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원통문 스스로 열린 이곳에.."..대흘1리 보문사(멸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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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원통문 스스로 열린 이곳에.."..대흘1리 보문사(멸실)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1.27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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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터의 북쪽에는 남양홍씨 문중이 설치한 보문사(普門祠)가 있다.

대흘1리 보문사(멸실)터

 

소재지 ;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 1230번지 일대
시대 ; 고려
유형 ; 불교유적(사찰 터)

대흘1리_보문사터기와편(디제문)

 

대흘1리_보문사터

 

북제주군의 문화유적에 따르면 지금까지 제주도에서 밝혀진 불교 사찰 터는 73곳에 이른다고 한다. 이곳은 고려시대 사찰 보문사(普門寺)가 있던 자리이다.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12세기에 창건되어 17세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절이 있던 곳은 해발 250m 정도 되는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제주목에 있던 사찰이 총 15개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普門寺在巨口里岳北이라 기록되었다.

1653년 이원진의 『탐라지(耽羅志)』에도 총 22개의 사찰과 함께 기록되어 있는데 普門寺在川東三十里라고 되어 있다.


현재 보문사지로 알려진 것구리오름(꾀꼬리오름) 북쪽 기슭에 있는 경작지(약 3,000㎡)에는 청자흑백상감편, 청자참외모양병편, 분청사기인화문사발편, 백자 등의 도자기류를 비롯하여, 질그릇, 어골문기와편, 어골사각화문기와편, 어골정방십(×)자문기와편, 어골사각일(一)자문기와편, 어골정방선문기와편, 당초문기와편 등이 고루 확인되고 있다.

최근까지 기단석과 정초석들도 한 군데 쌓여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반출되었다. 절터의 북동쪽에 보문사지 원물이 보존되어 있다.


고려시대 때 혜일 선사가 보문사에서 참배하고 쓴 시가 전하고 있다.


寺僻依荒徼(사벽의황요: 절은 초라하니 거친 지경에 의지하였으나)
泉甘得夢中(천감득몽중: 샘물은 달디다니 꿈속에서 얻었네)
蓮場逢勝事(연장봉승사: 연꽃 도량이 좋은 일을 맞았으니)
佛隴嗣遺風(불롱사유풍: 불법의 유풍이 이어졌음이라)
草過霜仍緑(초과상잉록: 풀은 서리를 맞고도 그대로 푸르지만)
蘿因瘴未紅(라인장미홍: 담쟁이는 풍토병 때문인가 붉지 않구나)
圓通門自啓(원통문자계: 원통문이 스스로 열린 이곳에)
遠鴈叫長空(원안규장공: 멀리 기러기가 넓은 하늘에서 울고 있어라)

보문사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고려시대 사찰로서, 제주목과 정의현을 오가는 길에 설치된 동원(東院)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사찰로 추정된다.(북제주군의 문화유적,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집필 오성) 절터의 북쪽에는 남양홍씨 문중이 설치한 보문사(普門祠)가 있다.
《작성 15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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