전체가 물개 모양을 닮았다고 달서도(獺嶼島)라고도 불린다.

북촌리 다려도 제사유적

 

위치 ; 조천읍 북촌리 산89번지. 북촌 앞 바다 다려도 팔각정 부근
시대 ; 탐라시대 초기
유형 ; 선사제사유적

 

북촌리_다려도(북촌초소장)
북촌리_다려도

 

다려도는 북촌리 해안과는 4백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2개의 섬과 10여 개의 여로 이루어진 무인도이다.

달여도라고 불리기도 하고 섬 전체가 물개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달서도(獺嶼島)라고도 불린다. 북촌리 87~90번지에 속하며 면적은 7천4백70평 정도이다. 낚시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는 탐라초기의 대표적인 적갈색 토기편이 다량 확인되었다. 적갈색 토기편은 기원후 2세기를 중심년대로 하는 전형적인 곽지리식 토기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다려도에서 출토되는 적갈색 토기편은 팔각정 건물 주변에서 상당히 많은 양을 볼 수 있다. 이곳의 문화층은 30㎝도 채 안 될 정도로 빈약하지만 유물의 집중도는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확인되는 곽지리식 적갈색토기는 탐라초기(기원후 1~500년)의 표지적 유물이다.

다려도의 환경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거주하기에는 적당치가 않다. 거주환경이 열악한 자그만 섬에서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된다는 것은 어떤 인간의 행위가 이뤄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이다.

기원 무렵 탐라전기의 유물이 출토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유물출토 양상으로 볼 때 다려도는 기원전후부터 바다와 관련된 신앙 등 어떤 의식행위가 이뤄졌던 제사유적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바로 마을 앞에 위치한 섬의 입지뿐 아니라 유물이 전망 좋은 지점을 중심으로 한군데서 집중적으로 출토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선사시대에 제사라는 것은 신앙적 요소를 강하게 지니고 있다.

선사 혹은 고대의 제사는 일상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것으로 공동체의 결속과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축제의 하나이다.

다려도는 유물의 다양성이 미약하지만 김제 심포리(기원후 3~6세기)나 부안 격포리(기원후 3~9세기) 제사유적 역시 주로 토기가 출토된다고 하며, 후쿠오카현을 비롯 북구주 일대에서도 다려도와 같은 제사유적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제주섬의 대표적인 용담동 제사유적에서는 청동제 유물과 철체화살촉 금동제 허리띠 장식 등 다양하게 출토되어 중심년대는 기원후 8~9세기대로 판단된다.

이에 비해 다려도에서는 전형적인 곽지리식 토기가 출토된다는 점에서 중심년대는 기원후 2세기대 전후로 파악된다. 용담동 제사유적과 비교해서 시기적으로 훨씬 앞서는 것이다.

한반도에서도 이 시기의 제사유적은 드물 뿐 아니라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제사유적으로 고고학계에 잘 알려진 부안 죽막동 유적은 기원후 3세기부터 조선시대까지 해당된다.

그런 점에서 다려도 유적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유적의 특이성 뿐 아니라 탐라초기 고대인들의 의식과 관련된 사회문화상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다려도의 유적은 일상생활 유적이기보다는 항해와 같은 바다와 관련된 제사유적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지만 유물이 일부 발견됐을 뿐이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보다 심층적인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유물의 집중 분포지는 대부분 파괴됐다. 몇년전 팔각정이 들어서면서 유물분포지를 훼손했기 때문이다.(한라일보 021204)

북촌리의 선사유적으로는 고두기엉덕 바위그늘집터가 유명하며, 북촌포구에서 서쪽 200m 지점 해녀창고 주변에서도 기원전후에서 9세기까지 사용했던 토기편들이 발견되었다.(학교가 펴낸 우리 고장 이야기)
《작성 1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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